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고기 잡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해방이후 우리 양돈의 모습

한국에서 농업이 시작된 이래 돼지 사육은 농업의 중요한 일부였다. 1947년 돼지가 소비하는 곡물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도축 후 부산물을 이용하려는 목적에서 돼지 사육이 성행했다.

한국의 토종 돼지는 검고, 크기가 작고, 몸무게가 약 50 파운드 정도이다. 돼지는 지방이 거의 없지만 “아주 건강했고, 돼지고기는 맛이 좋았다.” 일제 시기에 버크셔와 요크셔 품종이 수입되었다. 그러나 토종 돼지보다 사료가 더 많이 필요하고, 한국인들이 고기가 너무 기름지다고 생각해서 크게 환영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 일제 통치가 끝난 무렵 이들 개량종에 대한 수요가 점차 늘어났다- 미군정의 한국 축산 보고서중


50파운드면 22.6kg 이다.

미군정시절 한국 축산에 대한 보고서에 양돈 부분이 조금 나온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도축 후 부산물을 이용하려는 목적에서 돼지 사육이 성행했다 두내장에 족발등 부산물을 살코기보다 더 좋아했을까?  미군에 볼 때 도축후 부산물을 이용하려는 목적이라고 했을까?

우리가 머리고기,순대, 족발등의 돼지 부산물을 좋아하는 것이 돈육 수출 부산물이 아니라 원래 부산물의 맛을 더 좋아했던 것 아닐까? 제주도에 말내장을 말고기보다 더 맛있다고 하는 것처럼 아마 당시 고기는 냄새가 나서 그렇게 선호하고 좋아하는 식재료가 아니라 그냥 잔치등 축제 음식으로 삶아서 나누어 먹었던 음식이고 일상속에는 순대국이나 족발, 머리고기등 부산물의 인기가 더 있었을까?


우리의 재래 돼지는 30kg 미만의 아주 작은 돼지였다. 그 돼지는 지방도 적었다.

내가 아는 일제 강점기 누진교배의 기록과 미군정의 기록이 일치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돈산업의 위기 탈출전략 한돈문화를 이야기하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