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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조선우는 다양했다.

 조선후기 조선우는 다양했다.     

조선후기의 가축사육은 임진왜란으로 혹심하게 파괴된 데다가 조선 후반기에 와서 봉건통치기구가 문란해지고 중앙집권적 통제가 약화되면서 지난 세기부터 운영해 오던 관영 목장들이 급속히 줄어들었다.
 
 관영 목장이 폐기되어 가는 반면에 개인 축산업은 이 시기에 어느 정도 성장을 가져왔다.
 함경도 지방에는 개인이 관리 운영하는 소목장이 많았다. 조선 말기 한 해 동안에 블라디보스토크에 수출한 소 마릿수가 무려 3만 마리나 되었다는 것은 이 지방에 큰 규모의 개인 소목장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당시 함경도에서 소의 총 마릿수가 16만 마리에 이르렀고 또 소의 품질이 좋았다.
 우리 나라에서 소를 많이 기르면서도 품질이 특별히 좋았던 지방은 함경도의 함흥, 북청 지방과 경기의 개성, 수원, 경상도의 대구 등지였다.
 평안도 역시 소의 명산지로 알려졌으며 특히 '평양소'는 고기맛이 좋고 부리기가 좋아 '천하일품'이라고 불릴 정도로 평양 명물의 하나였다.
 이러한 우수한 조선우는 주변 나라들에 널리 수출되었으며 그것을 자기 나라의 재래종을 개량하기 위한 원종으로 이용하였다.      

1876년 조선이 일본에 의해 개항된 이래 조선우는 일본의 주요 수탈 자원의 하나로 부상하게 된다. 당시 일본이 농촌 생산력 유지를 위한 농업용으로서 새롭게 조선우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측면과 더불어, 근대 산업의 육성과 군대의 서구화를 추진하던 일본 정부의 생우 수요급증이 조선 농촌의 경제적인 동기와 맞물려 벌어진 현상으로도 본다. 일본 수출은 일본과 가장 가까운 부산항이 비용면에서 조선우 수출에 가장 유리했기 때문에 전초 기지가 된다. 

그런데 함경도 지역은 지극히 예외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함경북도의 지리적, 정치적 특징과도 연관이 깊다. 우선 지리적으로 추운 기후 탓에 논농사가 발달하지 못했던 반면 임야가 많아 소의 방목형 사육이 가능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따라서 인구 대비 공급량이 비교적 풍부했던 소를 부족한 식량으로 교환하는 생활양식이 발달하였다. 이것이 지역민들의 주요 경제 기반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정치적인 특징으로는 러시아와의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 

1860년대 들어서 연해주 지역까지 세력권을 넓히며 조선과 국경을 맞대게 된 러시아는 조선우에 대한 수요가 매우 컸다. 극동 지역 러시아군 주둔을 위한 식량 자급이 여의치 않았던 상황에서 조선우는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군수 보급 자원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으로 수출되던 조선우는 일본 농촌의 부족한 노동력을 대체하는 일소의 역할을 했고 같은 시기 러시아로 수출 되던 조선우는 러시아 군대의 식량으로 공급되었다. 일본으로 수출되던 소들은 수출 전초기지였던 부산을 중심으로 수집된 남쪽의 소였고 러시아로 수출 되던  소들은 함경도 지역에서 주로 키우던 소였다. 


 ’중국 국경 지대의 조선우로 체격이 크고 육량이 많은데 간혹 5척에 달하는 것도 있다. 단, 이 지역은 여름이 짧고 겨울이 긴데다 지금도 화전 농법이 남아 있어 경운에는 반드시 두 마리를 병용하는 것이 관행이라서 일본과 같이 단독 밭갈이에 적합하지 않은 점이 유감이다. 이 지역의 소가 일본 농가의 밭갈이, 운반 등의 잡역에 환영 받지 못하는 이유다.‘ 모리타 미치토시(守田道敏)

반면 조선 남쪽지역 소들은 체격이 북쪽 지역 소들과는 외형도 작았고 성질도 온순한 편이였다고 한다. 

지금은 경상도 한우, 전라도 한우, 경기도 한우, 강원도 한우가 쉽게 구별되지 않으나 일제 강점기까지도 확실히 지역간 한우는 체형도 성질도 달랐다. 

아마 모색도 상당히 다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100년전까지만 해도 확실히 지역적 특성이 있고 차별화된 한우가 단 하나의 품종으로 통일된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시기가 되었다.       

일본은 1938년 조선우에 대한 개로운 표준법을 제정한다. ‘일본 흑일매(黑一枚) 한국 적일매(赤一枚) 일본소는 흑색을 표준으로 하고 조선우는 적갈색을 표준으로 한다는 모색 통일 심사표준법을 발표한다. (동아일보 1938년 12월21일)

일본은 현마다 자체 개량을 통해 지금 약 161종의 다양한 화우 품종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흑소, 칡소도 있지만 그냥 황색 한우 한품종으로 통일되어 있다.

일본의 화우 수보다 한국의 한우수가 많은 현실에서 우리 한우산업은 일제 강점기의 식민지 정책의 연장 선상에 있다. 

압축 성장을 위해 재벌을 집중했던 산업 정책처럼 급격한 경제 성장으로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품종의 다양성보다는 생산기술의 통일등으로 대량 생산체계를 구축하는 포드의 T-1 자동차 같은 마켓1.0 시대의 한우 정책이 통했다. 이제 한우 300만두 시대를 지속해 가려면 한우의 통일적 개량보다는 지역 특색을 감안한 다양성을 추구해야 할 때다. 마켓 4.0의 시대라고 한다. 

백년전 한우는 일본의 화우보다 훨씬 다양한 지역적 차별성을 가지고 있었을 거다.

한우는 원래 육우였던 것이 1세기경부터 지난 2000년동안 역우로 개량되어 왔다. 다시 지난 수십년만에 세계 최고의 육우로 2000년동안 잊고 있었던 고깃소의 특성을 다시 살렸다.

이제 일본 화우를 넘어 세계 최고의 고깃소가 되기 위해서는 다양성이라는 가지를 펼쳐 숲을 만들어 가야 할 때다.

한우의 지역적 차별화는 한우를 지역 특징 테루아로 브랜딩을 할 수 있는 엄청난 마케팅 자원이 될 수 있다. 

이제 한우(韓牛)를 넘어 대한우(大韓牛)로 세계 최고의 고깃소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갈 때다.      


러일 전쟁 당시 러시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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