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불고기 역사는 전후부터 시작되었다는 말이 사실인가
진실인 양 속삭여지고 전해들은 이야기가 반드시 진실은 아니다. 음식점에서의 원조나 본가, 개조 문제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 목소리가 큰 자나 살아남은 자가 승리하는 경우가 많다. 역사를 선전하는 자가 당사자나 이해관계자라면, 어쩔 수 없이 객관적인 시각이 부족해지기 쉽다. 신문 기사 등의 기록이 부족한 시대의 일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일본 불고기 역사를 살펴보면 "불고기집의 원조는 동쪽의 '명월관', 서쪽의 '식도원'"(『일본 불고기 이야기』 오타 출판/저·미야즈카 토시오)이라고 소개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많다는 것보다 거의 역사적 사실로 전해지고 있다. 두 곳 모두 창업은 1946년(쇼와 21년). 사실 식도원은 도쿄에서 창업한 후 오사카 센니치마에로 이전했지만, 창업 시기에 대해서는 자료와 관계자 증언을 종합해도 대체로 이 시기로 보는 것이 맞다.
핵심은 이 두 가게가 과연 '불고기집'의 '원조'인지 여부다. 아무리 전후 혼란기라고 해도 아무런 기반 없이 같은 업태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동시에 생겨날 수 있을까? 물론 두 가게 모두 1946년경 창업이긴 하지만…….
자세히 조사해 보면, 사실 둘 다 창업 당시부터 '불고기집'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58년(쇼와 33년)부터 명월관에서 수련을 쌓고 후에 독립한 서서원의 아라이 야스미치 사장이 앞서 언급한 『일본 불고기 이야기』에서 "당시부터 불고기집이라고 했을까요?"라는 질문에 대해 분명히 "다릅니다. 모두 조선 요리입니다"라고 부정하고 있다.
아라이 씨에 따르면, 고기집이라는 호칭이 일반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이후의 일이다. 창업 당시 물론, 아라이 씨가 입점했을 무렵에도 주변에 '고기집'이라 불리는 업태는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조선 요리집'이 '고기집'이 되었을까. 그 배경에는 재일 사회 내 '북'과 '남'의 문제가 있다고 한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한동안 지난 후의 일이다. 한일 간 인적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한국에서 온 사람들에게 조선 요리집 간판이 걸린 가게에 들어가는 것은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남측의 '민단' 계열 경영자들이 '조선 요리'라는 명칭을 계속 사용하는 데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정착된 '조선 요리'를 '한국 요리'로 덮어쓰더라도 지금까지와 무엇이 다른지 알기 어렵다. 애초에 간판만 바꾼다면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상징적인 요리인 '불고기'를 그대로 업태의 카테고리로 삼자……. 이런 이야기가 아라이 씨가 설립한 전일본조선요리조리사협회 창립 당시 제기되었다. 이렇게 '불고기'라는 말이 탄생한 것이 1980년대라고 한다.
그런데 더 조사해 보니, 사실 불고기라는 명칭은 전혀 다른 경로로 그보다 훨씬 이전, 제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메이지 시대에는 소고기를 꼬치에 꿰어 숯불에 구운 것을 '불고기'라고 불렀고, 후술하겠지만 전전(戰前) 시점에서 현대의 불고기와 거의 유사한 업태의 '불고기집'도 존재했다.
더 나아가 고도성장기~버블 시절, 명칭이 '조선 요리'에서 '야키니쿠'로 바뀌기 직전인 1970년대부터 '야키니쿠점'이라는 명칭 자체가 존재감을 키우고 있었다. 1980년대의 명칭 변경 호령으로 '야키니쿠라는 말이 생겼다'는 것은 뉘앙스가 조금 다르다.
여러 설이 난무하는 가운데, 불고기를 해석하는 것은 흥미롭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 앞에서는 겸손해야 한다. 사실에 대해서는 충실해야 한다. 넘어서서는 안 될 경계선은 반드시 존재한다.
그럼 이제 역사적 사실과 진실의 문을 열어보자.
「日本の焼肉の歴史は戦後から」は本当なのか(松浦達也) - エキスパート - Yahoo!ニュー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