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고기의 세계사 4

신대륙의 돼지고기

돼지고기의 세계사

4. 신대륙의 돼지고기

스페인의 초기 탐험가들은 돼지를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져왔고, 카리브 지역 원주민들로부터 훌륭한 새로운 조리법을 배웠다. 바로 바비큐(barbecue)다. 이 말은 아마 타이노어 barabicu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바비큐는 불보다 연기를 중심으로 하는 조리법으로, 고기를 숯불 위에서 천천히 익히는 방식이다. 불은 고기를 말리지 않을 정도로만 충분히 뜨거워야 하며, 이 기술은 특히 돼지고기처럼 육즙이 많은 고기에 잘 어울린다.

미국 남동부의 농촌 지역에서 여전히 전통적으로 바비큐를 할 때는 땅에 판 구덩이 위나 넓고 얕은 용기 위에 철망을 놓고, 손질한 돼지를 반으로 갈라 철망 위에 얹는다. 그리고 잘 마른 장작을 계속 불에 태워 숯을 만들어 고기 아래에 넣는다. 이렇게 고기는 소스나 바르기 없이 8시간에서 15시간 동안 천천히 익혀진다. 고기가 뼈에서 떨어질 정도로 익으면 손으로 찢어 제공한다. 도시 지역에서는 어깨살이나 갈비처럼 부위별 고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가정에서는 뼈 없는 등심을 뜨거운 오븐에서 15분간 굽고, 그 후 아주 낮은 온도로 5시간 이상 익힌 후, 물에 불린 나무 칩을 숯불 위에 올려 10분간 훈제하는 방식으로 바비큐를 흉내낼 수 있다.

미국의 지역별 바비큐 고기는 다르다. 노스캐롤라이나, 미시시피, 앨라배마, 테네시에서는 돼지고기가 바비큐용으로 쓰이고, 오클라호마, 미주리, 캔자스, 텍사스에서는 소고기가 중심이다. 전통적으로는 식초와 고춧가루로 만든 묽고 매운 소스를 고기에 뿌렸지만, 현재는 케첩 베이스의 소스를 쓰는 경우가 많다. 바비큐는 코울슬로를 얹어 번에 끼워 먹기도 한다.

유럽에서 온 정착민들은 돼지와 함께 각국의 요리법도 가져왔고, 이를 신대륙의 재료에 맞춰 변형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펜실베이니아 더치 지역에서 발전한 스크래플(scrapple)은 도축 후 남은 부위를 이용하는 독일식 고기 푸딩을 미국식으로 변형한 것으로, 곡물 대신 옥수수 가루(cornmeal)를 사용한다. 고기 찌꺼기를 부드럽게 끓인 후 옥수수 가루를 천천히 넣고 소금, 후추, 세이지로 간을 한다. 걸쭉한 죽이 되면 틀에 담아 식힌 다음, 얇게 썰어 팬에 구워낸다.

처음에는 미국의 돼지들이 숲 속에서 자유롭게 방목되었다. 이렇게 하면 사육 비용이 거의 들지 않았고, 돼지들은 급속히 늘어났다. 1705년 로버트 베벌리는 “돼지들은 어디든지 돌아다니며 주인의 관리 없이도 숲에서 먹이를 스스로 찾아낸다”고 적었다. 유럽보다 미국에서는 농촌 지역에서 돼지를 늦게까지 자유롭게 풀어 키웠고, 법적인 제한도 훨씬 느슨했다. 19세기까지도 뉴욕, 보스턴, 필라델피아의 거리에는 돼지들이 활보했고, 뉴욕이 거리의 돼지를 금지했을 때는 주부들이 강하게 항의했다.

물론 많은 농부들은 유럽의 방식처럼 돼지를 우리에 가둬 키우고, 치즈 제조 후 남는 유청, 배추 잎, 무청, 떨어진 사과 등으로 사료를 제공했다. 그리고 곧 옥수수(Zea mays)가 돼지를 살찌우는 데 매우 적합하다는 점도 인식되었다. 오늘날에도 옥수수와 대두는 상업용 돼지 사료의 핵심이다. 미국의 방대한 연간 옥수수 생산량 중 약 절반이 돼지 사료로 쓰인다. 또한 돼지고기는 보관이 쉬워 냉장 없이도 저장이 가능했기 때문에 인기가 높았다. 햄과 베이컨은 1년 가까이 보존 가능했고, 절인 돼지고기 조각은 소금물에 담가 반년에서 1년간 저장할 수 있었다.

이후 돼지는 점차 우리에 가둬 기르는 방식으로 전환되었고, 가공된 사료를 먹이며 사육되었다. 미국의 돼지 생산은 미드웨스트 지역, 즉 콘벨트(Corn Belt)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되었고, 오하이오주 신시내티는 “옥수수 15부셸을 돼지에 먹이고, 돼지를 통에 넣고, 그 통을 기차나 배에 싣는다”는 말로 유명해졌다. 이후 철도가 주요 운송 수단이 되면서 도축과 가공 중심지는 시카고로 이동했다. 아이스박스와 냉장고, 냉장열차의 보급으로 연중 신선한 돼지고기를 즐길 수 있게 되었고, 현재 미국의 대부분의 돼지는 아이오와 등 미드웨스트 주에서 사육되고 있다. 한편 동부 노스캐롤라이나처럼 농업 생산성이 낮은 지역에서도 공장형 돼지 사육 방식이 개발되며 돼지 산업은 더욱 확대되었다.


로라 잉걸스 와일더는 위스콘신 개척지의 잘사는 농가에서 돼지를 기르던 모습을 회고한다. 처음에 가족의 돼지는 "큰 숲에서 도토리, 견과류, 뿌리 등을 먹으며 야생 상태로 지냈다." 겨울이 다가오자 아버지는 "그 돼지를 잡아 통나무로 만든 우리에 가두고 살을 찌우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날씨가 충분히 추워져 돼지고기를 얼릴 수 있을 때 도축할 예정이었다. 도축은 삼촌 헨리와 함께 진행됐으며, 먼저 큰 솥에 물을 끓였다. 어린 로라는 돼지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를 싫어했지만, 아버지는 찌르는 동작이 매우 빨라 고통을 느끼지 못했을 거라고 안심시켰다. 이후 "도축 시기는 무척 즐거운 시간"이 되었고, 저녁 식사로는 스페어립이 올라왔으며, 아버지는 로라와 메리에게 돼지의 방광과 꼬리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돼지를 죽인 후, 아버지와 헨리는 끓는 물에 시체를 넣고, 칼로 털을 밀어내고 내장을 꺼낸 다음, 시체를 식히기 위해 매달았다. 이후 "햄, 어깨살, 옆구리 고기, 스페어립, 뱃살... 심장, 간, 혀, 머리, 그리고 소시지를 만들기 위한 자투리 고기"로 부위를 나누었다. 모든 부위는 소금을 뿌려 절였고, 햄과 어깨살은 절임통에 담아 뒀다가 나중에 훈연했다. 아버지는 방광을 부풀려 딸들에게 풍선처럼 주었고, 꼬리는 구워 특별 간식으로 제공했다. 어머니는 이틀 동안 라드를 끓여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생긴 크랙클링(지방을 녹인 후 남은 바삭한 찌꺼기)을 따로 건져 두어 조니케이크에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어머니는 머리를 삶아 고기를 분리하고 잘게 다져 소금과 향신료로 간한 후, 삶은 물과 섞어 팬에 담아 식혀 굳혀 머릿고기(head cheese)를 만들었다. 자투리 고기와 지방도 다져 소금, 후추, 세이지로 간하고 공 모양으로 빚어 외양간에 내놓아 얼려 보관했다. 이로써 겨울 내내 먹을 수 있었다. "도축 시기가 끝나면 소시지와 머릿고기, 라드가 담긴 큰 병, 흰 소금 절임 돼지고기가 든 통이 외양간에 있었고, 다락에는 훈연한 햄과 어깨살이 걸려 있었다."

하지만 자신들이 키운 돼지의 햄을 직접 먹을 수 있는 가족은 비교적 부유한 편이었다. 대다수는 신선한 돼지고기와 햄을 팔아야 했다. 당시 가장 일반적인 보존육은 잉글랜드식 베이컨이 아니라 통 절임 돼지고기(barrel pork)였다. 이는 커다란 돼지고기 조각을 통에 담긴 염수(brine) 속에 담가 보존한 것으로, 미국의 가난한 사람들과 중산층, 그리고 군대의 주요 육류 공급원이었다. 미 독립전쟁부터 남북전쟁까지 이어졌으며, 1812년 전쟁 당시 뉴욕의 포장업자 ‘엉클 샘(삼)’ 윌슨이 대량의 돼지고기를 군에 납품하면서 미국 정부의 상징이 되었다. 이때부터 엉클 샘은 높은 모자를 쓴 거인으로 묘사되었고, ‘엉클 샘이 군대를 먹인다’는 문구가 등장했다.

통 절임 돼지고기는 포함된 부위에 따라 등급이 매겨졌다. 큰 돼지의 옆구리살만 들어간 통도 있었지만, 어떤 통은 머리와 족발까지 섞여 있었다. 노동자 계층 중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가족은 질 좋은 고기를 얻었고, 노예들은 가장 낮은 등급의 고기를 받았다. 이런 통 절임 돼지고기의 흔적은 오늘날에도 ‘바닥까지 긁어먹는다(scraping the bottom of the barrel)’거나 ‘포크 배럴(pork barrel legislation)’이라는 정치 용어에 남아 있다. 후자는 세금으로 모은 공공자금을 특정 지역구나 정치인의 이해관계를 위해 사용하는 법안을 일컫는 말로, 공동의 자원을 사적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물론 이런 고기의 맛은 제대로 가공한 베이컨에 비할 바 못 됐다. 윌리엄 코벳은 돼지고기를 절이는 동안 물기를 잘 빼야 하며, 염수에 너무 오래 담그면 "통 절임 돼지고기나 해상 군대식 돼지고기(sea junk)와 같은 끔찍한 맛이 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많은 미국인들은 통 절임 돼지고기를 즐겼다.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의 『체인베어러』(1845) 속 개척지 여성은 통 절임 고기를 적당한 생활 수준의 지표로 여긴다. 그녀는 빵과 감자는 기본으로 여기며, "돼지고기 통이 바닥을 드러내는 상황은 가정이 심각한 위기라는 뜻"이라 했다. 그녀는 "온갖 사냥감보다 튼튼하게 자란 돼지고기를 먹은 아이가 낫다"고 말하며, 돼지고기를 ‘생명의 지팡이’라 표현했다.

하지만 낯선 이들은 그렇게까지 열광하지 않았다. 1854년 아이오와로 이주한 노르웨이 여성은 일기에서 이렇게 썼다. "식사는 삶은 돼지고기에서 구운 돼지고기까지, 덜 익은 것부터 과하게 익힌 것까지 다양하다." 여기에 커피, 빵과 버터, 피클, 감자와 볶은 양파가 간혹 곁들여졌다고 했다. "이것이 아침, 점심, 저녁의 식사다… 아, 고향의 햇감자와 고등어가 그립다!" 1850년대 켄터키에서 텍사스로 여행을 떠난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는 처음에는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와 옥수수빵을 맛있게 먹었지만, 이후 6개월 동안 ‘그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물론 잘사는 사람들은 다른 고기들과 함께 신선한 돼지고기와 햄을 즐겼으며, 19세기 중반 냉장 기술이 보급되면서 이러한 소비는 더욱 일반화되었다. 그러나 고립된 남부나 서부의 시골 지역에서는 전통적인 식단이 크게 바뀌지 않았다. 헨리 애덤스는 “인디언 옥수수는 국가적인 작물이었고, 하루 세 끼 모두 다른 형태의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와 함께 먹었다”고 적었다. 1929년 블루리지 산맥의 한 공동체에서는 음식이 가장 풍부한 늦여름조차 아침은 튀긴 비계(fat back), 옥수수빵(corn pone), 걸쭉한 그레이비가 기본이었고, 점심은 오트밀, 옥수수빵, 비스킷, 잼, 커피였으며, 저녁은 또다시 비계, 옥수수빵, 때때로 우유와 커피가 제공되었다.

전반적으로 모든 계층을 통틀어 미국인들은 유럽인보다 훨씬 많은 육류를 섭취했으며, 그중에서도 돼지고기가 가장 선호되고 가장 많이 소비된 고기였다. 1830년대 미국을 방문한 프레더릭 매리엇은 미국의 돼지고기 풍요에 감탄했다. 그는 7월 4일 뉴욕을 방문하며 브로드웨이 3마일 내내 구운 돼지고기를 파는 노점들로 가득 차 있다고 기록했다. 이는 뉴욕뿐 아니라 미국의 다른 도시나 마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돼지고기는 점점 더 조리하기 쉬운 식품으로 변모했다. 오래 물에 담가 부드럽게 삶은 뒤 껍질을 벗기는 복잡한 시골 햄에서 오븐에 단순히 데우기만 하면 되는 미리 조리된 햄으로, 4~10파운드에 달하는 기름진 베이컨 덩어리에서 1915년 처음 출시된 얇고 가지런한 포장 베이컨으로 바뀌었다. 라드는 점차 식물성 기름으로 만든 쇼트닝인 크리스코(Crisco)로 대체되었다. 1911년 처음 출시된 크리스코는 프로터 앤 갬블이 홍보한 제품으로, 무미무취라는 특징이 오히려 장점이라 주장했다. 광고에서는 “소녀들이 에너지로 삼을 지방은 가장 순수하고 위에 부담 없는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무언가가 사라졌다. 오늘날의 베이컨과 햄은 예전만큼 맛있지 않다. 예를 들어 1904년의 햄 요리법을 보면, 햄을 식초와 향신료로 삶고 머스터드, 빵가루, 설탕, 정향, 건포도, 셰리를 얹어 오븐에 굽는다. 반면 1939년 요리법은 통조림 파인애플과 마라스키노 체리, 흑설탕을 듬뿍 얹어 단순히 데우기만 한다. 미국인의 돼지고기 요리는 전반적으로 너무 달아졌다. 그 극단적인 예가 인디애나 포크 케이크인데, 잘게 간 생 돼지비계와 건포도, 대추야자, 시트론, 밀가루, 향신료, 대량의 당밀과 흑설탕으로 만든다.

돼지고기의 편의성을 극대화한 대표적인 예는 스팸(Spam)이다. 스팸은 조리된 돼지고기와 지방이 정사각형 캔에 담긴 형태로, 언제든 꺼내어 자르고 데워 바로 먹을 수 있다. 호멜 식육회사(Hormel Meatpacking Company)는 원래 통조림 햄을 판매하고 있었지만 어깨살 부위를 처리할 방법이 없었다. 1937년 제이 호멜은 어깨살과 햄을 섞어 작은 캔에 담는 아이디어를 냈고, 처음엔 "스파이스드 햄"으로 불렸지만 곧 기억하기 쉬운 "스팸"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스팸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본격적으로 자리 잡았다. 저렴하고 운반이 용이하며 유통기한이 길어 병사들을 먹이거나 해외에 원조하는 데 매우 유용했기 때문이다. 1944년에는 호멜사의 스팸의 90%가 미군 병사와 해외 민간인에게 공급되었다. 이탈리아와 영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는데, 고기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스팸 같은 제품이 구세주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육류가 스팸보다 덜 맛있다. 니키타 흐루쇼프는 스팸이 ‘맛있다’고 평하며 “스팸이 없었더라면 우리 군을 먹일 수 없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반면 미군 병사들은 “건강검진 통과 못한 햄”, “훈련도 안 받은 미트로프”라며 스팸을 조롱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복무 중 스팸을 접한 많은 병사들은 결국 그것을 좋아하게 되었고, 전쟁 이후에도 판매량은 증가했다. 오늘날 스팸의 판매량은 30~40년 전보다 줄었지만 여전히 꾸준하며 충성도 높은 팬층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스팸은 총 10가지 종류가 있으며, 건강을 고려한 저지방·저염 제품(Spam Lite, Spam Low Sodium)과 이국적인 맛을 강조한 제품(Spam Hickory Smoked, Spam Hot & Spicy)도 포함되어 있다.


스팸(Spam)은 하와이에서 귀하게 여겨지는 육류로, 일본식 요리 문화에 깊이 녹아들어 있다. 라면 국물 요리나 도시락에 곁들여지는 것은 물론, 스팸 스시—튀긴 스팸 조각 위에 찰밥을 얹고 김으로 감싼 형태—는 어디서나 구입할 수 있는 테이크아웃 간식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주둔했던 괌에서는 1인당 연간 스팸 소비량이 8파운드(약 3.6kg)에 달한다. 하와이의 유명 셰프이자 요식업자인 샘 초이(Sam Choy)는 스팸을 깍둑썰기해 파인애플, 간장, 생강, 흑설탕과 함께 졸여 만든 ‘파인애플 스팸’을 자랑스럽게 선보였다. 스팸 제조사인 호멜(Hormel)은 다양한 요리법을 개발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흑설탕을 입히고 정향을 박아 햄처럼 구워낸 스팸 요리였다. 회사는 미국 가정주부들을 대상으로 여러 레시피를 제안했으며, 대표적인 예로는 다음과 같다: 플랭크에 올려 구운 ‘플랭크드 스팸(Planked Spam)’—매시 포테이토와 구운 토마토, 파슬리를 곁들임—, 통조림 고구마를 스팸 슬라이스 사이에 끼우고 복숭아 통조림 조각을 얹은 후 복숭아 시럽과 머스터드를 섞어 뿌리고 30분간 구운 ‘스팸 앤 얌 피에스타 로프(Spam ‘N’ Yam Fiesta Loaf)’ 등이다. 현재 스팸 공식 웹사이트에서는 ‘토르테 루스티카(Torte Rustica)’라는 전채 요리(얇게 썬 스팸, 치즈, 시금치, 구운 피망, 이탈리안 시즈닝을 퍼프 페이스트리 사이에 켜켜이 쌓아 만든 것)와 ‘스팸 피데오(Spam Fideo)’(노릇하게 구운 스팸 조각에 피데오 파스타, 통조림 완두콩과 옥수수를 섞은 요리) 같은 수상작 레시피도 소개하고 있다.

미국 남부는 예로부터 돼지 사육에 최적의 환경이었다. 온화한 겨울 덕분에 돼지들이 일 년 내내 야외에서 풀을 뜯으며 자유롭게 자랄 수 있었고, 돼지고기는 남부 요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신선한 돼지고기는 겨울에만 구할 수 있었지만, 돼지고기는 보존성이 뛰어났고 라드는 버터보다 오래 보관할 수 있었다. 미국산 햄 중 가장 품질이 좋은 것들은 남부, 특히 버지니아 주의 스미스필드(Smithfield) 지역에서 나왔다. 이 지역의 돼지들은 여름에는 숲속에서 도토리와 뿌리를 먹으며 자라고, 가을에는 수확이 끝난 땅콩밭을 돌아다니며 먹이를 섭취한 뒤, 마지막으로 가두어 옥수수를 먹이며 도축을 준비했다. 오늘날에는 돼지들이 자유롭게 방목되지는 않지만, 햄은 여전히 전통 방식으로 제조된다. 소금, 질산염, 때로는 설탕이나 후추로 문질러 염지한 뒤, 서늘하고 어두운 장소에 4주간 보관한다. 이후 세척하고 망에 넣어 매달아 6개월에서 수년간 숙성시키며, 숙성소에는 히코리 또는 다른 활엽수의 연기가 흘러들기도 한다.

버지니아 햄은 높은 평가를 받아 초기 식민지 시대의 한 주지사는 이를 염장하여 영국에 있는 형제와 주교 세 명에게 선물로 보냈고, 빅토리아 여왕은 정기 주문을 하기도 했다. 이 햄은 물에 하룻밤 담가 곰팡이층을 문질러 제거한 뒤 약 5시간 동안 삶는다. 이후 유약을 발라 오븐에 굽거나 슬라이스로 잘라 구워 먹는다. '레드아이 그레이비(Red-eye gravy)'는 햄을 두툼한 기름과 함께 굽다가 팬에 진한 블랙 커피를 부어 만드는 소스로, 햄 위에 뿌려 먹는다. 남부에서는 ‘햄 비스킷’이라는 음식도 인기인데, 잘게 썬 햄을 미국식 비스킷에 절임 소스와 머스터드를 곁들여 미니 샌드위치로 만든 것으로, 파티 음식으로 자주 등장한다.

프레더릭 더글러스 오피(Frederick Douglass Opie)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남부 백인들이 돼지의 윗부분(high on the hog)을 먹고 흑인들이 아랫부분(low on the hog)을 먹었다 해도, 결국은 모두 같은 돼지에서 나오는 음식을 먹은 셈이다 … 돼지는 인디언 옥수수를 먹고 자랐다.” ‘Living high on the hog’(호화롭게 사는 것)이라는 표현은 돼지고기가 미국 문화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은유다. 돼지고기 중 가장 인기 있는 부위인 등심, 안심, 햄은 돼지의 윗부분에서 나오고, 아랫부분은 한때 저렴했던 스페어립, 베이컨, 소금에 절인 고기, 족발 등이 나온다.

노예들은 매일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를 배급받았고, 일부는 자신의 작은 농지에서 돼지를 기르기도 했다. 1830년대 앨라배마 주의 한 관대한 플랜테이션 농장주는 노예들에게 주간 식량으로 베이컨 4파운드(약 1.8kg), 옥수수 가루 1팩(약 9리터), 당밀 1파인트(약 0.47리터), 절인 생선 3마리, 신선한 고기(가능할 경우), 원하는 만큼 채소를 제공했다. (당밀은 염장 돼지고기의 짠맛을 중화하는 데 유용했다.) 도축철이 되면, 노예들은 덜 인기 있는 부위를 배급받았고, 그들은 이 부위들을 최대한 활용할 방법을 익혔다. 머릿살(hog maw), 족발(trotters), 턱살(jowl), 햄 훅(ham hock), 목뼈 등을 검은눈콩, 고구마, 콜라드 그린 또는 순무잎, 옥수수빵에 넣어 풍미를 더했다. 창자는 튀겨서 먹었고,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를 구운 뒤 크림 그레이비를 부어 촉촉하게 먹었다. 옥수수 가루와 물을 섞어 철판에 구운 뒤 얇게 썬 소금 돼지고기를 바삭하게 튀기고, 그 기름에 당밀을 섞어 함께 먹기도 했다. 또는 라드를 녹인 뒤 남은 돼지껍질(크랙클링, crackling)을 옥수수가루, 소금, 베이킹소다, 버터밀크와 섞어 구운 ‘크랙클링 브레드’를 만들었다. 북미와 남미에서 크랙클링은 일반적으로 돼지고기를 굽는 것이 아니라, 지방을 녹여 만드는 방식으로 생산되며, 이는 영국의 방식과 다르다.


메릴랜드의 부활절 대표 음식으로 자주 등장하는 ‘스터프드 햄(Stuffed Ham)’은 원래 노예들이 개발한 요리라고 전해진다. 당시 노예들은 상대적으로 인기가 낮은 돼지머리 부위를 이용해야 했고, 그 머리에 1520개의 깊은 칼집을 내어 케일, 양배추, 시금치, 파, 후추 등으로 채웠다. 달콤한 돼지고기와 매콤한 채소의 조합은 매우 맛있었고, 이를 눈여겨본 부유한 백인들은 돼지머리 대신 햄을 사용해 요리를 발전시켰다. 햄을 먼저 물에 담가 한 시간 정도 삶은 뒤 껍질과 대부분의 지방을 제거하고 칼집을 내어 채소를 채운다. 이후 햄 전체를 치즈천으로 단단히 감싸고 34시간 동안 천천히 삶는다. 조리된 햄은 얇게 썰어 실온 상태로 낸다.


1940년,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캐서린 파머(Katherine Palmer)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공동체의 ‘치틀린 퍼레이드(Chitlin Strut)’라는 자선 축제를 보도했다. 가을이 끝나갈 무렵, 메히터블(Mehitable)과 도크 도시(Doak Dorsey) 부부가 돼지를 도축하고 내장을 치틀린(Chitterlings, 돼지창자) 용으로 절인다는 소식을 들은 흑인 주민들이 모여들었고, 입장료로 25센트를 냈다. 메히터블은 매우 까다롭고 시간이 많이 드는 방식으로 치틀린을 조리했다.


“치틀린은 깨끗하고 냄새 없이 준비해야 해요. 돼지를 죽이고 털을 밀고 나면 내장을 꺼내 손으로 최대한 깨끗이 짜내요. 그런 다음 물에 두 번 헹구고, 길게 가른 뒤 다시 두 번 헹궈요. 그 후 무딘 칼로 꼼꼼히 긁어내고, 다시 물에 두 번 헹구면 소금물에 담글 준비가 돼요. 이걸 이틀간 담갔다가 3시간 삶아요. 다시 헹군 뒤 4인치 길이로 썰고, 옥수수 가루를 묻힌 뒤 중간 불에 튀겨요. 돼지기름으로 튀기는 게 최고죠. 누군가는 바삭하게, 누군가는 중간 정도로, 또 누군가는 데우기만 한 걸 좋아해요.”


그녀는 별다른 향신료를 넣지 않았다. 식초 같은 신맛은 원래의 풍미를 해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날 식사는 코울슬로, 피클, 당밀, 콘브레드, 커피와 함께 제공되었고, 저녁 식사 후에는 춤판이 벌어졌다.

치틀린은 삶아서 차게 식힌 후 식초와 고추 소스와 함께 먹기도 하고, 따뜻하게 바비큐 소스를 곁들여 내기도 한다. 어떤 방식으로 조리하든, 조리 전 찬물에 아주 오랫동안 깨끗이 씻는 것이 필수이다. 음식 평론가인 스턴 부부(Sterns)는 한 지역에서 치틀린을 사들였다가, 악취가 너무 심해 차 밖으로 내던져야 했던 경험을 언급한 바 있다.

솜씨 좋은 요리사는 값싼 재료만으로도 훌륭한 식사를 만들 수 있었다. 염장 돼지고기는 매우 강력한 풍미를 더해주는 재료였다. 앨라배마에서 자란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은 이렇게 회고했다.


“순무잎, 겨잇잎, 콜라드 그린엔 햄 훅(ham hock) 몇 조각이 반짝이고 있었고, 크라우더 완두콩이랑 버터콩도 마찬가지였죠. 햄뼈 하나면 감자와 그린빈을 넣은 수프, 또는 토마토, 쌀, 옥수수, 오크라가 어우러진 스튜 하나는 거뜬히 만들 수 있었어요.”


이러한 요리는 단순한 생존 음식이 아닌, 공동체의 지혜와 미각이 녹아든 삶의 일부였다.


돼지고기를 하루 세 끼 모두 먹고, 모든 음식을 기름에 튀기는 식단은 맛이 없을 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해로울 수 있다. ‘올 캐빈 양배추(ol’ cabin cabbage)’라는 레시피는 이런 음식 문화가 어떻게 퇴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양배추와 돼지비계 한 덩어리를 넣고 삶되, “고기와 양배추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익히라는 것이다.

전통적인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요리는 1960~70년대 흑인 의식의 성장과 함께 ‘소울푸드(soul food)’라 불리기 시작했다. 값싼 재료를 최대한 활용한 요리들은 이제 흑인 문화의 자랑스러운 일부로 여겨졌고, 흑인들은 자신들의 음식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소울푸드 요리책을 내기 시작했고, 이 책들은 백인들까지 모방하게 만들었다. 소울푸드의 핵심은 돼지고기의 전방위적 활용이다. 돼지고기 자체뿐 아니라, 채소를 볶거나 생선·닭고기를 튀길 때도 돼지기름이 사용된다. 돼지고기와 채소를 삶은 물인 ‘팟 리커(pot likker)’는 옥수수빵과 함께 수프처럼 마시기도 한다. 일부 현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건강 문제나, 이슬람 국가처럼 종교적 이유로 소울푸드를 멀리하기도 하지만, 소울푸드는 여전히 저렴한 비용으로 매우 맛있는 전통 음식으로 높이 평가받는다.

유럽인들처럼 미국인들 역시 돼지고기를 곡물과 콩류 요리에 활용했다. ‘호핀 존(Hoppin’ John)’은 서인도 제도와 미국 남부에서 유래된 요리로, 카우피(cowpeas)나 검은눈 완두콩(black-eyed peas)을 돼지비계와 함께 끓이다가 중간에 생쌀을 넣고 소금, 후추, 양파로 간을 한다. 새해 첫날에 행운을 빌며 먹는 전통 음식이다. 뉴올리언스식은 붉은콩을 사용하고 더 많은 향신료가 들어간다. 전통적으로는 일요일 햄의 뼈와 남은 고기나 기름을 활용했다. 폴 프루돔(Paul Prudhomme)은 “월요일이면 주부가 콩을 끓여놓고 빨래를 돌리고, 콩은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오래 끓여져 요리가 완성됐다”고 설명했다.

레드빈과 라이스는 현대에는 고급 요리로도 제공된다. 예를 들어, 크레이그 클레이버른은 햄 스테이크, 토마토 페이스트, 초리조를 넣어 풍미를 더했다. 아이티의 ‘리 에 푸아 콜레(Riz et Pois Colles)’는 붉은콩과 쌀을 돼지염장고기, 양파, 쪽파, 파슬리로 맛을 내 함께 조리한 요리다. 쿠바의 ‘모로스 이 크리스티아노스(Moros y Cristianos)’는 햄이나 튀긴 염장 돼지고기, 향신료와 채소를 넣은 검은콩 소스를 쌀에 끼얹는 요리이고, ‘렌테하스 콘 푸에르코(Lentejas con Puerco)’는 갈색으로 튀긴 돼지고기를 넣어 끓인 렌틸콩 요리로 바나나를 곁들여 낸다. 브라질에서는 노예들이 블랙빈, 육포, 쌀에 향신료와 돼지 귀, 발, 꼬리 등 버려진 부위를 더하고 채소를 넣어 ‘페이조아다(feijoada)’를 만들어냈고, 이는 현재 브라질의 국민 음식이 되었다.

청교도 개척자들은 건조 겨자, 소금, 당밀로 간을 한 완두콩 또는 네이비빈을 돼지염장고기와 함께 구워 먹었다. 이 요리는 토요일 밤에 미리 준비해 오븐에 넣고 밤새 조리하면 주일에는 요리 없이 식사가 가능했기 때문에 인기를 끌었다. 구운 콩 요리는 지금도 대표적인 미국 전통 요리 중 하나다. 1902년부터 1960년대까지 필라델피아와 뉴욕에서 성황을 누린 ‘혼앤하다트 오토맷(Horn and Hardart Automats)’에서는 작고 귀여운 냄비에 돼지기름 조각이 얹힌 콩요리가 가장 인기 있는 메뉴 중 하나였다. 이곳은 전통적이고 저렴한 미국식 가정식을 제공하는 곳이었다.

초기 미국에서는 소를 기르기가 까다로웠고, 주로 젖소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이 되자 서부에서 대규모 소 산업이 형성되었고, 냉장 철도 차량이 생기면서 전국적으로 소고기 유통이 가능해졌다. 1909년 미국은 처음으로 돼지고기보다 소고기를 더 많이 생산했다. 같은 해, 북부 도시의 백인들은 돼지고기보다 소고기를 더 많이 먹었고, 남부 백인은 두 고기를 비슷한 비율로 소비했으며, 북부 흑인들도 비슷한 수준이었다. 돼지고기를 분명히 선호한 계층은 남부 흑인뿐이었다.

이 시기부터 돼지고기는 하층계급과 연관되기 시작했다. 1880년대 『더 홈메이커(The Home-maker)』 잡지의 편집자는 돼지 사육과 사료의 실태를 보면 “상류층 사이에서 돼지고기에 대한 반감이 확산되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고 평했다. 메리 힌먼 에이블(Mary Hinman Abel)은 『소득이 적은 사람들을 위한 요리책』(1890)에서 돼지고기가 저렴한 점에서만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며 꺼리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뉴욕 요리학교 소장이었던 줄리엣 코르슨(Juliet Corson)은 『노동자 가족을 위한 15센트 저녁』(1877)과 『6인 가족을 위한 25센트 저녁』(1885)에서 일주일 식단을 제안했는데, 전자에서는 약 절반이 돼지고기 기반 식사였으나, 좀 더 여유 있는 가족을 위한 후자에서는 7개 중 단 2개의 메뉴만 돼지고기를 사용했다. 그녀의 돼지고기 레시피는 맛보다는 절약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돼지염장고기와 양배추 스튜, 돼지 내장 스튜(간, 심장, 허파), 돼지 뇌와 간 푸딩 등이 그것이다.

또 다른 가정 과학 교사 엘리자베스 힐리어(Elizabeth Hillyer)는 『52가지 일요일 저녁 식사』(1915)에서 중산층을 대상으로 주말 최고의 식사를 위한 메뉴를 제안했는데, 52가지 중 돼지고기를 포함한 메뉴는 단 4가지뿐이며, 모두 고급 부위로 구성된 로스트 요리였다. 즉, 로스트 숄더, 로스트 로인, 구운 햄, 리옹식 돼지안심이다.


엘리자 레슬리(Miss Eliza Leslie)는 그녀의 저서 『New Cookery Book』(1857)에서 베이컨—즉 햄을 제외한 훈제 돼지고기 전반—에 대해 “시골 식탁 외에는 어울리지 않는 너무 평범한 음식”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햄에 대해서는 “도시에서도, 어느 곳에서도 즐길 수 있는 진미”라고 평가했다. 흥미롭게도 햄은 생돼지고기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 이는 아마도 돼지고기가 다른 고기보다 쉽게 상한다고 여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레슬리는 돼지고기를 깎아내리면서도, 그것이 실용적이고 경제적인 식재료라는 사실은 인정했기에, 손이 많이 가더라도 정성껏 조리할 가치는 있다고 보았다. 그녀는 신선한 돼지고기의 좋은 부위를 굽는 방법과, 햄을 구워서 내는 두 가지 방식도 소개했다. 또한 남은 고기, 소시지, 족발을 활용한 절약형 레시피도 포함시켰다.

보스턴 요리학교(Boston Cooking School)에 다녔고 훗날 그곳의 교장이 된 패니 메릿 파머(Fannie Merritt Farmer)는 1896년에 『보스턴 요리학교 요리책(Boston Cooking-School Cook Book)』을 출간했다. 이 책은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요리책이 되었으며, 꾸준히 베스트셀러로 사랑받아 1990년에는 매리언 커닝햄(Marion Cunningham)에 의해 13번째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과학적 조리법의 옹호자였던 파머는 돼지고기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녀는 19세기에 흔히 퍼져 있던 “돼지고기는 건강에 해롭다”는 관념에 권위를 실어주었는데, 이는 가정 관리 전문가 사라 조세파 헤일(Sarah Josepha Hale)의 경고와 맥을 같이한다. 헤일은 “로스트 포크(구운 돼지고기)로 배를 채우는 것은 위험한 시도이며, 강한 위장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무거움과 구역질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파머는 생돼지고기를 “모든 고기 중 소화가 가장 어려운 고기”로 규정하며, “겨울철에만 가끔 먹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반면, “염장, 소금절이, 훈연 등의 가공 과정을 거치면 돼지고기는 좀 더 소화가 잘 되는 음식이 된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쇠고기에 대해서는 “가장 영양가가 높고 가장 널리 소비되는 고기”라고 평가했다.

파머가 수록한 돼지고기 레시피는 15가지로, 쇠고기 및 송아지고기 레시피(50개), 양고기 및 양고기 레시피(23개), 닭고기 레시피(32개)에 비해 훨씬 적다. 그녀의 돼지고기 요리들은 대체로 단순하게 조리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구운 돼지 안심이나 돼지갈비, 아침용 베이컨, 대구와 함께 볶은 염장 돼지고기, 햄 스테이크 구이, 햄과 계란 프라이, 햄 삶기, 샴페인 소스를 곁들인 구운 햄, 서스트팔렌 햄(그저 얇게 썬 형태), 빵가루를 입혀 구운 또는 튀긴 족발, 단순히 튀긴 소시지, 그리고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를 넣은 베이크드 빈 요리 등이 있다.

그녀의 긴 수프 목록에는 돼지고기가 포함된 요리가 단 네 가지 차우더(chowder)에 불과하다. 차우더란 조개, 옥수수, 감자 등을 주재료로 한 진한 수프로, 일반적으로는 잘게 썬 염장 돼지고기를 먼저 볶아 기름을 낸 다음 그 위에 재료와 육수를 넣고 끓인다.

그녀가 제안한 다양한 식단에서도 돼지고기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18개의 점심 메뉴 중 돼지고기가 들어간 것은 햄 스테이크가 포함된 하나뿐이며, 저녁 식단 중에는 돼지고기를 메인으로 한 메뉴가 단 하나도 없다. 대신 쇠고기 요리는 3개, 생선요리는 6개, 가금류 요리는 4개, 양고기 요리는 4개, 송아지고기 요리는 1개가 포함되어 있다. 특히 12코스의 정찬 식단 3가지에서는 단 하나의 돼지고기 요리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예상대로, 19세기 뉴욕 최고의 레스토랑 중 하나였던 델모니코(Delmonico's)에서는 돼지고기 요리가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델모니코에서 셰프로 일했던 찰스 란호퍼(Charles Ranhofer)는 『The Epicurean: A Complete Treatise… on the Culinary Art』(1893)에서 염장 돼지고기, 족발 등 덜 인기 있는 부위를 포함한 돼지고기 요리를 다루기는 했지만, 그가 소개한 86개의 특별 디너 메뉴 가운데 돼지고기가 주요 요리로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부 저녁 메뉴에서 사이드디시로 베스트팔렌 햄, 젤라틴 처리한 자돈 요리, 부댕 소시지, 튀긴 햄 등이 등장하긴 하지만, 메인 로스트로 쓰인 경우는 한 번도 없다.

패니 파머의 『보스턴 요리학교 요리책』을 1979년과 1990년에 개정한 마리언 커닝햄(Marion Cunningham)은 돼지고기에 좀 더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책에서도 미국인의 쇠고기 선호가 여전히 두드러진다. 쇠고기와 송아지고기 요리는 총 55개인데 반해, 돼지고기(생고기, 햄, 소시지 포함)는 36개다. 그녀는 족발이나 내장 요리뿐 아니라, 등심 같은 고급 부위의 조리법도 포함시켰다. 예전의 '돼지고기는 건강에 해롭다'는 믿음을 버리고, 돼지고기가 ‘단백질과 비타민 B1이 풍부하고, 맛도 뛰어나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미국인의 다양하고 이국적인 요리에 대한 관심 증가를 반영하여, 호이신 소스, 케첩, 설탕, 셰리주, 간장을 섞어 재운 뒤 오븐에 구워 만든 중국풍 돼지고기 요리도 수록했다. 대공황 시기 닭고기보다 돼지고기가 더 저렴했을 때 유행한 ‘시티 치킨(City Chicken)’—돼지고기와 닭고기 조각을 꼬치에 끼워 튀기고 소스에 조린 요리—도 되살려 소개했다.

커닝햄은 돼지고기와 햄의 다양한 활용 방법을 소개하면서 수프, 닭고기 요리, 채소, 파스타의 풍미를 돋우는 데에도 돼지고기가 유용하다고 설명한다. 그럼에도 그녀가 제안한 식단에서 돼지고기의 존재는 미미하다. 8개의 가족 디너 메뉴 중 돼지고기가 주요 요리로 등장하는 것은 단 한 번뿐이며, 그것도 스모크 숄더인 피크닉 햄이다. 반면 쇠고기 요리는 세 가지이며, 닭고기 두 가지, 생선 한 가지, 양고기 한 가지가 포함되어 있다. 그녀의 소규모 저녁 파티 메뉴들 역시 다른 고기나 생선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미국 요리책들에서는 돼지고기와 햄 레시피가 꾸준히 소개되며 인기는 있지만, 실제 식단에서는 주요 요리로 등장하는 빈도가 낮다는 점에서 특이한 괴리가 드러난다.

미국인의 취향 변화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는 1816–17년과 1926–27년 두 전문직 가정의 식료품 소비 내역이다. 1816년의 가정은 돼지고기와 쇠고기에 거의 같은 비율로 지출했지만, 돼지고기의 6분의 5는 가공육이었다. 반면 1926년의 가정은 쇠고기에 전체 육류 지출의 49.7%, 돼지고기에 39.3%를 썼고, 그 중 절반은 생돼지고기였다. 이는 냉장기술의 보급을 반영한다. 또한 1916년에는 전체 식품 예산의 0.7%를 라드에 썼던 반면, 1926년에는 0.1%에 불과했다. (참고로 쇠고기의 가격이 돼지고기보다 훨씬 비쌌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1950년 미국인의 1인당 평균 소비량은 쇠고기 57파운드(25.9kg), 돼지고기 64파운드(29kg), 양고기 및 염소고기 4파운드(1.8kg)였다. 1970년에는 쇠고기 86파운드, 돼지고기 55파운드, 양고기 3파운드였으며, 1994년에는 쇠고기 64파운드, 돼지고기 50파운드, 양고기 1파운드였다. 2000년 기준으로는 쇠고기 64.5파운드(29.3kg), 닭고기 53파운드(24kg), 돼지고기 47.7파운드(21.6kg)로 돼지고기는 세 번째로 많이 소비되는 육류가 되었다. 생선은 평균 15파운드(6.8kg), 양고기는 여전히 1파운드 수준이다.

미국과 영국 모두에서 가장 선호되는 고기는 쇠고기이며, 특히 스테이크와 로스트 비프가 인기가 높다. 1947년 갤럽 여론조사에서 미국인들이 이상적인 식사로 가장 많이 선택한 것도 스테이크였다. 1962년에는 TV 디너 중 가장 인기 있었던 것이 프라이드 치킨, 로스트 터키, 살리스버리 스테이크, 로스트 비프였다. 패스트푸드 산업도 햄버거 중심으로 성장했다. 1920~30년대 미국 최초의 드라이브인 레스토랑인 텍사스의 ‘피그 스탠드(Pig Stand)’는 돼지고기 로인에 피클과 바비큐 소스를 얹은 ‘피그 샌드위치’로 유명했지만, 오늘날 맥도날드는 12개의 쇠고기 햄버거, 8개의 치킨 버거, 3개의 쇠고기 랩, 6개의 치킨 랩, 1개의 생선 버거 중 돼지고기 제품은 단 두 개—바비큐 립 버거와 베이컨 치즈 랩—에 불과하다. 현재 돼지고기 중에서도 베이컨 등 가공육은 여전히 인기가 있다. 맥도날드의 아침 메뉴 대부분에도 햄, 소시지, 베이컨이 포함되어 있다. 베이컨은 햄버거의 토핑이나 BLT(베이컨, 상추, 토마토) 샌드위치의 핵심 재료이기도 하다. 과거 이탈리아 이민자 커뮤니티에 국한되어 있던 이탈리아 소시지도 이제는 길거리 판매나 피자 토핑으로 널리 보급되었다.

라틴아메리카 일부 지역에서는 쇠고기를 선호하지만, 카리브해 및 안데스 지역에서는 돼지고기가 가장 인기 있는 고기다. 카리브 지역에서는 ‘치차로네스(chicharrones)’라 불리는 바삭하게 튀긴 돼지 껍질이 대중적인 길거리 간식이다. 푸에르토리코의 산후안에서는 일요일 오후 가족들이 차를 타고 ‘레촌 거리(La Ruta del Lechón)’를 따라 드라이브를 즐기며, 그곳의 노점에서 로스트 자돈 요리를 맛본다. 그 지역에서는 크리스마스 디너의 주 요리가 로스트 자돈이나 구운 햄이다. 쿠바인들은 양념한 구운 돼지고기와 햄, 치즈, 피클을 넣은 쿠반 샌드위치를 즐긴다. 에콰도르에서는 족발 튀김이 인기 있는 애피타이저다. 에콰도르 시골에서는 축제를 위해 돼지를 도축하고, 먼저 껍질 튀김, 그다음 튀긴 돼지고기 조각, 마지막으로 내장으로 만든 소시지와 수프를 나눠 먹는 전통이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돼지고기의 세계사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