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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 마수리 Dec 09. 2023

16세의 말러에 빠지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음악_구스타프 말러 피아노사중주 A단조

찬란한 11월이었다.


집중해서 뭔가를 해야 할 때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는다.

나도 모르게 몰입해서 일을 하게 되고 작업이 마무리될 즈음, 그제야 음악이 귀에 들어온다.


소장 음반이 없어 KBS Classic FM을 듣는데 그중에서도 <FM실황음악>이라는 프로그램이 큰 도움이 된다.

다시 듣기 서비스가 제공되어 아무 때나 들을 수 있고 최근의 실황 연주가 방송되기 때문에 현재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연주자, 지휘자, 연주단체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좋은 건 간단한 연주 소개 외 다른 멘트가 없어서 온전히 음악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더욱 집중이 잘 될 수밖에.


11월 저녁, 작업하면서 들을 배경음악 선곡을 위해 다시 듣기 리스트를 살피던 중 '포레 콰르텟'이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나무와 숲을 좋아해서인지 '포레'라는 단어에 끌렸던 모양이다. *

그날도 미루고 미루던 작업을 한창한 후 한숨 돌리고 나니 슬며시 음악이 들리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듣는 곡인데 선율이 어찌나 애잔하던지 마음을 온통 빼앗겨버렸다.

갑자기 훅 들어온 음악. 

사전지식이나 누구의 추천도 아닌, 오롯이 내 귀가 발견한 말러 음악과 '포레 콰르텟'.


처음 듣는 곡이라 제목을 찾아보았다.

말러 피아노사중주 A단조.

말러가 16살에 작곡했고 1악장만 남아있단다.


아니, 말러라고? 구스타프 말러?

어렵고 멀게만 느껴져서 들어보려고도 하지 않고 무조건 건너뛰던 음악가였는데 16세의 말러가 내 마음을 이렇게 후벼 팔 줄이야.


11월에 유독 음악에 푹 빠져지 냈다. 가을이라는 계절이 그렇게 만들었다. 

나의 열악한 음악 환경을 벗어나 제대로 듣고 싶어서 파주의 음악 감상실 두 곳을 찾았다.

모두 훌륭한 곳이지만 음악을 제대로 음미하고 즐기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진 찍기에 바쁜 사람들, 그리고 선곡의 한계.

공교롭게 내가 머무는 동안 한 곳은 너무 알려진 곡 위주로, 다른 한 곳은 재즈 위주의 선곡이었다. 공교롭게도 말이다. 

손님들의 연령과 구성, 시간대, 날씨 등을 모두 고려하여 재생하는 것일 테니 단 한 번 방문으로 단정 짓고 싶지는 않지만 다시 갔을 때도 그럴까 봐 선뜻 나서지 지는 않는다.


그래서 풍월당'을 찾았다. **

나의 진정한 '음악 감상실'.  

바로 옆에 풍월당 방문(구매) 고객에게 커피를 무료로 제공해 주는 카페가 있다. 오스트리아 빈의 카페를 모티브로 했는데 그곳에서 인생 커피를 만났다. 실크처럼 부드러운 맛이란 이런 것.

커피와 음악, 분위기가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또 하나 눈길이 간 건 바닥이었다. 바닥재 색깔과 단단함, 디자인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종로에 있는 홍난파 가옥에 있던 마루(바닥재)와 유사하다. ***

원두가 궁금했고 바닥재도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냥 넣어둔다. 


음악에 심취해 '객석' ****을 읽다가 '포레 콰르텟'의 연주 소식을 보았다. 프로그램에는 브람스와 포레의 사중주곡도 있었지만 오직 말러의 피아노사중주 A단조만 유난히 크게 들어왔다.  주저 없이 예약을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장에 갔다.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첫 경험이 너무 강렬해서일까?

2023 라인가우 뮤직 페스티벌 실황 방송을 듣고 한번에 반했는데 이번 공연은 뭔가 산만하고 조율이 안된 느낌이었다. 내가 연주를 평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겠지만...

그날 공연은 어마어마한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오케스트라든 실내악단이든 독주회든 연주자들의 무대 뒤 모습이 궁금할 때가 있다.

무대에서는 최상의 컨디션으로 최고의 연주를 하려고 하겠지만 때로는 그들끼리의 팽팽한 긴장감과 갈등이 왜 없겠는가?


영화 <마지막 사중주>에서는 실내악단의 애환이 담겨 있고,  책 <세계의 오케스트라>에서는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역사와 지휘자의 모습이 나온다.



* 작곡가 가브리엘 포레를 기념하기 위해 1995년에 결성된 피아노사중주단. 짐작하겠지만, 포레(스트)와 아무 상관없다.  한글 표기만 같을 뿐.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도 이름에 끌려 연주를 듣게 되고 공연장도 찾아갔었다. 앙코르 연주를 무려 5번이나 해주었다. 

레오니다스는 스파르타의 장군 이름이기도 했고 벨기에 초콜릿 브랜드이기도 하다. 그냥 어감이 좋다. 포레, 레오니다스.  

** 클래식 음반과 관련 서적 판매, 매장 내 클래식 음악이 흐른다.

*** 생가 아님, 6년간 거주한 집. 그곳 마루는 1930년대 독일에서 들여왔다고 한다.

**** 클래식 음악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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