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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의 가축화

동물, 특히 포유류는 인간 사회의 일부로 존재해 왔다. 그 한 가지 이유는 인간이 다른 영장류와는 달리 식용으로 다른 동물을 사냥 하기 위해 지적, 무력적 우월성에 의존하는 육식동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냥꾼으로서의 인간과 그 포획물 그리고 인간과 경쟁 관계에 있는 포식자와의 사이에 복잡한 사회적 관계가 발생한다. 이러한 상호 작용의 영향은 우리 현대인들에게도 여전히 남아 있다. 아직도 고도의 비언적(鄙諺的) 의사소통 방법을 사용한다는 사실이 가장 두드러진 증거일 것이다. 

동물들이 가축화되던 초기에는 사냥꾼인 인간이 포획물인 동물의 행동과 생활에 동화하는 방향으로 진전되었다. 이러한 관계는 소떼와 함께 이동하며 생활했던 미국 인디안들, 순록떼와 함께 살아가는 노르웨이 북부의 라플란드 사람들에게서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는 현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동물의 가축화는 수많은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또 반복적으로 시도되면서 오랜 세월에 걸쳐 서서히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과정 중에서 야생으로 돌아간 동물도 상당히 많으며 가축으로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동물들에는 오늘날 우리가 보는 바와 같이 소, 돼지, 닭, 말, 개, 토끼, 염소, 양, 오리, 거위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야생동물로서 가축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영국의 인류학자 프란시스 골턴은 다음과 같이 6가지를 제시했다.

몸이 튼튼해야 한다. 

천성적으로 사람을 잘 따르고 좋아해야 한다.

생활 환경에 대한 욕구가 너무 높지 않아야 한다.

고대인들에게 유용성이 커야 한다. 

자유로운 번식이 가능해야 한다. 

사육이나 관리가 쉬워야 한다.

모든 야생동물들에게 가축이 될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위의 여섯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 아득히 먼 옛날에 가축이 된 동물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때로는 한가지 조건을 채우지 못해 탈락하는 일도 있었을 것이다. 인간의 문명이 발달하면서 이들 야생동물들은 점점 생존에 위협이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야생의 동식물은 각종의 자연적 및 생물학적 조건에 의해 선택되고 진화되어 왔지만 가축으로 된 동물들은 지리적으로 격리된 상태에서 인간의 목적에 따라 선택되어 오면서 오늘날에 보는 바와 같은 여러 가지의 가축 품종으로 진화 정착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돼지는 다른 가축과 달리 한 배에 10마리 이상의 새끼돼지를 낳고 우수한 어미돼지는 1년에 25마리 이상의 새끼 돼지를 생산할 수 있다. 또한 발육이 빨라서 우수한 개체는 성장 기간 중에 하루에 1㎏ 이상 자랄 수 있으며 돼지가 생산하는 고기는 단백질, 비타민 등 각종 영양소가 풍부하고 맛이 좋아서 인간의 중요한 식품으로 이용되고 있다.

현재 우리가 기르는 집돼지는 모두 야생멧돼지(Sus scrofa)의 일부가 순화되어 이루어진 것이다. 야생멧돼지는 유럽, 아시아, 북아프리카의 여러나라에서 오늘날에도 많이 살고 있으나 북아메리카에는 살고 있지 않으며 신석기시대에 가축화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멧돼지는 현재의 개량된 집돼지와 비교해 보면 몸에 비하여 머리가 크고 네 다리가 길며 앞몸 부위가 발달 되어있다. 

이와 같이 집돼지의 체형이 멧돼지에 비하여 크게 달라지게 된 것은 인류가 멧돼지를 집돼지로 개량할 때 고기를 생산하는 능력이 우수하도록 변화시키는 동시에 인류에게 보다 이용가치가 있는 몸 부위가 발달하도록 변화시킨 데 기인되는 것이다. 집돼지는 멧돼지에 비하여 체형이 달라졌을 뿐 아니라 한배에 낳는 새끼 돼지의 수도 훨씬 많아졌다. 한 배 새끼의 수가 많으면 돼지를 길러 보다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으므로 인간은 한배 새끼의 수가 많아지도록 개량하여 온 것이다. 

서아시아에서는 기원전 7000년경에 멧돼지가 가축화되었거나 최소한 이 시대에 처음 인간의 간섭이 시작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초기의 정착 농경민이 양과 염소를 사육하기 시작한 것과 같은 시기에 멧돼지 사육을 시작했을 것이다. 반면 같은 시기(문화적으로 중석기 시대)에 유럽 북부와 서부에서는 멧돼지가 붉은 사슴과 함께 주된 식육의 공급원이었다. 2000~3000년후에 초기 농민이 동쪽에서 유럽으로 이동하면서 사육된 돼지를 전파했다. 가축화 초기에는 돼지와 소가 가축 양이나 가축산양보다 더 성공적을 번성했다. 그 이유는 삼림이 울창한 지세와 지역적 환경이 염소와 같은 동물보다는 돼지와 소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돼지는 소나 염소보다는 개와 사람에 가깝고 여러 측면에서 습성 역시 육식동물의 중간형이고 인간이 교란시킨 자연환경에 적응하기 쉬운 우제류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이든 잘 먹어서 사람이나 개가 먹고 남긴 찌끼기로도 살아갈 수 있다. 돼지는 가족 집단의 다른 구성원과의 신체 접촉을 즐기는 성질을 갖는다. 이러한 특성은 그들의 번식 방식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돼지는 한번에 10마리까지 많은 새끼를 낳는 데 비해 다른 우제류는 겨우 1마리 또는 많아야 3마리가 보통이다. 돼지의 또 하나의 특징은 보금자리와 잠자리를 꾸미기의 습성이다. 돼지는 모두 코로 땅을 파거나 모래나 진흙위를 뒹글어 움푹 파인 구덩이를 만든다. 암컷은 새끼를 낳을 보금자리를 꾸민다.  

고대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돼지의 사육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사용되어왔다. 그 하나는 돼지 치는 사람의 감시하에 많은 돼지 떼를 숲속에서 자유롭게 놓아 기르는 방법이다. 또 하나의 방법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행해지고 있는 것으로 돼지우리에서 기르는 방법이다. 로마시대와 그 전후 최소한 1000년 사이에 숲에서 사육된 돼지는 털색이 진하고 사지가 길었다. 체구가 몹시 작아서 아마도 멧돼지의 절반 정도였을 것이다. 고대 로마인들 사이에서 돼지는 자연이 우리에게 베풀어 준 만찬이라는 말이 떠돌았다는 사실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우리에서 사육한 돼지는 놓아 기른 돼지보다 몸집이 컸고 로마시대부터 가죽이 매끄럽고 살갗이 희었다. 더군다나 너무 살이 쪄서 제대로 서 있기가 곤란할 지경이었다. 

돼지는 항상 가난한 사람들의 동물이었다. 중세 이후에 영국에서는 지방질이 많은 베이컨이 가장 경제적이고 일반적인 식육원이었다. 거의 모든 가정에서 우리에 돼지를 쳤고 가족들이 먹고 남긴 음식 찌꺼기를 먹여 길렀다. 이 돼지는 생고기, 베이컨, 육즙용 등 여러 용도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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