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를 먹고 나면 괜히 기분이 좋아질 때가 있다.
“돼지고기를 먹으면 피로가 풀린다”거나, “소고기는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식의 말은
단순한 입맛의 문제를 넘어, 과학적으로도 그 뿌리를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다.
최근 식품과 기분, 감정 상태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식품 속 성분이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 가운데 자주 언급되는 두 가지 신경물질이 있다.
바로 세로토닌(Serotonin)과 아난다마이드(Anandamide)다.
이 둘은 모두 ‘기분을 좋게 만드는 분자’, 일명 행복 물질로 알려져 있지만,
그 작용 기전과 생성 경로, 식품과의 관계는 서로 다르다.
그리고 바로 그 차이 덕분에 돼지고기와 소고기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우리의 감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세로토닌은 우리가 흔히 ‘행복 호르몬’이라 부르는 신경전달물질이다.
우울증 치료제 대부분이 세로토닌의 작용을 증강시키는 방식일 만큼,
기분 안정, 불안 완화, 수면 조절, 식욕 억제 등 정서적 균형에 깊이 관여한다.
하지만 세로토닌은 음식을 통해 바로 섭취할 수 있는 물질은 아니다.
대신, 세로토닌은 트립토판(tryptophan)이라는 필수 아미노산에서 체내에서 합성된다.
트립토판은 장과 뇌에서 대사를 거쳐 세로토닌으로 변환되는데,
이때 비타민 B6, 마그네슘 등도 함께 필요하다.
그렇다면 왜 돼지고기일까?
바로 돼지고기가 트립토판 함량이 매우 높은 대표적인 식품이기 때문이다.
또한 돼지고기는 비타민 B1, B6 등 피로 회복과 대사에 중요한 영양소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어,
세로토닌 합성에 필요한 조건들을 고루 갖추고 있다.
이러한 과학적 근거 덕분에, 최근 한돈자조금 등의 홍보자료에서는
“행복 호르몬 세로토닌을 만드는 트립토판이 풍부하다”는 문구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돼지고기는 세로토닌 자체를 포함하진 않지만,
세로토닌을 만들어내는 데 꼭 필요한 재료(트립토판)를 가장 풍부하게 담고 있는 식품이다.
그래서 돼지고기를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고, 기분이 회복된다고 느끼는 건 생화학적으로도 설명 가능한 일이다.
한편, 아난다마이드(anandamide)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이름이지만,
정신적 이완, 진정, 통증 조절, 행복감과 밀접하게 관련된 ‘내적 평온의 분자’로 불린다.
이 물질은 뇌 속의 엔도칸나비노이드 시스템(endocannabinoid system)에 작용하여
신경 전달을 조절하고 감정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흥미로운 점은, 아난다마이드는 대마초 성분인 THC와 유사한 구조를 가졌으며,
자연적으로 체내에서 만들어지는 자생적 카나비노이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아난다마이드는 어디서 만들어질까?
그 출발점은 아라키돈산(arachidonic acid)이라는 지방산이다.
그리고 바로 소고기, 특히 지방이 풍부한 부위에는 이 아라키돈산이 다량 포함되어 있다.
특히 마블링이 좋은 한우나 와규 같은 고급육은 아라키돈산 비율이 높아,
아난다마이드 생성의 원료 공급원으로서도 주목받고 있다.
즉,
소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아난다마이드라는 ‘평온의 신경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재료를 섭취하는 것과 같다.
실제로 일부 연구에서는 스트레스를 받는 실험 동물에게 소고기 지방을 공급하면,
불안 행동이 감소하고 뇌 내 아난다마이드 농도가 증가하는 결과도 보고된 바 있다.
이처럼, 돼지고기와 소고기는 각각 세로토닌과 아난다마이드라는 서로 다른 생화학 회로에 관여하는 재료를 제공한다.
그렇다고 이 고기들 안에 세로토닌이나 아난다마이드가 “직접 들어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고기들은 행복감과 평온함을 만들어내는 생리적 회로에 연료를 공급해주는 ‘영양적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현대인은 그 어느 때보다 감정의 균형과 정신적 안정을 필요로 한다.
스트레스는 만성화되고, 수면은 얕아지며, 피로는 일상이 되었다.
이런 시대에 고기를 먹는다는 건, 단지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다.
그 고기가 나의 기분과 몸 상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인식하는 일이다.
세로토닌을 부르는 돼지고기,
아난다마이드의 재료가 되는 소고기.
고기 한 점이 당신의 기분을 바꾸는 과학적 기반의 이유 있는 선택이 되는 시대다.
그러니 오늘 당신의 식탁에 오른 고기가 어떤 기분을 데려올지, 한 번쯤 떠올려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