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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고래 Dec 20. 2023

사회성 버튼이 필요해

내향인의 관계 맺기

"시온이는 사람들하고 관계를 맺는 데 거리낌이 없는 것 같아."

"시온님 주위에는 사람이 많아요."     


그렇다. 정말 내 주위에는 사람이 많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허허실실 여기저기 잘 맞춰주는 덕분에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많았다. 초중고를 다니며 친구 관계에서 내가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이 친구도 친하고 저 친구도 친하고 두루두루 친하다 보니 나를 단짝으로 여기는 친구에게 질투와 질타를 많이 받았다. 자신은 나를 가장 친한 친구라고 생각하는 데 나는 그게 아니라서 서운하다는 식이었다. 그럼 나는 어찌할 줄을 몰랐다. 그저 그들이 내 곁에 오면 오는 대로 떠나가면 가는 대로 놔뒀을 뿐이다. 꼭 누군가와 단둘이만 친해야 하는 걸까 그 아이가 좋은 만큼 다른 아이도 좋을 뿐인데 그게 잘못된 것인지 나로선 이해할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아파트 안에 있는 놀이터에서 종일 시간을 보냈다. 놀이터에 나오는 아이들 누구랄 것 없이 다 잘 지냈다. 예쁘지는 않았는데 인기가 좋은 그런 아이였다. 놀이터에서 아이들끼리 인기투표를 했는데 내가 1등이 되기도 했다. 학창 시절을 지나 대학교 입학을 하고 1박 2일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하는 날, 술자리에서 잠깐 마주친 총학생회장의 제안으로 입학하자마자 총학생회 임원이 되었다. 3년을 학생회 활동을 하고 4학년 때는 과대표로 마무리를 했다.      


제주로 이주해오고 지금은 성장 커뮤니티를 이끄는 리더이면서, 블로그 강의를 시작하고는 수강생들을 모아 '나다운 블로그 운영자 커뮤니티'를 만들어 이끌고 있다. 내가 먼저 리더가 되겠다고 한 적은 별로 없다. 항상 주위에서 리더 제안이 들어오거나 추천이 되었고, 거절을 못 하는 성격상 리더가 되었을 뿐이다. 사람들은 내가 리더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엄청나게 활발한 외향적인 성격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그런 줄 알았다.      


내가 내향형인 사람인 줄 알게 된 건 5년 전 독서모임에서였다. 모임에서 남인숙 작가의 [사실 내성적인 사람입니다.]를 함께 읽었다. 책에서 나오는 작가님의 내성적인 성향이 다 내 이야기였다. 심지어 책 속에 내향도 테스트가 있는데 100점 만점 중에 90점이 나왔다. 


'헉, 내가 내성적인 사람이었다니!'     


나를 포함한 독서모임 회원들이 모두 놀랐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론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결과였다. 36년을 살아오면서 내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도 모르고 살아왔다니. 맞지 않는 옷에 자꾸 나를 끼워 맞추려고 했기에 그렇게 힘들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요즘이야 내성적인 사람들도 인정받는 시대지만, 내가 클 때만 해도 내성적인 건 잘못된 건 줄만 알았다. 밝고 씩씩하고 활달한 아이들이 칭찬을 받는 시대였기에, 앞에 나서지 못하고 소극적인 아이는 질타를 받거나 혼났기 때문에 자기 비하를 하거나 죄책감을 느끼고 살았다.      


나는 어릴 때는 조용하고 얌전한 K-장녀였다. 반면에 두 살 터울 동생은 얼굴도 예쁜 데다 완전한 외향적 성향이라 어른들에게 사랑받았다. 잘 웃고 아무 앞에서나 귀엽게 춤도 추는 동생을 보면 누구나 예뻐했다. 몇몇 어른은 대놓고 동생을 편애했고, 그런 자리에서 나는 늘 존재감이 없었다. 예쁘지 않고 밝지 않았기에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타인을 맞춰주는 착한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사랑받는 방법을 택했다. 


그 결과 사람들에게 인기는 좋았겠지만, 정작 나는 지워져 버렸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리더 역할을 잘해서 해온 것이 아니라, 사회성 버튼을 누른 것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사람들 앞에서는 사회성 버튼의 힘으로 밝은 척하고 집에 돌아오면 에너지가 발전되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없이 조용한 아이, 혼자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내가 타고난 성향이기에 그래도 되는 거였는데, 잘 몰랐기에 그런 내가 잘못된 사람인 줄만 알았다.      


사실 나는 지금도 혼자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하고 좋아한다. 사람을 만나면 에너지를 받지만, 그건 나와 공통 사가 있거나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만이다. 나와 결이 맞지 않거나 그냥 수다만 떠는 자리에서 나는 얼어버린다. 겉으로 티나 날지 안 날지 모르지만 나도 모르게 입을 닫아버린다. 아이들 친구 엄마와 만나서 두세 시간 동안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고 온 적도 있다. 사람을 좋아하지만 나를 잘 모르거나, 내가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낯설고 어렵다. 그래서 자꾸만 나는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로 커뮤니티를 만들어 가고 있나 보다. 사람은 좋아해서 관계를 이어가고 싶지만, 가능하면 사회성 버튼을 조금 덜 누르고 살고 싶은 내향인의 관계 유지 비법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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