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에 발간된 농촌진흥청 국립 축산 과학원의 축산연구 60년사를 보면 우리나라에 서구 개량종이 들어 온 것은 1903년 중요크셔종이 1905년에 버크셔종이 처음 도입되었는데 이때 전국에서 사육되고 있는 돼지두수는 약 570천두 정도였다.
돼지속의 동물로, 고기를 이용할 목적으로 기른다. 영어로는 pig·hog·swine 등으로 쓰이고 수퇘지는 boar, 암퇘지는 sow로 표현한다. 한자어로는 저(猪)·시(豕)·돈(豚)·체·해(亥) 등으로 적고, 한국에서는 돝·도야지로도 불렀다. 돼지가 가축화된 시기는 동남아시아에서는 약 4800년 전, 유럽에서는 약 3500년 전이며, 한국에 개량종 돼지가 들어온 것은 1903년이다[네이버 지식백과] 돼지 [pig] (두산백과)
네이버등 모든 기록에 조선반도에 서구 개량종이 들어 온 것은 1903년 이라고 되어 있다.
이는 아마도 조선농회에서 1944년 발행한 조선농업발달사p286의 기록에 의한 것 같다.
이는 고 강면희교수의 한국축산기술사에도 기록되어 있다.
반면 축산연구 60년사에도 기록되어 있지만 농무목축시험장의 시설 (p67)
1882년 한미통상조약이 체결된 이후 1883년 9월부터 40여일간 미국을 순방하고 돌아온 민영익 일행은 미국의 발달된 교육제도와 농업기계 및 농법을 보고 크게 감명을 받고 미국식 농장을 만들어 가축의 양종과 외국의 국물, 채소등의 재배법을 도입하고자 하였다. 이들이 돌아와 청원한 결과 다음해인 1884년 우리나라 최초의 농사시험장인 농무목축시험장을 설치하고 보빙사의 일행으로 미국을 다녀온 최경석이 시험장의 관리관으로 임명되었다. (중략) 가축도 캘리포니아에서 말3두, 젖소 저지종 3두 조랑말 3두 돼지8마리 양 25두 등을 도입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여기 분명 미국에서 1884년 돼지 8마리를 도입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농무목축시험장*1884-1906)의 기구변동과 운영 이라는 한국농업사학회 김영진 명예회장과 홍은미 경제 인문사회 연구회 기획팀장이 쓴 논문을 보면 1900- 1902년에 신촌에 신설한 시범목장에 관한 기록이 있는데 일인 고바야가와가 1944년 조선농업발달사를 쓸 때 190쪽에
1902년경 농상공부 불란서인 기사 쇼트씨는 모범적인 사육장을 지금의 신촌역 부근에 개설하고 세계적으로 우수한 젖소, 돼지, 면양, 기타 가축을 모았다. 그 설비는 당시의 관민이 경탄할 만큼 이상적이고도 완비된 모범 사육장이었으나 얼마 안되어 우역이 발생 20여두의 값비싼 젖소가 폐사한데다 돈육이 발생 돼지도 전멸하게 되었다,
(중략) 보통 가축단위라 하여 소1두에 돼지 5두 양 10두로 환산하는 바 소 10두분의 돼지만 하더라도 50두가 되며 양은 100두가 되기 때문에 비록 우역과 돈역으로 젖소와 돼지가 모두 페사하였어도 이 사육장은 1906년까지 돈속하여 면양 사육만은 계속된 것으로 풀이 된다.
이 같은 문허 기록들로 보아 비록 1884년 도입된 돼지가 1902년 돈역으로 폐사하였지만 역사의 기록에 분명 조선반도의 서구 개량종 돼지가 도입된 건 1884년이라고 봐야 한다.
우리나라에 서구 개량종이 들어 온 것은 1903년 중요크셔종이 1905년에 버크셔종이 처음 도입되었는데 이때 전국에서 사육되고 있는 돼지두수는 약 570천두 정도였다.
다시 이 문장을 조선농업발달사를 쓴 일본인 고바야가와의 입장에서 읽어 보면 일본에 의해서 1902년 돈역으로 폐사한 돼지가 아닌 개량종 돼지가 조선에 보급된 것이다. 이건 식민사관에 의한 우리의 역사 기록이다.대한제국이 자주적으로 개량종 소와 돼지를 도입 연구하고 사육하였던 기록을 말살하고 일본인들에 의해 조선반도에 개량종 돼지등 가축이 도입되었다는 식민사관으로 쓰여진 것이다.
불행하게도 과거 농업사를 연구하던 많은 학자들과 정부 기관에서까지 이런 식민사관으로 우리의 역사를 외면 하고 있는거다.
물론 돈역으로 폐사했으니 다시 도입된 해를 기점으로 했다고 해석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난 농무목축시험장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 더욱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여담이지만 농대가 없는 연세대학교에서 연세 우유가 왜? 있을까? 아마도 1902년 신촌역 근처 사육장은 지금의 연세대학교나 이화여자 대학교가 아니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