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육마케터 김태경 Ph.D
재일 교포 학자 정대성의 불고기에 관한 글
이 글은 재일교포학자인 정대성 박사의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음식 서문에 있는 불고기에 관한 글이다.
일본에 등장한 불고기와 김치
불고기 요리와 김치는 원래는 한국 음식이었으나 지금은 매우 평번한 메뉴로서 일본 식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불고기와 김치는 일반화된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일본이 전쟁에서 패한 1945년 이전에는 볼 수 없었다. 다만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의 식단에는 김치는 없어서는 안 되는 음식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패전과 함께 해방이 된 재일 한국인들이 생계 수단으로 경영한 식당을 통해서 불고기와 김치는 일본 사뢰에 퍼지게 되었다.
일본 요리화한 불고기
고기를 숯불에 굽는 불고기는 한국의 전통적인 요리법의 하나이며, 일본에는 없는 요리법이었다. 일본의 고기 요리법에는 스키야키와 샤브샤브가 있다. 그런데 이 스키야키, 샤브샤브와 같은 요리법을 제치고 숯불로 굽는 불고기 요리법이 일반화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첫째 패전 후의 식량 부족을 들 수 있다. 먹을 것이 충분하지 않고, 영양 실조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나올 정도였기 때문에 먹을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먹는 시대였다. 당시 고기를 처리하는 도축장에서는 소, 돼지의 내장은 버리는 대상이며 상품 가치가 거의 없었다. 이것을 솜씨 있게 요리해서 판 사람이 한국이었다. 육식문화의 역사가 긴 한반도에서는 고기 요리법이 매우 발달되었다. 13세기부터 약 1세기에 걸쳐 육식 민족인 몽골의 영향을 받은 한반도에서는 불교 문화의 육식 금지는 말뿐이었으며, 더욱이 15세기부터는 숭유억불 정책으로 육식이 자유롭게 행해져서 20세기까지 계속되었다.이 육식 문화를 가정 요리로 일상화해온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은 돌아보지도 않는 내장류를 맛있게 요리해서 메뉴화했다.
1955년부터 1964년가지의 일본의 고도 경제 성장기를 즈음해서, 한국 음식점은 외식 산업으로서의 발판을 다지며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다. 점포는 대형화되고 식당의 형태는 레스토랑풍으로 많이 바뀌었다.
한편으로는 외식산업의 음식 맛이 가정으로 유입되어 가정에서 한국식 요리법으로 고기를 굽고 김치를 구해서 먹는 경향이 일반화 되었다.
이후 1965년부터 1974년까지를 고비로 일본에서는 불고기용 다레(조미용 양념 간장)가 상품으로 보급되기 시작했으며, 1975년 이후에는 크게 발전하여 다레 산업이라는 분야가 식품 산업의 한 부분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1991년 1월의 집계로는 6백억엔 정도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것은 바로 불고기 요리법 즉 한국 식생활 문화의 일본 사회 정착을 의미한다. 불고기 메뉴 용어의 대부분은 한국어와 밀접한 관계속에 일반화 되었다.예를 들면 일본의 가루비라는 말은 한국어 그대로 이며 가슴의 갈비 부분을 나타내는 말이다. 미노라고 부르는 내장의 위 부분은 한국어로는 회갓이라고 하는데 잘라서 펼친 모양이 갓과 닮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이 갓을 일본어로 바꾸어서 미노라고 부르게 되었다. 돼지의 위는 카쓰라고 했으나 지금은 가쓰라고 부른다.
또 센마이라는 말은 한국어의 천엽을 그대로 번역하여 센마이(엽葉과 매 枚는 같은 의미)라고 했으며, 대장 부분을 테창이라고 하는 것도 모두 한국어이다.
불고기 재료가 되는 부위의 호칭이 이처럼 한국어에서 대부분 유래하는 것은 가축 내장류의 이용법이 한국의 고기 요리법에 의해 개발된 것을 의미하는데 처음에는 도축 용어로서 널리 사용되다가 나중에는 일본어화 되어갔다.
용어뿐만 아니다. 요리 그 자체가 일본요리화되고 있다.
필자가 가의를 맡고 있는 토쿄(東京)의 조리 전문 학교는 영양사 양성 학교인데, 매년 한국 요리에 관해서 앙케트를 실시하고 있다. 불고기를 한구 요리하고 생각하는 젊은이는 해마다 줄어들어 1990년 조사에서는 전체 학생의 5분의 1도 되지 않는 실정이다. =출처: 일본ㅇ로 건너간 한국음식 정대성 지음 p13~17
정대성
1933년 쿄토에서 출생하였으며(본적 경상남도) 오사카 시립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시가 현립대학 인간문화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여러 대학에서식문화론과 비교식문화론을 강의하고 있다. (2000년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