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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해방이 되고 미군정이 시작되면서 미군은 우리 농업 전반에 대한 조사를 한다. 그당시 보고서에 미군이 이상하게 생각한 점이 있었다. 그건 일제 강점기 조선에는 서양의 선교사들이 많이 들어와 선교를 하면서 각국의 여러 품종의 소, 돼지, 닭들을 가져와 보급 했는데 일제는 유독 소는 홀스타인, 돼지는 버크셔, 닭은 백색레그혼 한 품종만을 정책적으로 사육하게 하였다는거다.




식민지의 원주민의 노동력을 이용하여 상품성이 있는 작물들을 대규모로 경작하는 걸 플랜테이션농업이라고 한다. 일제는 쌀, 소, 면화, 잠사를 집약적으로 착취해 가면서 다른 가축들도 단일 품종으로 통일화했다. 늘 일제가 우리 한우 모색을 황색 하나로 통일했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이런 일본의 정책의 연결 선이다. 


인구밀집도가 높은 쌀농사지역의 특성에 변형된 플랜테이션 농업을 일본이 우리 농업에 적용하였다. 이렇게 우리는 한품종의 가축만 키우게 하고 일본은 소만 161개 품종이 있을 정도도 지역마다 품종의 다양화를 추구하는 농업을 전개해 오고 있다. 일본의 쌀품종은 더 많다.


이런 일본의 농업 정책은 박정희 정권에서도 그대로 답습되었다. 


 


우유 생산량이 많은 홀스타인 젖소는 지금 우리 낙농업의 주종으로 99%이상의 젖소는 다 홀스타인이다. 희색 계란을 생산하는 백색 레그혼이나 버크셔돼지는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 


갈색 계란이 계란 유통의 99%를 차지 하니 백색 레그혼은 퇴출되었다.




버크셔돼지는 1905년 권업 모범장에서 재래돼지랑 비교 사육을 하기 시작했다.


조선의 재래돼지는 큰 개 정도로 30kg 내외의 적은 체중이고 고기맛도 개고기처럼 비계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지금이야 돼지의 사육 목적이 오직 고기를 얻기 위한거니 재래돼지가 경제성이 없다고 쉽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당시는 농가에서 돼지의 사육 목적이 지금처럼 고기를 얻기 위한 것이 첫 번째 목적이 아니라 채비 즉 비료를 얻기 위해서 키우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였다. 그런데 권엄 모범장의 실험 보고서를 보면 덩치가 버크셔의 반도 안되는 조선의 재래돼지의 채비 생산량이 버크셔보다 많았다고 하니 적게 먹여도 많은 비료를 생산하는 조선의 재래돼지는 당시 농민의 입장에서는 최고의 경제성을 가진 돼지품종이였다. 




우리는 지금 돼지고기를 일상으로 먹고 있지만 돼지고기를 먹는 건 관혼상제나 어쩌다 한번 있는 축제식이였다. 그렇게 사료가 부족한 시대에 그렇게 많은 돼지를 키울 수도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일제는 1920년대에 들어서 재래돼지와 버크셔의 누진 교배를 장려하기 시작한다. 


왜? 


이유를 못 찾았다. 


1200년동안 육식을 금지했던 일본이 1868년 메이지 유신이후 육식을 재개하면서 처음에는 소고기를 주로 먹기 시작했는데 산업이 발전하고 육류 소비가 늘어나 1910년대 다이쇼시대부터는 소고기가 부족하여 돼지고기를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돈가스, 카레라이스등 돼지고기 요리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 다이쇼시대다. 




















버크셔돼지는 처음에는 그렇게 보급이 활발하지 않았지만 1931년 조선요리제법에 최초로 세겹살이 나올 때쯤에는 버크셔의 보급률이 40%정도 되었으니 당시의 세겹살은 버크셔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1942년 조선 총독부의 통계를 보면 사육되고 있던 돼지의 72%가 버크셔 순종이거나 버크셔와 재래종의 교잡종이였다. 


우리가 옛날 돼지가 검정돼지라고 하는 건 다 이 버크셔의 교잡종을 보고 먹었기 때문이다.


버크셔는 1979년까지는 사육되고 있었다. 


버크셔는 재래돼지는 아니지만 우리가 100년전부터 키웠던 토종돼지다. 토종이 재배나 사육되지 않는 이유는 경제성이다. 늘리게 크고 산자수도 적은 버크셔 돼지는 경제성이 좋은 3원 교잡 YLD 백돼지가 보급 되면서 사라졌다. 20년전 미국종 버크셔를 다시 수입해서 20년동안 우리땅의 테루아에 맞는 새로운 토종 버크셔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흔히 어르신들이 돼지고기 음식을 먹으면서 “예전맛이 아니야” 라고 들 한다.


1970년대까지 우리가 먹었던 싱글 오리진의 다양한 돼지고기들은 깊은 맛이 있었다.


특히 버크셔 돼지고기는 부드러움과 수분을 유지하는 능력이 뛰어나 육즙이 가득했다. 지방의 풍미도 좋고 감칠맛도 가득했다. 우리가 맛있는 고기를 선택하는 기준이 풍미, 보수력(육즙), 연도 세가지 측면을 보는데 버크셔는 이 세가지 요소에서 잘 하모니된 맛있는 돼지다.


경제성이 좋은 삼원 교잡 YLD 의 보급으로 돼지고기가 맛없어지니 그나만 지방이 많아 풍미가 좋은 삼겹살 부위만 찾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삼겹살을 미치게 좋아하는 건 버크셔돼지고기에 대한 그리움이였는지도 모른다. 


버크셔는 세계적으로도 귀한 돼지다. 원산지인 영국에서는 맛의 방주에 등재되어 있다.


미국에서는 “돼지고기의 고베비프”라고 칭찬을 한다.


일본에서는 구로부타(흑돼지)라고 버크셔돼지만 부를 수 있다. 우리가 잘 아는 가고시마 흑돼지가 버크셔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베리코, 듀록, 버크셔를 세계3대 돼지고기라고 한다. 




해방이후 지금까지 우리는 가장 값싼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는 시대를 살았다.


이제 인류에게 고기는 아주 귀한 사치품이 되는 새로운 시대를 산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방류로 단백질 위기는 더욱 가속화된다.




맛있는 고기를 조금만 즐기고 음미하는 시대다. 


버크셔돼지고기로 듬뿍 넣은 김치찌개를 먹을 때 그리움 할머니의 옛맛이 생각났다.


우리 맛의 절반은 정말 추억이다. 


추억의 돼지고기맛을 다시 찾아 보자. 


(꼭 버크셔뿐 아니라 다양한 품종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듀록도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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