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가는 시간, 고통스럽지만..
고통이 나를 키운다.
푹 자고 일어난 것 같았는데 아직 알람이 울리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15분이다. 알람이 울리는 새벽 4시 44분까지 아직 1시간 30분이나 남았다. 조금이라도 더 잘까 고민하다 그냥 이불을 박차고 나왔다. 따뜻한 물 한잔을 받아서 식탁에 앉았다. 이제부터 내 시간이다.
노란색 노트를 꺼내서 모닝페이지를 썼다. 글이라고 하기엔 애매하고 그냥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대로 써내려간다. 오늘 할 일을 적기도 했다가 아이들에게 서운한 일을 적기도 했다가 후회스러운 일을 적기도 한다. 그러다 줄곧 나는 잘 살 수 있다는 메시지로 끝낸다.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감사일기를 쓰고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후기를 카페에 남겼다. 블로그 글도 써야 하는데 오늘은 카페에 좀 더 집중하기로 한다. 노트북을 닫으려다가 브런치를 열었다. 혼자서 실컷 3시간 동안 오로지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신나게 놀았는데 3시간이 지났다.
억지로 이불속에 누워있었을 수도 있었는데 일어나길 잘했다. 잠이 일찍 깼다고 아깝지 않은 이유는 하고 싶은 일을 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여고 동창을 만났다. 워킹맘으로 아이를 키우다 전업 주부가 된 지 1년 정도 되었다고 했다. 친구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할 일이 없다고 했다.
매일 하고 또 해도 할 일이 쌓여 있는 나에게 할 일이 없다는 말은 참 신선하게 다가왔다. 공부를 해보라는 내 조언에 친구는 공부는 싫다며 질색을 했다. 각자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공부하는 삶을 택한 대신 매일이 고통스럽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공부하고, 낮에도 잠깐의 틈만 나도 책을 읽느라 남의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를 볼 시간이 없다. 그 흔한 드라마나 예능도 안 본 지 6년 차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는 알아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르는 바보다.
"고통은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가짜 행복'을 좇는 고통이다. 다른 하나는 '진짜 행복'을 좇는 고통이다." -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강영길
그나마 쇼펜하우어가 나의 고통을 '진짜 행복'을 좇는 고통이라고 말해주어서 위안이 된다. 계속해서 스스로를 무너뜨리고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서 자신이 무너지고 깨지고 부서지기 때문에 괴로울 것이라고. 하지만 진짜 행복을 좇으면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마음, 타인에게 비굴하지 않고 기죽지 않는 당당함, 스스로의 힘으로 살 수 있는 품격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마흔이 되기 전 나는 엄청난 열등감 덩어리였다. 많이 가지지 못해서, 배우지 못해서 못났다고 생각했다. 나보다 조금 더 가지고 배운 여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기가 죽었다. 자존감이 낮으니 자존심만 세웠다. 못하는 것도 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다 실수라도 하는 날엔 혼자서 수습하려 전전긍긍했다.
내가 공부를 하며 얻은 가장 큰 수확이 뭐냐고 묻는다면 열등감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직 완전히 벗어났다고 할 순 없지만, 이제 더 이상 나보다 '더' 잘난 사람들 앞에서 기죽지 않는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더 잘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지를 않는다. 그냥 서로 다른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더 많이 가지기 위해 혹은 더 많이 알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 사람마다 시기가 다 달라서 먼저 깨달은 사람이 먼저 시작했을 뿐이다.
내 나이 이제 마흔둘. 서른여섯에 시작한 '나' 공부가 벌써 6년 차다. 이제 좀 그냥 편하게 살아도 되지 않냐 싶은데 여전히 고통스럽다. 아이 키우며 살림하며 일도 하면서 공부까지 하려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 고통이 나를 성장시킨다는 것을 알기에 내려놓을 수가 없다. 아니 해도해도 더 하고 싶은 공부만 늘어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니까 더 열심히 해야지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