세계 7대 식재료의 기적: 돼지고기



세계 7대 식재료의 기적

The Seven Culinary Wonders of the World
돼지고기, 꿀, 소금, 고추, 쌀, 카카오, 토마토

이 일곱 가지는 단순한 식재료를 넘어, 각기 다른 대륙과 문명에서 인류의 입맛과 문화를 형성한 핵심적인 재료들이며, 수천 년에 걸친 음식의 역사와 연결되어 있다.
각 재료는 그 자체로 하나의 '미각 혁명'이자 '문화 아이콘'이라 불릴 만하다.


서문

우리가 매일 먹는 식재료는 우리의 삶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 재료들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의 신체를 유지하기 위해 이를 섭취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주요 식재료들과의 관계는 대부분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된 오랜 역사 위에 세워져 있다. 이 식재료들은 인간 식단의 일부로 오랜 시간 자리하면서 문화적, 종교적 가치를 지니게 되었고, 상징적이거나 미신적인 의미까지도 갖게 되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일곱 가지 식재료는 오늘날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다. 돼지고기는 이제 일상적인 육류로 자리잡아 있다. 아침 식사로 제공되는 베이컨 스트립이나 소시지 패티, 직장인들이 빠르게 먹는 햄 샌드위치, 야구 경기장에서 먹는 핫도그 등이 그 예다. 꿀은 슈퍼마켓에서 병에 담겨 팔리며 팬케이크 위에 뿌리거나 과일 스무디에 넣어 달콤함을 더하는 용도로 즐겨 사용된다.

소금은 값싸고 어디서나 구할 수 있어 식탁에 올려놓고 음식의 간을 맞추는 데 쓰인다. 식품 제조업계에서 소금은 가장 널리 쓰이는 첨가물 중 하나이다. 맛을 증강시켜 가공식품을 더 맛있게 만들며, 보존제로서의 역할도 한다. 우리는 감자칩처럼 짠 음식에서 소금의 존재를 당연하게 여기지만, 놀랍게도 빵이나 토마토케첩, 케이크와 같은 일상적인 가공식품에도 소금이 들어 있다.

전 세계적으로 칠리는 다양한 요리에 매콤한 맛을 더하는 데 사용된다. 타코나 커리와 같은 요리에 열기를 부여하는 유용한 수단이다. 쌀은 이제 식료품 저장실에 반드시 있는 탄수화물 식품으로, 보관과 조리가 쉬운 필수적인 식재료가 되었다. 카카오로 만들어지는 초콜릿은 선진국에서는 저렴하고 쉽게 구할 수 있으며, 주유소나 슈퍼마켓에서도 흔히 구매할 수 있다. 초콜릿 바는 단순한 간식으로 무심코 사 먹으며, 순식간에 먹어 치워진다.

단단한 식감의 신선한 토마토는 샐러드, 샌드위치, 햄버거에 사용되며, 토마토 퓌레는 피자 위에 올라가는 소스로 널리 쓰인다. 이처럼 이 재료들은 우리의 식생활에서 아주 흔한 요소가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식재료는 저마다 놀라운 이야기를 지니고 있으며, 각자의 고유한 매력을 지닌다. 이들은 모두 전 세계를 여행한 음식들로, 인간이라는 종의 잡식적 호기심을 반영하고 있다.


돼지고기(PORK)

돼지는 인간 역사에서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는 동물이다. 인간과 돼지의 관계는 매우 오래되고 지속적인 것이다. 개와 마찬가지로 돼지는 인류가 가장 먼저 가축화한 동물 중 하나였다. 오늘날 모든 가정용 돼지는 야생 멧돼지(Sus scrofa)에서 유래하였다.

이 가축화가 최초로 이루어진 장소는 명확하지 않다.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기원전 8000년경 중국에서 돼지가 가축화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중동 지역에서도 다양한 유적지에서 가축화된 돼지의 뼈가 발견되었으며, 특히 터키의 할란 체미(Hallan Çemi)라는 유적지에서는 기원전 약 8000년경으로 추정되는 시기의 돼지 뼈가 출토되었다. 이 유적의 뼈들은 멧돼지가 사람들과 같은 마을에 함께 살았음을 시사한다.

인간과 돼지가 이토록 이른 시기부터 가까운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이유는 멧돼지의 본래 성질, 즉 호기심 많고 대담한 성격에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돼지는 매우 우수한 잡식성 청소 동물로, 본래 숲이 자연 서식지였다. 하지만 초기 인간 정착지에서는 음식물 쓰레기와 작물로 인해 멧돼지들에게는 먹을 것이 풍부했고, 이로 인해 점차 인간에게 익숙해졌다. 인간이 포획해 기른 멧돼지 새끼들이 가축화된 돼지의 조상이라는 견해가 있다.

또한 돼지가 종교적 제물로 사용되었던 점도 가축화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중국에서도 돼지는 신에게 바치는 제물로 사용되었다. 로마의 박물학자 플리니우스(Plinius the Elder)는 『자연사(Natural History)』(서기 77년)에서 “돼지는 태어난 지 다섯 날이 지나야 제물로서의 순수한 상태에 도달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소, 양, 염소와 같이 고기 외에도 우유나 양모를 위해 사육되는 가축들과 달리, 돼지는 순수하게 고기를 얻기 위해 사육된다. 이 책의 ‘샤르퀴트리(Charcuterie)’ 장에서 보다 상세히 설명하듯이,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은 돼지를 도살해 얻은 고기를 매우 창의적으로 활용해 왔다. 많은 나라에서 돼지는 오래전부터 중요한 육류 공급원이었다.

중국에서 돼지는 삶의 중심에 자리했던 존재로, 중국어에서 ‘집’을 의미하는 한자는 ‘지붕’(宀)과 ‘돼지’(豕)의 글자로 구성되어 있다. 돼지를 기르는 사람이었던 ‘돼지치기’는 유럽 문학과 민속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예를 들면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기원전 675~725년경)에 등장하는 에우마이오스(Eumaeus), 또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 1842년에 발표한 동화 『돼지치기 왕자』(The Swineherd) 등이 그 예다.


돼지는 인간 역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인간과 돼지의 관계는 오래되고 끈질긴 인연이다. 개와 함께 돼지는 인간이 가장 먼저 길들인 동물 중 하나이며, 오늘날 모든 가정용 돼지는 멧돼지(Sus scrofa)에서 유래하였다.

이 돼지의 가축화가 처음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기원전 8000년경 중국에서 돼지가 가축화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중동에서도 다양한 유적지에서 가축화된 돼지의 뼈가 발견되었다. 특히 터키의 할란 체미(Hallan Çemi) 유적에서는 멧돼지 뼈가 출토되었는데, 이 유적은 약 기원전 8000년경으로 추정된다. 이 뼈들은 당시 멧돼지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살았음을 시사한다.

사람과 돼지 사이에 이렇게 빠르게 긴밀한 관계가 형성된 이유는 멧돼지가 원래 호기심이 많고 자신감 있는 성격의 동물이었기 때문이다. 돼지는 잘 알려진 잡식성 동물로, 원래 서식지는 숲이다. 하지만 초기 인류 정착지는 음식물 쓰레기와 작물 등 풍부한 먹거리를 제공했기에, 멧돼지는 점차 인간 환경에 적응하게 되었다. 인간이 포획하고 기른 멧돼지 새끼들이 가축 돼지의 조상이 되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돼지가 제물로도 유용했기 때문에 가축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견해도 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중국에서도 돼지는 신에게 바치는 제물로 사용되었다. 로마의 박물학자 플리니우스(Pliny the Elder)는 『자연사』(기원후 77년)에서 “어린 돼지는 생후 5일이 되면 제물로 바칠 수 있는 순수한 상태로 간주된다”고 언급했다.

소, 양, 염소처럼 고기 외에도 우유나 양모를 얻기 위해 사육되는 가축들과 달리, 돼지는 오로지 고기 생산을 위해 사육된다. 이 책의 '샤르퀴트리(Charcuterie)' 장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돼지는 도축 후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어 왔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돼지는 중요한 육류 공급원이었고, 중국에서는 돼지가 생활 속에서 매우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실제로 ‘집’을 의미하는 중국 한자는 ‘지붕’과 ‘돼지’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돼지를 돌보는 사람인 ‘돼지치기(swineherd)’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에우마이오스부터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돼지치기』(1842)까지 유럽 문학과 민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돼지는 잡식성이고, 살이 빨리 찌는 특성 덕분에 매우 유용한 동물로 여겨졌다. 음식 찌꺼기나 남은 것을 쉽게 먹일 수 있어 사육이 간편했다. 생물학적으로 돼지는 채집 생활에 매우 적합하다. 날카로운 이빨은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씹어 먹기에 충분하고, 무엇보다 주둥이는 돼지의 가장 뛰어난 신체기관이다. 돼지의 주둥이는 단단해서 땅을 파기에 적합하면서도, 고양이의 수염처럼 매우 민감하여 냄새를 맡는 데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 주둥이 끝에 있는 단단한 코 연골에는 수많은 감각 수용체가 분포하여 냄새를 감지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이 덕분에 돼지는 땅속 깊이 숨은 식용 뿌리나 덩이줄기를 잘 찾아내며, 이 능력은 트러플(송로버섯) 채취에도 활용되었다.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역사가 바르톨로메오 사키 플라티나는 돼지와 개를 이용한 트러플 사냥을 묘사한 바 있으며, 오늘날에도 트러플 돼지를 활용하는 전통은 이어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돼지를 우리 안에 가두어 사육하면서 빠른 증체가 가능했다. 심지어 인분을 포함한 인간의 배설물까지도 먹여 고기로 전환할 수 있었기 때문에 돼지는 매우 유용했다. 한나라 시대(기원전 206년~기원후 220년)에는 돼지 사육이 장려되었으며, 당시에 돼지는 매우 귀한 동물로 여겨졌기 때문에 장례식 시 무덤에 돼지를 함께 묻는 풍습도 있었다.

유럽에서는 짧은 다리로 좁은 공간에서도 살 수 있는 ‘우리 돼지(sty pig)’와 넓은 숲을 돌아다니며 방목되는 긴 다리의 ‘방목 돼지(range pig)’로 나뉘었다. 유럽에는 오랜 숲속 방목 전통이 있었으며, 돼지들은 가을철이면 밤, 도토리, 개암 등의 견과류로 살을 찌울 수 있었다. 이 같은 전통은 1086년 영국의 『둠스데이 북』에도 기록되어 있으며, 예를 들어 ‘웨스트민스터의 성 베드로 수도원의 땅에는 쟁기 11대가 갈 수 있는 목초지와 마을 가축용 방목지, 그리고 돼지 100마리를 방목할 수 있는 숲이 있다’는 식이다.

세월이 흐르며 인간의 거주지와 농경지 확대를 위해 숲이 줄어들자, 돼지들의 숲 접근은 제한되었고, 일반적으로는 성 미카엘의 날(9월 29일)부터 성 안드레아의 날(11월 30일)까지 방목이 허용되었다. 오늘날에도 이와 유사한 ‘판나지(pannage)’ 전통이 스페인의 ‘하몬 이베리코 데 벨로타(jamón ibérico de bellota)’에 남아 있다. 또한 사과 재배 지역에서는 ‘과수원 돼지’라는 전통이 생겨났는데, 영국 글로스터셔 지방의 전통 품종 ‘글로스터셔 올드 스팟(Gloucestershire Old Spot)’은 떨어진 사과를 먹기 위해 과수원에서 방목되었다.

돼지는 찌꺼기를 잘 먹고 거친 환경에서도 잘 견디기 때문에 장거리 항해를 할 때도 유용한 육류 자원이 되었다. 게다가 돼지는 번식력이 높아 암퇘지는 해마다 여러 마리의 새끼를 낳을 수 있었기에, 다양한 지역에 정착한 뒤에도 개체 수가 빠르게 늘었다. 고고학적, 유전자적 증거에 따르면, 돼지는 이주민들에 의해 태평양 섬들까지 퍼졌다.

1493년,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유럽에서 신세계로 처음 돼지를 가져왔다. 서인도제도의 히스파니올라 섬에 가져온 8마리의 돼지는 잘 적응하여 들돼지처럼 번식했다. 이후 스페인 정복자들은 중남미 전역에 돼지를 퍼뜨렸다. 1539~1542년 사이, 스페인 정복자 에르난도 데 소토는 미국 플로리다에 돼지를 처음으로 소개했으며, 1607년 영국 탐험가 월터 롤리는 존 스미스의 제임스타운에 돼지를 들여왔다. 이후 돼지 개체 수는 크게 증가했다.

돼지는 북미에서 정착민들에게 매우 유용한 동물로 인식되었으며, 특히 염장돼지고기(salt pork)는 중요한 주식이 되었다. 19세기 노르웨이 출신 작가 올레 뭉크 레더는 “미국인들이 가장 애정하는 동물인 돼지에 대해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가 본 모든 도시, 군, 마을 어디서든 수많은 돼지가 평화롭게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고 남겼다.

18세기와 19세기에는 다양한 돼지 품종이 개발되었고, 영국에서 특히 많은 품종 실험이 이루어졌다. 20세기에 이르러 대규모 공장식 사육이 도입되면서 지방이 적은 살코기용 돼지가 개발되었는데,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돼지 지방은 점차 기피 대상이 되었다.

오늘날 돼지고기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육류이며, 중국은 1인당 돼지고기 소비량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전설 속의 멧돼지

인류와 돼지의 오랜 관계는 단순히 농업 분야에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민속과 신화 속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는 돼지가 인류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동물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중국의 12지 동물은 그 기원이 최소한 한나라(기원전 206년~기원후 22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그 중 마지막 열두 번째 동물로 돼지가 등장한다. 전설에 따르면, 옥황상제가 동물들을 소환했을 때 돼지는 게으르거나 체격이 너무 커서 마지막에 도착했다고 한다. 돼지해에 태어난 사람들은 부지런하고, 동정심이 많으며, 관대한 성격을 가졌고, 집중력이 뛰어나다고 여겨진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돼지는 더욱 위협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거대한 에뤼만토스의 멧돼지가 그것이다. 헤라클레스가 수행해야 했던 12과업 중 하나가 바로 이 멧돼지를 생포하여 가져오는 일이었다. 이 멧돼지는 아르카디아 지방의 농작물과 가축에 큰 피해를 주던 존재였다. 헤라클레스는 이 멧돼지를 뒤쫓아 붙잡아 왕 에우리스테우스에게 데려갔다. 멧돼지를 본 왕은 겁에 질려 커다란 저장 항아리 속으로 뛰어들어 몸을 숨겼다고 한다.

강력한 야생 멧돼지를 사냥하는 이야기는 고대 전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는 그의 유명한 『변신 이야기』(기원후 800년경)에서 복잡한 칼리돈의 멧돼지 이야기를 전한다. 이 그리스 신화에서는 여신 아르테미스가 자신을 무시한 칼리돈 왕을 벌하기 위해 지하세계에서 괴물 같은 멧돼지를 불러온다. 많은 그리스 영웅들과 사냥꾼 아탈란타가 함께 멧돼지를 죽이는 데 성공하지만, 이후 이들은 전리품을 두고 다투며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이 이야기는 오랜 세월 동안 여러 방식으로 되풀이되어 전해졌으며, 도기, 석관, 플랑드르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회화 『칼리돈의 멧돼지 사냥』(1612년경)에도 묘사되어 있다.

멧돼지는 켈트 신화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일랜드 전설 속 디아르미드와 그라니에의 이야기는 낭만적이지만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이다. 디아르미드는 자신의 친구이자 지도자인 피언 막 쿨의 약혼녀 그라니에와 함께 도망치지만, 이후 피언에게 용서받는다. 그러나 몇 년 뒤, 디아르미드는 거대한 마법의 멧돼지에게 들이받혀 목숨을 잃게 된다. 어린 시절 그는 멧돼지를 사냥하지 말라는 예언을 들은 바 있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한 버전에서는, 피언이 상처 입은 이에게 자신의 손에서 물을 마시게 하면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지만, 과거의 수치를 떠올리며 고의로 물을 흘려보내고 결국 디아르미드를 구하지 못한다.

웨일스 신화 속에서도 멧돼지는 중요한 존재로 나타난다. 트루흐 트루이스(Twrch Trwyth)는 인간에서 멧돼지로 변한 초자연적인 존재다. 이 이야기는 영웅 쿨후흐와 그가 사랑하는 거인의 딸 올웬의 이야기에 포함되어 있으며, 웨일스의 구전 전통을 바탕으로 12세기와 13세기에 정리된 『마비노기온』이라는 이야기집에 실려 있다. 전형적인 영웅 이야기답게, 쿨후흐는 올웬과 결혼하기 위해 다양한 과업을 수행해야 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트루흐 트루이스의 머리에 있는 빗과 가위를 가져오는 것이다. 이 과업이 너무 어렵자 쿨후흐는 사촌인 아서 왕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아서 왕과 그의 기사들은 트루흐 트루이스를 사냥하지만, 많은 기사들이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다. 결국 멧돼지는 빗과 가위를 넘겨주고 엄니를 잃은 채 콘월 해안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금기(Taboo)

놀랍게도, 돼지고기가 세계에서 가장 널리 소비되는 고기임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금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유대교와 이슬람교라는 두 주요 종교에서 돼지고기 섭취는 금지되어 있다. 또한 기독교 내에서도 에티오피아 정교회는 돼지고기 섭취를 금하며,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 신자들도 이를 피한다. 이는 전 세계 인구의 약 5분의 1이 종교적인 이유로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의미다.

인류와 돼지 사이의 오랜 관계에는 이중적인 시선이 따라붙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돼지치기들이 돼지와 접촉했다는 이유로 하나의 분리된 계층으로 간주되며 오염된 존재로 여겨졌다. 돼지고기는 피라미드를 세운 노동자들과 같은 빈곤층의 음식이었고, 사제 계층을 포함한 상류층은 이를 먹지 않았다. 따라서 돼지는 ‘부정한’ 동물로 자주 간주되었고, 이러한 시선은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기원전 5세기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이집트를 방문한 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이집트인에게 돼지는 부정한 동물로 여겨지며, 지나가다 실수로 돼지를 건드리기라도 하면 그 즉시 강으로 달려가 옷을 입은 채 전신을 물에 담근다.”

돼지는 잡식성이며, 주어진 환경에서 남은 음식이나 쓰레기 등을 잘 먹는 특성 덕분에 오랫동안 인간에게 실용적인 동물로 여겨졌다. 역사적으로도 돼지가 배설물이나 사체까지도 처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마을이나 정착지의 위생을 유지하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향 때문에, 돼지는 역설적으로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일부 사회에서는 돼지고기가 낙인이 찍힌 고기가 되었다.

유대교에서는 돼지고기 금지가 성경에 명확히 명시되어 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율법을 전달하며 히브리인들이 그의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지켜야 할 규칙들을 설명했고, 그중에는 식생활 규칙도 포함되어 있다. 레위기 11장 1-2절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가 먹을 수 있는 모든 짐승은 이러하니라. 짐승 중에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새김질하는 것은 너희가 먹되, 새김질을 하거나 굽이 갈라졌을지라도 둘 다 갖추지 못한 짐승은 먹지 말지니, 약대는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돼지는 굽이 갈라져 쪽발이로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그 고기를 먹지 말고 그 사체도 만지지 말라. 그것들은 너희에게 부정하니라.”

또한 신명기 12장 23절에는 “오직 피는 먹지 말라. 피는 곧 생명인즉, 생명을 고기와 함께 먹지 못하리라”는 규정이 있다. 피를 먹는 동물, 특히 사체를 먹는 돼지와 같은 동물은, 그 고기를 먹는 자를 오염시키는 존재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수세기 전부터 유대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돼지고기 금식과 유제품과 고기를 함께 먹지 않는 등의 식생활 규칙 준수가 자리 잡게 되었다.

이슬람교에서 돼지고기 섭취는 '하람(금지된 행위)'에 해당한다. 코란은 신인 알라의 말씀을 담고 있으며, 무함마드에게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전달되었다. 그 코란에는 이슬람교도들이 지켜야 할 행위 기준들이 명시되어 있다. 이 중 돼지고기 금지에 대한 언급은 여러 번 반복되며 분명하다.

예를 들어, 코란 2장 173절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그분께서는 오직 너희에게 죽은 고기, 피, 돼지고기, 알라 외의 이름으로 봉헌된 것을 금하셨다.”

이슬람에서 돼지고기를 피해야 하는 주된 이유는 돼지가 부정한 존재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돼지는 오물 속에서 살고, 폐기물까지 먹는 동물로 여겨졌으며, 그런 동물의 고기를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힌다고 믿었다. 더 나아가, 돼지고기는 해로운 고기이며, 독소와 질병을 포함하고 있다는 인식도 널리 퍼져 있다.

종교적 긴장 상황에서는 돼지고기 금기가 더욱 중요한 의미를 띠었다. 예를 들어, 이슬람 세력이 711년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한 이후, 이를 다시 탈환한 스페인의 레콩키스타(Reconquista)는 오랜 세월에 걸친 전쟁이었으며, 1492년 그라나다 함락으로 마침내 완수되었다. 이 시기 이후 돼지고기 섭취는 단순한 식습관이 아닌, 스페인 기독교 정체성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가톨릭 당국은 무슬림과 유대인에 대해 강제 개종을 시행했으며, 이 개종 여부를 판별하는 수단으로 돼지고기를 먹는지 여부가 이용되었다. 1481년에 설립된 스페인 종교재판소는 유대인 개종자(Conversos)들이 진정으로 기독교로 개종했는지를 조사했다. 이들이 유대교 율법을 계속 지키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종교재판소는 다음과 같은 유대교 식습관 목록을 만들었다: “돼지고기, 토끼, 목 졸라 죽인 새, 장어, 오징어 또는 비늘 없는 생선을 먹지 않는 것.”

이처럼 돼지고기를 먹는지 여부는 당시 종교재판의 핵심이 되었고, 이에 따라 스페인 기독교도들 사이에서는 돼지고기 섭취가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적극 수용되었다.


요리 속 돼지

수세기 동안 돼지고기의 지방질은 매력적인 요소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더 살코기가 많은 품종이 육종되었고, 그 결과 고기는 더 건조하고 풍미가 덜해져 이러한 매력이 점차 사라졌다. 돼지고기를 굽는 조리법은 영국, 프랑스, 중국 등 여러 나라에서 전통적으로 사용되었다. 서양 요리에서는 돼지고기에 사과를 곁들이는 일이 많았는데, 과일의 산미가 고기의 기름진 맛을 조화롭게 잡아주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돼지고기가 특별한 미식의 재료로 여겨지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크래클링(crackling)', 즉 껍질과 지방층이 잘 구워져 바삭하게 된 부분 때문이다. 영국의 수필가 찰스 램(Charles Lamb)은 1906년 작품 「구운 돼지고기에 대한 변론」에서 돼지 껍질의 바삭한 매력을 뛰어나게 묘사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단언하건대, 잘 구워지고 황금빛을 띠며 적당히 조리된 크래클링의 풍미에 견줄 수 있는 맛은 없다. 이는 진정한 연회의 기쁨으로, 바삭바삭하고 잘게 부서지는 껍질을 치아가 정복하는 즐거움을 제공하며, 점착성이 있고 기름진 – 그것을 단순히 '지방'이라 부르지 말라 – 그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단맛이 스며 있다.”

중국에서는 오랜 세월 돼지고기를 귀하게 여겨 왔고, 매우 다양한 돼지고기 요리법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차슈(叉燒)다. 차슈는 고기를 짭짤하고 달콤한 양념에 재운 후 구워낸 요리다. 이 양념은 고기에 붉은 갈색을 입히며, 현대에는 이 색을 강조하기 위해 붉은 색소를 첨가하기도 한다. 이는 중국 문화에서 붉은색이 길조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차슈는 보통 흰쌀밥과 함께 단순하게 먹기도 하지만, 얇게 썬 차슈는 볶음밥이나 볶음면 등 다양한 요리에 풍미와 식감을 더하는 데에도 활용된다.

다진 돼지고기 역시 매우 다양하게 활용된다. 이는 만두소로 사용되거나 말린 표고버섯 속을 채우는 재료로, 또는 '사자머리'로 불리는 미트볼 요리에 사용되기도 한다. 또한 쓰촨식 당면 요리인 ‘개미가 나무를 타고 오르는 모습(螞蟻上樹)’이라는 이름의 요리에도 다진 돼지고기가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돼지 도축

수세기 동안, 겨울철 돼지를 한 마리 도축하는 일은 농촌 가정에서 중요한 연례 행사였다. 유럽 중세의 삽화가 담긴 기도서들, 즉 '시간의 서(Books of Hours)'에는 계절마다 반복되는 노동 장면이 묘사되는데, 3월의 경작에서 9월의 포도 수확까지 이어진다. 그 중에는 11월에 도토리를 모아 돼지에게 먹이는 장면, 그리고 12월에 돼지를 도축하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

12월에 도축이 이뤄졌던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 도축된 돼지고기는 추운 겨울 동안 식량으로 활용되었고, 크리스마스 축제에도 쓰였다. 둘째, 이 시기의 추운 기온 덕분에 고기를 썩지 않게 저장하고 가공하기 쉬웠다. 돼지는 보통 가을 동안 살을 찌워 겨울 도축을 준비했다. 이때 유럽 농부들에게 부여되었던 ‘파니지(pannage)’라는 권리를 통해 돼지들을 숲에 풀어놓아 너도밤나무 열매, 도토리, 밤 등 계절에 나는 자연 먹이로 살을 찌울 수 있었다. 중국에서는 돼지를 음력 설(춘절) 직전에 도축하는 전통이 있었으며, 이 역시 1월 혹은 2월 중에 이뤄졌다.

기록에 따르면 돼지 도축은 소란스럽고 힘든 작업이었다. 돼지는 도축을 거부하며 크게 비명을 질렀기 때문이다. 영국 농촌 생활을 19세기 말 자신의 기억을 바탕으로 묘사한 플로라 톰슨(Flora Thompson)의 『Lark Rise to Candleford』(1945)에는, 이때 '피그 스티커'라 불리는 이동식 도축자가 나타나 힘든 도축을 수행하는 장면이 나온다. 미국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한 로라 인걸스 와일더(Laura Ingalls Wilder)의 『Little House on the Prairie』(1935)에서도, 1870~80년대 중서부에서 그녀가 겪은 돼지 도축 장면이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돼지우리 근처에서 아빠와 헨리 삼촌은 모닥불을 피우고 그 위에 큰 솥을 걸어 물을 끓였다. 물이 끓자 돼지를 잡으러 갔다. 로라는 재빨리 방으로 달려가 침대에 머리를 묻고, 손가락으로 귀를 막아 돼지의 비명 소리를 듣지 않으려 했다.”


돼지 도축은 종종 가족과 이웃들이 함께 모이는 공동 행사였다. 이는 단지 노동력을 보태기 위한 실용적 이유만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축제의 의미도 있었기 때문이다. 장작을 모아 솥에 물을 끓이는 일부터 시작되었고, 돼지의 사체를 걸어둘 나무 구조물도 만들어야 했다. 도축된 돼지는 머리를 아래로 향하게 매달린 뒤, 목을 잘라 피를 빼내어 몸을 빠르게 식혔다.

그다음엔 뜨거운 물에 돼지 사체를 담가 털을 쉽게 밀 수 있도록 한 뒤, 철근이나 칼로 털을 밀어내어 껍질을 깨끗하게 정리했다. 그런 다음 사체를 절개해 내장을 꺼내 손질하고, 깨끗하게 된 고기는 부위별로 잘라 조리하거나 저장을 위해 절임, 훈연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가공했다. 돼지는 소중한 단백질 공급원으로, 역사적으로 도축된 돼지의 모든 부위가 빠짐없이 사용되었다. 이는 이 책의 ‘샤르퀴트리(Charcuterie)’ 장에서 더 자세히 다뤄진다.

이러한 수고스러운 과정을 돕기 위해 가족과 이웃들이 모인 것은 노동의 분담이라는 실용적인 이유 외에도, 축하의 의미가 컸다. 검소하고 힘든 삶을 살아가던 농촌 공동체에게 돼지 도축은 일 년 중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였다. 이때만 맛볼 수 있는 신선한 돼지고기와 진귀한 별미들은 풍요로움의 잠깐의 경험을 제공했다.

스페인에서는 돼지 도축을 ‘마탄사(matanza, 죽인다는 뜻의 matar에서 파생)’라고 부르며, 이는 돼지를 도축하고 고기를 가공하는 전통적인 연례 행사를 뜻한다. 이 마탄사는 보통 2~3일간 진행되며, 그 기간 동안 돼지를 잡고 해체하고 각종 저장육으로 만드는 모든 과정이 포함된다. 영국의 음식 작가 엘리자베스 루어드(Elisabeth Luard)는 저서 『European Peasant Cookery』(1986)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돼지 도축은 유럽 농민의 연중 행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미식적 사건이었다.”



자돈(乳豚, Suckling Pig)

생후 약 두 달, 아직 어미젖을 먹고 있는 어린 돼지를 도축한 것을 자돈(suckling pig)이라 한다. 자돈은 수세기 동안 세계 여러 문화에서 진미로 여겨져 왔다. 이처럼 아직 어린 개체를 도축하여 먹는 행위는, 더 키우면 더 많은 사람을 먹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어린 상태에서 잡는 것이므로, 본질적으로 사치로 간주되었다. 전통적으로 자돈은 통째로 구워 제공되며,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잔치에서도 이 요리가 널리 즐겨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식감 측면에서 보면 자돈의 살코기는 색이 연하고 매우 부드러우며, 통구이 시 바삭하게 구워진 껍질(크래클링)은 특히 미식가들 사이에서 높이 평가된다.

중국의 전통 혼례 연회에서는 제공되는 모든 요리가 상징적 의미를 지니는데, 자돈은 순결과 덕성을 의미하며, 그것이 혼례식에 오를 경우 다산을 상징한다. 인도네시아 발리섬(힌두교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는 ‘바비 굴링(Babi Guling)’이라는 자돈 요리가 특별한 날에 제공된다. 이 요리는 자돈 내부에 각종 허브와 향신료로 만든 향긋한 페이스트를 채운 뒤, 장작불에 천천히 구워 완성된다.

프랑스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소설 『보바리 부인(Madame Bovary, 1856)』에서도 자돈은 결혼식 아침 식사의 중심 메뉴로 등장한다. 다음은 그 일부이다:


“마차 창고 안에 식탁이 차려졌다. 식탁 위에는 등심 네 덩이, 닭 프리카세 여섯 접시, 캐서롤 송아지고기, 양다리 세 개가 놓여 있었고, 중앙에는 아름답게 구운 자돈 한 마리가 소렐을 곁들인 순대 네 개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자돈은 미국 케이준(Cajun) 요리에서도 중요한 메뉴로 등장한다. 이 요리는 전통적으로 지역 공동체가 함께 모여 조리하던 행사였으며, 향신료와 허브로 양념한 자돈을 피칸나무 장작불 위에서 통째로 구워 만들었다. 루이지애나 주의 맨수라(Mansura) 마을은 ‘코숑 드 레(cochon de lait, 자돈 통구이)’의 수도라고 자칭하며, 매년 이 전통 요리를 주제로 한 축제를 열어 지역민과 방문객이 함께 즐긴다.


샤퀴트리(Charcuterie)

샤퀴트리(Charcuterie)란 돼지고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가공하고 저장하는 전통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돼지를 도살하면 고기가 상하기 전에 바로 해체와 가공이 뒤따랐다. 고기와 지방의 귀중한 가치를 반영하듯, 돼지의 거의 모든 부위는 낭비 없이 활용되었다. 일부 부위와 장기는 즉시 소비하기 위해 따로 보관했고, 나머지 부분은 장기 보관이 가능하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보존되었다. 이를 일컬어 “꽥꽥 소리를 제외한 모든 것을 썼다”라는 표현이 생겼다.

예를 들어 도축 직후 돼지를 피 흘리게 하면 다량의 피가 생기는데, 이 피는 빠르게 상하기 때문에 곧바로 활용되어야 했다. 이때 등장한 것이 블랙 푸딩 같은 혈액 소시지다. 돼지 피에 다진 돼지 지방, 곡물이나 잘게 썬 양파 등을 섞어 내장을 케이싱 삼아 넣어 만든 이 소시지는 실용적이면서도 영양가 높은 음식이었다.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는 그의 『오디세이아』(기원전 약 675~725년)에서 이 혈액 소시지를 언급한 바 있다. 블랙 푸딩은 유럽 전역에 분포하며, 특히 프랑스에서는 ‘부댕 누아르(boudin noir)’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지역적 변형을 자랑한다. 예컨대 노르망디에서는 잘게 썬 사과를, 오베르뉴 지역에서는 밤을 넣는 방식이 존재한다.

‘샤퀴트리’라는 용어는 프랑스어 char cuit(익힌 고기)에서 유래하며, 15세기 파리에서 상인들이 돼지고기와 지방을 조리하고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된 시기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이후 파리에는 전문 샤퀴트리 가게들이 등장했으며, 이들은 각종 돼지고기 가공 제품을 자체 제작해 판매했다. 이 제품군에는 생소시지와 숙성소시지, 콜팻에 싸인 패티 형태의 크레피네트(crepinettes), 내장을 채운 앙두이유(andouilles), 햄, 파테(pâtés) — 예: 시골풍 파테(pâté de campagne), 머릿고기를 가공한 프롬마주 드 테트(fromage de tête), 테린(terrines), 고기를 라드에 익혀 으깨고 항아리에 담은 리예트(rillettes) 등이 포함되었다. 이 모든 품목은 지역에 따라 다양한 변형이 존재하며, 프랑스의 샤퀴트리 전통은 그 정교함과 다양성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탈리아 역시 자랑스러운 돼지고기 샤퀴트리 문화를 지닌 나라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건조 숙성 햄과 여러 형태의 살라미(salami)다. 살라미는 익히지 않고도 얇게 썰어 바로 먹을 수 있으며, **살라메 밀라네세(Salame milanese)**는 이탈리아 전역에서 널리 생산되는 대중적인 제품이다. **피노키오나(finocchiona)**는 토스카나 지역 특산물로, 회향 씨(fennel seed)로 독특한 향을 낸다. 남부 이탈리아의 **살라메 나폴레타노(salame napoletano)**는 매운맛이 강하며 고추로 맛을 낸 것이 특징이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고급 살라미 중 하나는 **살라메 디 펠리노(salame di Felino)**다. 이는 파르마 지방 근처에서 생산되며, 파르마 햄에 사용되는 것과 같은 돼지 품종을 사용하고 와인과 후추로 향을 더해 섬세한 풍미를 자랑한다. 이외에도, 크기가 크고 밝은 분홍빛을 띠며 부드러운 식감의 **모르타델라(mortadella)**는 원래 볼로냐에서 유래했으며, 후추 열매로 향을 내고 고급 제품에는 피스타치오가 들어간다. 모르타델라는 슬라이스로 먹기도 하지만, 파스타 속이나 미트볼의 재료로도 많이 사용된다.

이탈리아 외 지역에서는 덜 알려졌지만 라르도(lardo) 역시 주목할 만한 제품이다. 이는 돼지의 등지방(back fat)을 소금, 허브, 향신료로 절여 만든 것으로, 토스카나 지방에서는 대리석 용기에, 발레다오스타 지방에서는 유리 용기에 숙성시킨다. 전통적으로 얇게 썰어 단독으로 또는 빵과 함께 안티파스토(전채요리)로 즐긴다.

또한, **쿨라텔로 디 지벨로(culatello di Zibello)**는 돼지 뒷다리 안심 부위로 만든 고급 샤퀴트리 제품이다. 15세기에 처음 문헌에 언급되었으며, 생산 지역과 방식은 원산지 보호 명칭(PDO)에 따라 엄격히 규제된다. 돼지고기를 소금에 절인 뒤 배 모양으로 묶어 최소 12개월 동안 습한 환경에서 숙성시켜 풍부한 향, 부드러운 식감, 고유의 단맛을 갖게 된다.


CHINESE CHARCUTERIE

중국은 돼지고기가 요리 문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걸맞게, 오래된 돼지고기 기반 샤퀴트리 전통을 지니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저장성 진화(金華) 지방에서 생산되는 **진화 햄(Jinhua ham)**은 당나라 시기(618–907년)부터 만들어졌으며, 최초의 문헌 기록 또한 이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햄은 ‘양두흑(兩頭黑)’이라 불리는 중국 토종 돼지 품종의 뒷다리로 만들어지는데, 이 품종은 흑백 무늬가 있어 ‘판다 돼지’라는 별칭도 있으며, 성장 속도는 느리지만 육질과 풍미가 뛰어나다고 평가받는다.

진화 햄은 일반적으로 겨울철에 신선한 돼지고기에 소금을 치는 방식으로 제조가 시작된다. 그 후 세척과 성형, 건조 과정을 거쳐 수개월간 숙성되며, 그렇게 만들어진 햄은 매우 고급스럽고 귀한 식재료로 여겨진다. 송나라(960–1279)의 초대 황제가 즐겨 먹었다고 전해지며, 중국 고전소설 『홍루몽(紅樓夢)』(1791, 작자 조설근)에서도 언급될 정도로 오랜 전통을 지닌다.

진화 햄은 진한 붉은색을 띠며, 질기고 치밀한 조직감, 복합적이고 짭짤한 풍미가 특징이다. 이탈리아의 파르마 햄이나 스페인의 세라노 햄처럼 단독으로 즐기기보다는, 중국 요리에서는 풍미를 더하는 재료로 자주 활용된다. 대표적으로는 전복, 가리비 등 고급 재료로 만든 고급 수프 ‘불도장(佛跳牆)’에 들어가 감칠맛을 더한다.

일상적으로 더 자주 접할 수 있는 중국식 샤퀴트리로는 랍청(lap cheong) 소시지가 있다. ‘왁스 소시지’ 혹은 ‘왁스 내장’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 용어는, 눈에 띄게 지방이 많은 돼지고기를 소금과 설탕으로 간하고 건조·숙성시켜 만든다. 때로는 쌀술이나 장미주로 풍미를 더하기도 하며, 변형으로는 돼지 간이나 오리 간을 넣은 버전, 중국 오향가루나 사천 후추로 향을 낸 매운 소시지도 존재한다. 랍청은 단단하고 쫄깃한 식감이 특징이며 반드시 익혀 먹는다. 딤섬 요리 중 연잎밥, 무떡 등에서 자주 사용된다.

이 외에도 **랍육(lap yuk)**이라 불리는 중국식 저장육이 있다. 이는 돼지고기 삼겹살을 공기 건조하거나 훈연 방식으로 보존한 것으로, 솥밥이나 볶음밥에 넣어 고소함과 깊은 맛, 풍부한 식감을 더한다.


베이컨

영국과 미국의 아침 식탁에서 익숙하게 볼 수 있는 베이컨은 돼지고기를 염지하여 만든 인기 있는 가공육이다. 돼지의 부위에 따라 베이컨의 종류도 달라지는데, 지방이 결처럼 섞인 배 부위를 사용하면 ‘스트리키 베이컨(streaky bacon)’이 되고, 돼지 등 부위에서 얻은 살코기 중심의 부위는 ‘백 베이컨(back bacon)’이 된다.

전통적으로 베이컨은 신선한 고기를 소금으로 건조 염지(dry curing)한 뒤, 보관성을 높이기 위해 훈연하기도 했다. 농촌 지역에서 베이컨은 매우 중요한 식량이었고, 제한된 식단에 풍미를 더하는 데 사용되었다. 영국의 팸플릿 작가이자 작가, 농부였던 윌리엄 코벳(William Cobbett)은 1821년 출간한 『코티지 이코노미(Cottage Economy)』에서 “농민들이 베이컨 두 조각(flitche)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온갖 형법 법전 전체보다 사람을 도둑질에서 멀어지게 만든다”고 언급하며 그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영국에서는 지역별로 고유한 염지 방식이 발달했는데, 대표적으로 1794년에 언급된 ‘윌트셔 베이컨(Wiltshire bacon)’이 있다. 이 방식은 영국 남서부의 양돈 중심 지역인 윌트셔 주 이름을 따서 붙여졌으며, 빅토리아 시대 베스트셀러 『가정관리책(The Book of Household Management, 1861)』을 쓴 이사벨라 비튼(Isabella Beeton)은 이 베이컨의 염지법에 설탕과 소금을 사용한다고 기록했다.

스코틀랜드에는 독특한 방식의 ‘에어셔 베이컨(Ayrshire bacon)’이 있는데, 이는 도축 시 돼지를 뜨거운 물에 데우는 ‘스칼딩’을 하지 않으며, 베이컨을 둥글게 말아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잉글랜드의 서퍽(Suffolk) 지역에서는 ‘서퍽 스위트 큐어드 베이컨(Suffolk sweet-cured bacon)’ 또는 ‘블랙 베이컨’이라는 이름의 전통 베이컨이 있는데, 염지에 당밀(treacle)을 넣고 훈연해 단맛과 짙은 껍질색을 낸다.

베이컨 생산의 산업화는 ‘습식 염지(wet brining)’와 ‘니들 큐어(needle cure)’ 같은 방식의 발전을 불러왔다. 니들 큐어는 염지액을 바늘로 고기 속에 직접 주입하여, 오랜 시간이 걸리는 전통 염지 과정을 단축시키는 기술이다.

이탈리아에서도 같은 부위인 돼지의 배 부위를 사용하여 ‘판체타(pancetta)’를 만든다. 판체타는 소금과 향신료로 간을 한 뒤 염지하여 가공한 돼지고기로, ‘테사(tesa)’와 ‘아로톨라타(arrotolata)’ 두 가지 형태로 생산된다. 테사는 고기를 원형 그대로 유지하는 방식이고, 아로톨라타는 고기를 둥글게 말아 만드는 방식이다. 이탈리아 요리에서는 테사 판체타를 잘게 썰어 양파와 셀러리와 함께 볶아 ‘소프리토(soffritto)’라는 풍미 베이스를 만든다. 이 소프리토는 수많은 이탈리아 요리의 출발점이 된다.


소시지

돼지고기 샤퀴트리(Charcuterie)의 대표적인 제품 중 하나는 소시지이다. 소시지는 돼지를 식용으로 기르는 세계 각지에서 신선한 것, 염지한 것, 조리된 것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소시지(sausage)’라는 말은 라틴어 salsicia에서 유래되었으며, 이는 다시 ‘소금에 절인’을 뜻하는 salus에서 파생된 말이다. 소금은 신선한 고기를 보존하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에, 고기를 다져 소금으로 간을 하고 돼지 창자와 같은 천연 케이싱에 채워 소시지를 만들었다.

소시지 제조의 기원은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그리스의 작가 아리스토파네스는 기원전 424년에 발표한 희극 『기사들(The Knights)』에서 블러드 소시지를 언급했고, 1세기 로마의 미식가 아피키우스(Apicius)는 그의 요리서 『요리에 관하여(On the Subject of Cooking)』(약 900년경)에서 오늘날까지도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지는 순한 맛의 루가네가 소시지(luganega)를 소개하고 있다.

소시지의 세계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바로 그 풍미와 질감의 다양성이다. 갓 만들어 곧바로 조리해 먹는 생소시지(fresh sausage)는 나라, 지역, 개인에 따라 매우 다양한 맛으로 변주된다. 향신료와 허브는 전통적으로 풍미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보존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에서도 첨가되었다. 예를 들어 영국의 컴벌랜드 소시지는 후추와 잘게 썬 세이지(sage)로 넉넉히 간을 한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초리소(chorizo 또는 chouriço)는 단맛 또는 매운맛의 파프리카(pimentón)를 넣어 붉은색과 독특한 풍미를 갖는다. 태국에서는 레몬그라스, 카피르 라임 잎, 갈랑갈, 고추 등 향신 식물로 강한 향과 매운맛을 더한다. 이탈리아에서는 회향(fennel)이나 마늘이 생소시지인 살시체(salsicce)의 주요 향료로 자주 쓰인다.

소시지는 독일 요리에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하며, 독일에는 약 1,500가지 종류의 소시지가 존재한다. 독일 소시지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데쳐서 먹는 브륄부어스트(Brühwurst), 완전히 익힌 코흐부어스트(Kochwurst), 생으로 먹는 *로부어스트(Rohwurst)*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형태는 브륄부어스트로, 대표적인 예가 보크부어스트(Bockwurst)이다. 이 소시지는 송아지고기와 돼지고기를 섞어 만들며, 파프리카와 차이브(chives)로 간을 한다.

19세기에는 독일어권 중부유럽 이민자들이 이러한 소시지를 미국에 전파했고, 이는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된다. 오늘날의 미국식 핫도그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유래된 얇고 훈제한 돼지고기 소시지 ‘프랑크푸르터(Frankfurter)’와, 비엔나에서 돼지고기와 쇠고기를 혼합해 만든 ‘비너(Wiener)’ 또는 ‘부어스텔(Wurstel)’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소시지를 ‘프랭크(Frank)’ 또는 ‘위니(Wienie)’라고 불렀으며, 그것을 빵에 끼워 먹는 형태인 핫도그가 언제, 어디서 처음 등장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19세기 말에는 이미 여러 도시에서 프랭크푸르터나 비너가 빵에 끼워져 팔리고 있었다. 오늘날 핫도그는 미국을 대표하는 아이콘적 음식이 되었으며, 전 세계적으로도 널리 소비되고 있다.


햄은 역사적으로 돼지의 뒷다리 부위로 만들어졌으며 오랫동안 귀한 식재료로 여겨져 왔다. 로마의 원로원이자 역사가였던 카토는 기원전 160년경 저서 『농업론』에서 돼지 뒷다리를 소금에 절인 후 건조하고 훈연하여 햄을 만드는 방법을 기록한 바 있다. 훈연은 고기를 보존하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동시에 풍미를 더해주는 과정으로도 평가되었다. 독일의 ‘블랙 포레스트 햄(Black Forest ham)’과 프랑스의 ‘바욘 햄(Bayonne ham)’은 유럽의 대표적인 훈제 햄 예시다. 미국에서는 ‘스미스필드 햄(Smithfield ham)’이 전통 있는 제품으로, 버지니아주의 스미스필드 지역 이름을 따서 불리며, 참나무, 히코리나무, 사과나무 장작으로 만든 불에 훈연한 뒤 최소 6개월 이상 숙성시켜 만든다.

그러나 돼지고기 가공품 중 가장 고급으로 여겨지는 것은 건조 숙성 햄(dry-cured ham)이다. 이 햄은 돼지 뒷다리를 소금에 절여 휴지시키고, 일정한 조건 하에 수개월 동안 숙성시키는 과정을 거친다. 이 숙성 기간 동안 햄은 수분이 빠지고 조직감이 변화하며 깊은 풍미가 형성된다. 이탈리아의 ‘파르마 햄(Parma ham)’은 공기 건조 방식으로 만든 대표적인 예이다. 이탈리아 북동부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 지방의 산 다니엘레(San Daniele) 마을에서 유래한 ‘프로슈토 산 다니엘레(Prosciutto San Daniele)’ 역시 유명한데, 이 햄은 최소 13개월간 숙성되며, 달콤한 맛이 특징이다.

스페인의 하몽(jamón)은 나라 전체의 음식 문화 중심에 놓인 인기 있는 식품으로, 전설적인 생산 역사를 지닌다. 스페인에서는 연간 4천만 개 이상의 건조 햄이 생산되며, 국민 1인당 평균 소비량은 연간 3kg이 넘는다. 하몽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뉘는데, 돼지 품종에 따라 구분된다. 첫 번째는 ‘하몽 세라노(jamón serrano)’로, 살이 빨리 찌는 유럽산 백색 돼지(세르도 블랑코, cerdos blancos)로 만든다. 스페인 건조 햄 대부분이 이에 해당하며, 일상용 햄으로 여겨진다. 두 번째는 ‘하몽 이베리코(jamón ibérico)’로, 스페인 토종 이베리코 흑돼지(pata negra)로 만든다. 이 돼지는 성장이 느리고 새끼도 적게 낳아 생산량은 전체 하몽의 10% 정도에 불과하며, 그만큼 귀한 미식으로 평가받는다.

햄의 등급은 돼지의 사육 방식과 먹이에도 영향을 받는다. 사료로 곡물만 먹인 사육 방식은 ‘데 세보(de cebo)’로 불리며, 방목하면서 곡물과 도토리를 함께 먹인 방식은 ‘데 레세보(de recebo)’라 한다. 가장 고급으로 평가받는 것은 ‘하몽 이베리코 데 벨로타(jamón ibérico de bellota)’다. 이 제품은 이베리코 돼지를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에스트레마두라, 살라망카 지역의 홀름오크와 코르크오크가 자라는 ‘데헤사(dehesa)’ 숲에 방목하고, 가을에서 이듬해 봄까지 떨어지는 도토리(벨로타, bellota)를 먹이며 키운다.

이 도토리는 풍부한 올레산(oleic acid)을 함유해 햄에 고소하고 달콤한 풍미를 더할 뿐 아니라, 몸에 좋은 불포화지방산을 형성해 건강에도 좋다고 알려져 있다. 이 햄은 심혈관 건강에 도움을 주고 소화도 잘 되는 영양 풍부한 식품으로 인정받는다. 벨로타 하몽의 숙성은 매우 정교하게 온도와 시간을 조절하며 이루어지며, 최대 3년까지 숙성되기도 한다. 이렇게 숙성된 하몽은 풍부한 우마미 향을 가지며, 전통적으로 얇게 손으로 저며 실온에서 제공해 햄의 향과 풍미를 온전히 즐길 수 있도록 한다.



PORK FAT

역사적으로 돼지는 고기뿐만 아니라 ‘라드(lard)’로 알려진 지방의 중요한 공급원이기도 했다. 농촌 가정에서는 돼지를 도축한 후, 지방을 가공하여 보존 가능한 형태로 만드는 작업이 필수적이었다. 이 과정은 돼지의 몸에서 지방을 잘라내어 잘게 썰거나 다진 후, 태우지 않도록 천천히 열을 가해 액체 상태로 만들고 불순물을 걸러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지방은 돼지의 부위에 따라 질감과 풍미가 달라 용도도 다양하게 평가되었다. 전통적으로 가장 고급으로 여겨진 라드는 신장과 허리 안쪽에 자리한 백색의 ‘리프 라드(leaf lard)’ 혹은 ‘플레어 라드(flare lard)’였다. 이 지방은 색이 희고 풍미가 중성적이어서 다양한 요리에 쓰이기에 적합했다. 등지방(back fat)은 단단한 질감을 지니며, 살라미와 같은 육가공품 제조에 쓰이거나 질 좋은 라드를 만들기 위해 렌더링(지방 추출)되었다. 반면 내장과 근육층 사이에 있는 ‘연지방(soft fat)’은 상대적으로 가치가 낮았다.

이렇게 추출된 라드는 수개월 동안 보관하여 사용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생성된 부산물 중 하나가 ‘크랙클링(cracklings)’으로, 이는 조리된 지방과 껍질 조각이 바삭하게 구워진 것이었다. 미국에서는 이를 말리고 갈아 저장해 두었다가, ‘조니케이크(johnnycakes)’라 불리는 옥수수 기반의 전통 빵에 풍미를 더하는 데 사용했다. 이 빵은 작가 로라 잉걸스 와일더가 『리틀 하우스(Little House)』 시리즈에서 언급한 바 있다.

미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는 라드가 수 세기 동안 필수적인 조리용 지방이었다. 중국에서는 요리에 풍미를 더하기 위한 튀김용 기름으로 사용되었으며, 중남미 지역에서도 라드는 다양한 요리와 타말레(tamales) 같은 전통 음식의 조리재료로 널리 사용되었다. 미국의 가정 돼지 도축 기록을 보면 라드의 중요성이 잘 드러난다. 한 번 추출된 라드는 돼지 도축 시즌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1년 동안 요리에 활용되었다.

라드는 다양하게 쓰일 수 있는 지방이었다. 식빵에 발라 먹는 스프레드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발연점이 높아 튀김 요리에 적합했다. 북미 지역의 프라이드치킨은 전통적으로 라드로 튀겨 만들었다. 또한 결정 구조 덕분에 라드는 파이 반죽의 바삭한 식감을 내는 쇼트닝(shortening)으로서도 유용했다. 남미에서는 라드를 이용해 엠파나다(empanada)의 반죽을 만들어 특유의 부드럽고 바스러지는 질감을 낸다. 영국에서는 18세기부터 레스터셔 멜턴 모브레이(Melton Mowbray) 지방의 전통 요리로 돼지고기 파이가 유명한데, 이때 파이 크러스트는 라드, 밀가루, 뜨거운 물로 만들어졌다. 또 다른 영국 전통 디저트인 ‘라디 케이크(lardy cake)’는 라드가 듬뿍 들어간 달콤한 반죽에 향신료와 건과일을 넣어 만든 것으로, 특히 돼지 사육이 성한 농촌 지역에서 자주 만들어졌으며 추수 시기 축하용으로 사용되었다.

지방의 보존력은 식품 저장에도 활용되었다. 프랑스 남서부에서는 ‘콩피(confit)’라는 전통적인 보존 요리가 발달했다. 이는 ‘보존하다’라는 뜻의 불어 ‘콩피르(confire)’에서 유래한 말이다. 콩피는 지방이 풍부한 돼지, 오리, 거위의 고기를 소금에 절인 후, 고유의 지방에서 천천히 익혀 만든다. 익힌 고기는 식힌 후 항아리에 담아 서늘하고 건조한 곳에 보관하면 수개월 동안 보존이 가능했다. 콩피는 독특한 부드럽고 녹는 듯한 질감을 지닌 고급 요리로, 민들레나 치커리 샐러드와 곁들여 기름진 맛을 잡아주며 즐겨 먹는다.

최근 수십 년 사이에 라드는 조리용 지방으로서 인기가 줄어들었다. 건강에 좋다고 인식되는 식물성 기름이나 마가린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동물성 지방에 대한 건강상 우려는 과장된 것일 수 있다는 견해가 확산되면서 버터와 라드 같은 전통 지방이 다시 재조명받고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작전명: 삼겹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