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에이징비프와의 만남
25년이라는 시간을 지나, 충격적 재회
2006년의 봄 뉴욕. 후에 드라이에이징비프 연구에 열정을 쏟으며 일본에서 숙성육 붐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유명해진 「사노만」의 대표 사노 요시하루씨는 충격적인 재회를 했다.
당시 사노씨는 현지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고교 동창생의 아들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뉴욕을 찾았다. 결혼식 다음날, 동창생이 「네가 정육점을 운영한다고 하니 뉴욕 타임즈에 소개된 미국 최고의 스테이크 전문점에 데려가야지」라며 데려간 곳이 브라이언 쿠퍼(Bryant & Cooper)라는 스테이크 하우스였다.
「“사노는 스테이크를 한 입 먹고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맛없어! 라고 말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맛있어! 라고 외치더라.”라고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친구가 나중에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사노씨는 당시의 일을 떠올렸다.
「정육점을 하고 있었지만, 살코기 속 육즙의 맛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었습니다.」
이 때, 사노씨의 동창이 주문했던 것이 드라이에이징비프 스테이크였다.
소비자의 니즈와 타이밍
사실 사노씨가 드라이에이징비프를 먹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1980년대 초, 시장조사를 위해 뉴욕에 방문했을 때, 180년의 역사를 가진 맨해튼 유일의 정육점 「로벨」을 방문했는데 「이것은 드라이에이징비프라고 하는 부유층이 먹는 고기다」라고 소개받았다.
이름이 거론된 부유층에는 존 레논과 케네디 대통령의 퍼스트레이디인 재클린 오나시스, 록펠러 가족 등 VIP들이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 당시에는 부자들을 위한 특별한 음식」이라고만 생각했다.
1980년대 초, 일본에서는 상강육이 전성기를 맞이한 시대였다. 사노씨의 드라이에이징비프를 일본에서 판매하고 싶다는 생각은 아직 시기상조였다.
그 후로도 2~3년에 한 번은 미국을 방문했고 드라이에이징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크게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항상 일본 소비자들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상품만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6년 드라이에이징과의 만남은 매우 선명하고도 강렬했다. 일본 소비자의 기호가 변화하고 있는 타이밍이기도 했다.
「그 무렵 일본에서도 손님들로부터 상강육은 기름진 탓에 느끼해서 한 두조각 먹는 것은 좋지만,
많이먹으면 속이 더부룩하다거나 살코기육이면서 맛있는 고기는 없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고 있었습니다.」 사노씨는 당시의 일을 떠올렸다.
「세계를 매료시킨 일본의 상강육 문화는 대단하다. 그러나 고기 자체가 가진 살코기의 육즙과 건강함이 느껴지는 맛을 원하는 시대가 일본에도 반드시 올 것이고 그 때가 되면 이 드라이에이징의 숙성 기술을 살리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사노씨는 일본에서는 아직 생소했던 새로운 방식으로 드라이에이징비프를 취급하기로 결심했다. 이 때부터 사노씨의 드라이에이징비프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사노씨가 납득할 수 있는 상품이 완성되기까지는 긴 여정이 기다리고있었다.
기후도 풍토도 모두 다른 일본에서의 도전
초반에는 일본에서 판매하기 위한 쇠고기를 미국에서 수입하려고 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BSE가 발생했고, 수입은 단념할 수 밖에 없었다.
사노씨는 「그렇다면 일본 쇠고기로 도전해보자」라고 결심하고, 미국에서 드라이에이징비프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정육점을 몇 군데나 돌아다니며, 처음부터 숙성 방법을 배워나갔다.
그러던 중, 드라이에이징비프를 완성시키려면 온도가 1도에서 2도, 습도는70%, 고기 주변에는 항상 강한 바람이 부는 환경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본에 돌아가자마자 배운 그대로 재현해 보았지만, 잘되지 않았고 실패의 연속이었다. 냉장고 업자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숙성고 제작도 연구했지만, 현재 사용하고 있는 냉장고와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빛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몇 번이나 건너간 뉴욕이었다. 마침내 정육점 저장고에 들어갔을 때 깨달은 것이 바로 향이었다. 일본의 간장고나 된장고, 사케고에서도 느낄 수 있는 독특한 향기, 숙성에는 이것이 필요했다.
드라이에이징비프의 포인트가 되는 「숙성향」을 생성하는 미생물을 특정하기 위해, 일본의 연구기관은 물론, 본고장인 미국으로도 건너갔다.
그리고 2년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마침내 사노씨의 저장고에도 뉴욕과 같은 숙성향이 감돌기 시작했다.
현재 사노만에서는 로스육으로 환산했을 때 연간 400개정도의 드라이에이징비프를 취급하고 있다.
드라이에이징비프의 선구자로서의 사명감
지금까지는 호텔이나 레스토랑 등을 중심으로 거래해 왔지만, 최근에는 유명 백화점이나 대형 슈퍼마켓 등 유통업체로부터 거래 문의도 많이 받고 있다.
「시장이 확대되어 드라이에이징비프의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는 점은 매우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드라이에이징비프라는 이름으로 부패한 고기나 지방이 산화된 고기가 시장에 돌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라고 사노씨는 말한다. 더욱이 그것을 먹고 「이것이 드라이에이징비프구나.」라고 생각해 버리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잘못된 인식을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 사노씨가 시작한 활동이 있다.
정육점 등 동종업계를 대상으로 적극적인 설명회와 강연회를 열고, 음식점 뿐만 아니라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시식회도 하는 등 진짜 드라이에이징비프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고기이기 때문에, 본질을 알고 있는 사람들만 독점한다면 식문화로 정착될 수 없습니다. 우리같이 작은 정육점이 전국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숙성 기술이나 조리법을 포함해서 진짜 드라이에이징비프의 장점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노씨는 선구자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지금도 전국을 누비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