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육마케터 김태경 Ph.D
치킨이 맛있는 진짜 이유!
공식
2019.08.14. 05:002,737 읽음
많이 주어진 음식이 맛있다!
치킨이라 하면 안 된다. 치느님이다. 사모하고 존경하는 님이다. 치느님을 맛없다 하면 적잖이 놀란다. 눈을 커다랗게 뜨고 “왜요? 왜요?” 하고 되묻는데, 혹 한국인이 아닌지 ‘민증’이라도 까서 보자고 할 태세이다. 외국인도 한국 치킨에 빠졌다 하는데 말이다.
한국인이 치킨을 맛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국인 개개인이 저마다의 독립된 기호를 바탕으로 치킨 맛을 판단한 결과이고, 그 낱낱의 기호가 집합을 이루어 ‘한국인은 치킨을 좋아한다’는 집단의 기호를 형성하고 있다고 보는 것은, 참으로 순박한 일이다. 집단이 처해 있는 먹을거리 확보 사정이 개개인의 기호를 결정한다고 보는 것이 맞다.
인간 집단이 어떤 음식을 맛있다고 생각할 것인지 판단하는 데 영향을 주는 여러 요소 중 하나가 ‘집단의 구성원에게 넉넉하게 주어질 수 있는 음식인가’ 하는 것이다. 인간은 그 소속 집단에게 많이 주어진 음식을 맛있다고 생각하게 되어 있다. 이는 인간의 안정 욕구와 관련이 있다.(고교 사회 시간에 배운 매슬로의 ‘욕구 단계설’을 떠올려보시길 바란다.) 많이 주어진 음식을 맛없다고 생각하면 자신이 속한 집단이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많이 주어진’이라는 조건은 그 집단이 처한 자연과 사회・경제적 여건 등에 의해 결정된다. 예를 들면 한국인은 오래도록 빵이 아니라 밥을 맛있다고 생각해왔다. 한국인이 선천적으로 밥을 맛있다고 생각하게끔 태어난 것은 아닐 터인데 말이다. 한반도의 자연은 몬순기후로 밀농사보다 벼농사에 유리하다. 값싼 밀이 수입되어도 국내산 쌀을 사 먹을 만큼은 경제적 여유가 있다. 한반도에서는 밥을 먹기에 적절하니 밥이 맛있는 것이다.
ⓒ 도서 <음식은 어떻게 신화가 되는가>
치킨은 보수이다
한국인의 다수가 “치킨은 맛없으니 맛있는 쇠고기를 넉넉하게 달라”고 요구한다면 한국 사회는 어떻게 될까.
1~2만 원이면 한 가족이 오붓하게 치킨이라는 고기를 뜯을 수 있다. 이는 값싼 수입 곡물과 공장식 대량 사육의 결과로 얻은 것이다. 돼지며 소의 사육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사료 투입량 대비 증체량에서 닭이 최고로 우등하고 그래서 닭이 제일 싸다. 돼지며 소의 고기를 닭고기 가격으로 떨어뜨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 앞에 놓인 치킨을 쇠고기로 바꾸려면 수입을 왕창 늘리거나 현재의 수입에서 음식 비용을 더 넉넉하게 빼내는 방법밖에 없다.
자본주의 사회이니 각 개인이 열심히 노력하면 내 앞의 치킨을 쇠고기로 바꿀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내 몫의 치킨이 쇠고기로 바뀌지 않는다는 판단이 서면 자연스레 이 사회의 구조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게 된다.
“왜 나는 치킨밖에 못 먹는 거야” 하는 생각이 사회 변혁 의지를 가지게 할 수 있고, 이는 사회적 불안을 야기하는 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니 여기까지 생각이 전개되지 않도록 멈추어야 한다는 욕구가 작동하게 된다. “치킨은 맛있는 음식이야. 한국인이면 당연히 맛있다고 생각해야 해. 외국인들도 한국 치킨을 먹는다잖아, 대한민국 치킨을.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해.”
그러니, 치킨은 보수이다.
ⓒ 도서 <음식은 어떻게 신화가 되는가>
세계에서 가장 맛없는 닭으로 튀겨지는 치킨
여기까지 설명을 듣고도 “치킨이 맛있는 것을 내 입이 안다”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각자 주장하는 기호는 어쩔 수 없는 일이나, 한국의 치킨이 세계에서 가장 맛없는 닭으로 튀겨진다는 사실은 알았으면 한다.
치킨용 닭은 육계肉鷄라 하는데, 그 종은 몇몇 국제적 업체에서 공급하여 ‘전 세계적으로’ 유사하다. 한국은 이 닭들을 30일 즈음에 잡는다. 다른 나라에서는 적어도 45일 이상은 키운다. 닭 한 마리의 평균 크기가 다른 나라는 2.7kg인데 한국은 1.5kg이다. 이건 ‘영계’가 아니라 병아리이다. 30일짜리 닭의 고기가 부드러워 그때 잡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45일짜리도 충분히 부드럽다. 외국에서 먹은 치킨이 질기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닭이든, 어떤 짐승이든 간에 대체로 그 몸이 성체에 이르러야 맛이 난다. 한국의 닭은 맛이 들지 않은 상태에서 잡는다. 닭고기가 맛이 없으니 여러 첨가물의 튀김옷을 입히고 이를 튀겨서는 또 양념으로 범벅을 하여 먹는다. 한국의 치킨은 닭고기 맛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튀김옷 맛, 기름 맛, 양념 맛으로 먹는다.
한국의 닭이 1.5kg에서 도축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치킨을 마리로 파는 상술 때문이다. 2.7kg든 1.5kg든 한 마리는 한 마리이다. 굳이 사료를 더 먹여 키울 필요가 없다. 치킨밖에 못 먹는 세상이라 하여도 적어도 세계인이 먹는 치킨 수준 정도는 주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하는 것이 인간의 정상적인 사고가 아닐까.
* 해당 포스트는 도서 <음식은 어떻게 신화가 되는가>의 일부를 발췌, 재구성한 글입니다
이번에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이 음식은 어떻게 신화가 되는가 라는 신간을 출판한 것 같다.
아직 읽어 보지는 못 했는데 출판사에서 인용한 글을 살펴 보면 시각적인 한계성을 많이 느낀다.
적어도 맛을 연구하는 맛칼럼니스트라면 조금 더 생각하고 글을 써야 하는데
난 사실 치킨, 닭 화이트 미트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식육마케터로 30년을 살았으니 일반인들 보다 많이 안다고 생각한다.
특히 고기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닭고기에 대한 많은 자료를 만날 수 있었다.
사위가 오면 장모가 씨암닭을 잡아 준다는 말이 있다.
엣날 조선시대에 닭을 키우는 목적은 고기를 먹는 것이 첫번째 목적이라기 보다는 계란을 공급 받는 것이 첫째 목적이고 고기는 암닭이 늙어서 알을 잘 못 낳으면 잡아 먹었다. 노계다 그것도 몇년을 키운 노계다. 무진장 질겼을거다.
그걸 맛있게 먹는 방법은 백숙이 최고의 방법이었을거다.
고추나 고추장을 먹기 시작한 역사가 몇 백년이 안되니 닭도리탕은 한참후에 나온 요리다. 압력 밭솥도 보급된지 얼마 안되었으니 요리에 한계가 많았을거다.
조선시대에는 소, 돼지는 가급적이면 여름철에는 피하는 고기다.
냉장, 냉동시설이 없던 시절이니 큰 가축을 잡으면 고기를 보관하기 어려웠다.
소는 농사를 짓는 봄부터 가을 추수철까지는 잘 잡아 먹지 않았던 것 같다.
한양은 예외겠지만
더운 여름날 농사를 지으면서 보양식으로 찾았던 단백질은 닭고기, 개고기, 그리고 냇가에서 천렵으로 잡은 물고기가 우리 민중의 중요한 여름철 보양식 단백질 공급원이 되었다.
해방이 되고 남북한의 교류가 중단된 상태에서 쇠고기의 소비가 늘어나서 일소가 부족하게 된다. 1948년 급하게 양돈가 양계를 장려한다.
전국의 돼지 14만두를 서울 경기 지역으로 사 모아서 양돈업을 장려하고 양계업도 같이 장려를 하는데 이상하게 돼지고기는 쇠고기, 닭고기의 두배이상을 먹게 되는데 값도 싸고 생산성도 좋은 닭고기의 소비는 적어도 돼지고기 만큼 늘어났어야 하는데 안 늘어난 것은 아직도 의문점이다.
아시는 분은 가르쳐 주라.
치킨을 만드는 닭이 맛없다.
일부 공감한다.
특히 나처럼 숙성을 아닌 사람은 좀 올드한 고기를 숙성해서 깊은 고기맛으로 고기를 먹는 걸 좋아하니 30일키운 닭은 맛이 없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난 심하게 치킨은 닭이 아니다. 라고 까지 이야기한 적도 있다.
그것도 우리나라 최고의 닭고기 업체인 하림 계열사에 강의를 가서
분명 치킨은 옛날에 집 앞마당에서 키워서 자급 자족하던 닭고기와는 다른 맛이다.
그건 모든 음식물이 다 맛이 다르다.
고기는 물론이고 시금치도 화학비료로 키워서 옛날 시금치와 성분이 좀 다르다.
아마 황교익 선생도 식재료값이 싸지 않았다면 맛칼럼니스트라는 직업을 가지시기 어려웠을거다. 음식값이 매우 비쌌을거니
아마도 인류의 역사에서 지금처럼 엥겔 지수가 낮았던 시대는 없었다.
음식을 전적으로 시장에서 사먹기 시작하고 부터라고 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1857년 독일의 통계학자 엥겔(Ernst Engel) )
치킨은 닭고기가 산업화되면서 최적화된 요리다.
맛없으면 아마도 우리는 백숙을 계속 먹었을거다.
백숙이 계속 팔렸다면 아마 양계산업이 지금의 시스템이 아니라 장기 사육형으로 달라져 있었을 수도 있다.
물론 지금의 어린 닭을 치킨으로 요리해서 판매하는 방식이 육계산업의 생산성 측면에서는 최고의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많이 버는 건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산자, 공급자가 생산성이 좋아 돈을 많이 번다고 해도 소비자가 외면해서 팔리지 않으면 그 산업을 발전 할 수 없다.
치킨이 산업화 될 수 있었던 건 어린 닭이 가지고 있는 맛의 한계를 요리로 커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치킨이 음식으로 인기가 없었으면 지금은 양계산업이 형성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지금은 하림이 대기업군에 속하지만 치킨이 유행하기 시작하던 당시의 양계업은 산업화가 아직 안되어 있고 자본력이 약해서 소비시장을 만들어갈 능력이 없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논의가 더 필요한 문제다
황교익은 산업의 역사나 소비사를 보지 않고 그냥 지금의 현상 또는 자신이 기자생활을 시작했던 1990년이후의 현상만으로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그 대표적인 오류가 삼겹살의 유행을 보는 그의 시각이다.
이건 다음에 더 자세히 이야기하기로 하고
닭이 치킨이 된 건 정치적인 문제다.
맞는 말이다.
치킨은 보수가 아니다.
치킨은 민중이다.
쳬제의 우월성을 과시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값싼 육류의 공급은 2차세계대전이후 전세계의 과제였다.
고기는 정치다.
치킨과 돼지고기는 보수가 기득계층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이었던 건 맞는 말이지만
지금에 와서 치킨은 보수가 민중에게 던져 준 맛없는 고기다.라고 이야기 한다면 그건 민중을 무시하는 거다.
치킨은 우리 민중 스스로가 맛있어서 선택한 고기다.
정치권에서 기득 세력이 보수라고 이야기하지 말아야 한다. 독재 권력이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독재 권력이 민중에게 공급한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맛있는 삼겹살만 맛있게 치킨으로 만들어 먹은 민중의 힘을 모욕하지 말아 주었으면 한다.
치킨은 이제 세계에서 인기한류급 대한민국 음식이 되었다.
삼겹살 역시 세계가 주목하는 맛있는 대한민국 대표음식이다.
돈가스 일본의 근대사를 오롯이 담고 있는 대표 음식이라면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오롯이 담고 있는 대표 음식이 치킨과 삼겹살이다.
민중사적 시각에서 치킨과 삼겹살에 대한 역사 연구는 계속되어야 한다.
아니 우리 먹거리의 흔들림이 과거 일제의 군국주의 , 제국주의 정책과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깊은 공부가 필요한 시대다.
지금 새로운 가치소비시대에 우리 농업,농촌, 농민의 어려움은 아직도 일제의 군국주의 농업 정책과 독재권력에 의한 농업 잘못된 농업 정책의 결과물이라는 걸 인식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