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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한돈 유통 시장의 변화와 전망

식육마케터 김태경 Ph.D

한돈 유통시장의 변화와 전망

                                      


제 2차 세계대전이후 전세계는 식량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세계와 미국을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 세계의 체제 위선 경쟁은 보다 값싼 식량을 국민들에게 공급하는 것이었다. 공장식 축산의 급격한 발전도 다 이런 식량 확보를 위한 노력의 수단이고 그 결과 전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식량부족에서 해방되고 엥겔지수의 급격한 하락으로 남은 소득으로 자동차도 사고 아파트도 사고 가전제품도 살 수 있었다. 
일본의 경우만 해도 쌀 부족 현상을 해결한 해가 1955년도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배고픈 시절도 있었다. 지난 1970년대 말까지 우리나라에는 ‘보릿고개’가 존재했다. 3~4월에 쌀이 떨어지면 깡 보리밥에 나물반찬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던 배고픈 시절이었다.
하지만, 다수확 품종인 통일벼가 보급되면서 한국의 쌀 자급률은 높아졌다. 1976년 처음으로 100% 자급률을 이뤄냈다. 이후 쌀 생산량이 급격히 늘면서 80년대 들어선 보릿고개라는 말이 서서히 사라졌다. 
쌀의 100% 자급률이 1976년이라는 건 어떤 의미였을까? 
쇠고기나 돼지고기는 없어서 못 먹었다는 말이다. 공급만 되면 다 먹어 치울 수 있다는 말이다. 
1909년 도축 통계가 조선총독부에 의해서 작성된 이후 전쟁등 일시적인 하락은 있을지 몰라도 육류 소비는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국내산의 공급이 모자라면 자연스럽게 수입이 되어 육류 소비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자급율이 떨어지고 국내 생산량이 거의 매년 늘어나고 있다. 



적어도 돼지고기는 공급되는 만큼 다 소비가 되고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지금까지 국내 돈육 유통시장에서 품질은 별 의미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1970년대 경제 성장으로 삼성 용인자연농장등 크고 작은 양돈장이 건설되면서 배합 사료의 급여와 거세를 실시하여 냄새 없는 돼지고기의 생산비중이 늘어나고 일본 수출을 하기 위해 규격돈 생산에 신경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전체 양돈업이 산업화 되면서 하나의 거대한 통일화 균일화된 농장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같은 품종의 돼지, 거의 같은 사료 배합비, 사양기술의 표준화등  대한민국 돼지는 다 같아졌다. 
배고팠던 시대 경쟁력을 높이는 방법은 이것뿐이었을 거다. 
하이포크, 선진포크, 도드람 한돈, 생생포크등 대한민국 브랜드 돈육을 맛만 보고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나라에는 와인 소믈리에 Sommelier는 “고객들에게 음식과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해주고 Serving해 주는 사람”을 말한다. 이밖에도 와인리스트를 작성하고, 와인의 구매와 저장을 담당한다. 또한 Serving하기 전 와인의 맛을 시음, 평가를 할 수 있다
, 야채 소믈리에, 참기름 소믈리에, 맥주 소믈리에, 생수 소믈리에등 다양한 소믈리에가 있는데 돼지고기 소믈리에는 없다. 

 우리나라 양돈과 양계업은 1948년에 이미 축우가 부족하여 쇠고기를 대신하여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공급하기 위해 도시 근교에서 도시의 식당등의 잔반을 사료로 이용한 양돈이 장려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1958년부터 홍콩으로 생돈을 수출하기 시작해서 1968년까지는 냉동지육을 홍콩으로 수출하였다가 다시 1971년 일본이 돈육 수입 자유화가 되면서 냉동 full set 부분육으로 (삼겹살, 앞다리, 뒷다리, 등심, 안심등 돼지 한 마리 정육이 다 수출되었다고 함) 수출되다가 1977년 경제 성장으로 육류 소비가 급증하면서 수출이 1984년까지 중단 되고 다시 1985년부터 등심, 안심 위주로 수출 되기 시작했다. 1978년부터 1984년까지 수출이 중단된 이유를 살펴 보면 쇠고기의 소비가 급증하여 쇠고기 가격이 폭등하고 그 대체재인 돈육의 국내 공급확대가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이같이 돈육은 쇠고기의 대체재로 값싼 육류공급이란 확실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1970년대 박정희나 1980년대 전두환 역시 값싼 노동력의 확보를 위해서는 물가 안정이 우선 과제였고 육류의 가격은 물가에 큰 변수 였다.
1970년대 인기 있었던 한우 로스구이는 값싼 삼겹살 로스구이로 삼겹살이 한우 등심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한우 1990년대 중후반 고품질 마블링을 무기로 한우 등심구이로 다시 육류 외식 시장에 등장하고 인기 몰이를 하고 한축에서는 IMF로 삼겹살의 인기는 더욱 높아진다. 2000년대초 구제역 이후 일본 바이어의 까다로운 품질 개선 요청이 사라지고 육류 소비 확대로 공급이 늘 부족했던 돼지고기는 품질보다는 공급자 측면에서 생산성 경쟁을 심화시켰다.  
그런데 정확히 2015년이라고 해야 할지 2016년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니 더 앞으로 가야할지도 모르지만 언제부터 인가 소비자들의 육류 소비 패턴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값싼 육류를 공급하는 방식은 공장식 축산이 비난을 받고
이베리코 돼지라고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돼지를 세계 4대 진미니 하면서 열광하는 사람들이 생겨 났다. 재래 돼지니 자연 방목 돼지니 해서 한 마리에 백만원이 넘어도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다 사먹는 세상이 되었다. 아직도 이런 세상을 이해 못 하는 사람이 많은데
우리 시대는 배고픔과 탐식 좋은음식. 또는그런음식을먹음
 (耽食)이 공존하는 시대다.
생존과 탐식이 공존하는 시대다.
생산성 경쟁과 맛의 차별화가 공존하는 시대다.
어떤이들은 3000원하는 노량진 컵밥을 먹고 편의점 도시락과 김밥으로 허기를 채우고 밥 먹을 시간도 없어서 컵라면을 가방에 넣고 다니는 세상이지만 
한우 1인분에 20만원하는 한우 오마카세 おまかせ 요리](음식점 등에서) 주방장 특선; 주문할 음식을 가게의 주방장에게 일임하는 것 
 식당을 3개월 전에 예약해야 하고 2만원이 넘는 돈가스집이 줄을 서는 세상이다. 
배고픔과 탐식을 먹거리의 계급화로 아직은 보고 싶지 않다.
다만 같은 사회안에 동시대 살면서 두가지 욕구가 충돌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우리한돈 산업은 지금까지 철저하게 배고픔의 시대에 배고픔을 해소하기 위해서 존재했다.
부정하고 싶어도 역사속에서 정책자들에 손에 의해 그렇게 계획되고 진행되어 왔다.
“ 일제 강점기 1920년대 버크셔와 우리 재래돼지의 누진 교배 정책이 시행되면서 본격적인 배고픔을 해소하기 위한 육류로의 돼지고기의 사명은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1927년 조선총독부 관리였던 요시다 유지로의 조선양돈의 현재와 장래를 인용해서 필자는 이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이베리코 쇼크라는 표현처럼 우리 한돈 관계자들이 놀라는 건 
어떤 의미에서 우리 한돈 산업이 배고픔을 해소하는 육류로의 기능에 전념하고 있다가 서서히 생겨나는 탐식 시장을 이베리코에게 선점 당한 충격을 의미하는 거다.
이게 시작이다. 
국내에도 이미 미식시장에서 인정 받는 돼지들이 있다. 
돈마루 이범호 대표의 동물복지농장 성지농장, 박화춘 박사의 버크셔K, 제주도 길갈 농장의 흑돼지, 다비육종의 듀록과 YBD가 미식(탐식) 시장에서 상업적으로 성공을 하고 있는 돼지들이다.
동물복지 축산 농장인 성지농장은 서울의 유명 백화점은 물론이고 요즘 핫한 인터넷 쇼핑몰에서 가장 입점시키고 싶은 돈육 브랜드다. 동물 복지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들이 늘어 나고 있다. 비싼 가격에도 잘 팔린다.
박화춘 박사의 버크셔K 유명 세프들 사이에서 인기가 가장 좋은 돼지고기다. 버크셔K 로 끓인 돼지국밥집은 오전 11시에 가면 이미 줄은 서서 기다려야 한다. 
제주 길갈 농장 흑돼지 현대백화점에서 아마 우리나라 최고가로 판매되고 있는데 입점한지 한 십년 넘어가는 것 같다. 이렇게 한 백화점과 지속적으로 거래가 되는 건 다 품질을 인정 받았다는 거다.
압구정동등 강남 아줌마들과 목동의 깐깐한 학부모들에게 인정을 받았다는거다. 
다비육종의 듀록과 YBD 아직은 인정하지 않는 한돈 종사자들이 많을지 모르지만 신도세기라는 식당을 검색해서 가보면 놀라게 된다. 판교의 신도세기나 마포의 신도세기에 가보면 요즘처럼 삼겹살집 장사 안된다는 것이 신도세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신도세기는 국내에서 보기 드면 돼지고기 패밀리 레스토랑이다. 
회식을 위한 술집 분위기의 돼지고기 집은 엄청나게 많지만 사실 최근 들어 회식문화가 사라져서 한달에 한두번 직장동료들과 저녁 먹기도 힘들다.
더욱 그 저녁의 메뉴가 당연 삼겹살의 소주 한잔이던 198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과는 완전히 달라져서 이제는 가볍게 소주 한잔하고 노래방 가는 스타일이 아니라 좀 비싸고 맛있는 것 먹고 1차만 끝내고 집에 가는 분위기다. 그래서 삼겹살 식당들이 많이 어려운데 신도세기는 분위기도 무슨 스테이크집이나 패밀리레스토랑 같아서 여성들이나 가족 모임에 아주 인기가 좋다고 한다. 그거에 삼겹살이 아니라 새로운 돼지고기 숄더랙과 수퍼골든포크라는 YBD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돈육 브랜드의 브랜드 충성도가 낮은 우리나라에서 신도세기같은 자기 브랜드 식당을 운영하는 건 소비자들의 브랜드 충성도를 높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1990년대 초반 도드람 한마당이 지금의 도드람 한돈의 브랜드 충성도를 만드는데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다시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배고픔과 미식이 공존하는 시대는 앞으로 계속될거다. 
우리나라의 모든 돼지 농장이 동물 복지 농장이 될 수는 없을 거다.
다만 점점 많은 소비자들이 탐식(耽食)에 대한 욕구가 커질 것이고 그건 한돈이 담당해야 한다.
이베리코는 일순간의 소동정도로 끝내려면 더 맛있는 돼지고기 생산에 대한 고민들을 시작해야 한다.
아니 점점 더 많은 노력을 하는 돼지 농장들을 만난다.
남해의 영지 축산 돈해진미나 강진 미래도축장에서 만난 황칠미네랄 포크처럼 무언가 미식 돼지를 만들기 위한 소소한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다고 믿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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