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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 마수리 Jan 16. 2024

서울의 빈(Wien) 카페들

금호아트홀연세를 찾아가던 중 빨간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비엔나커피하우스 1683'.

들어가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공연 시간에 쫓기기도 했고 빈 분위기를 느끼기에 대학가보다는 다른 지역이 나을 것 같아 바삐 지나갔다.

나중에 찾아보니 매장이 여럿 있었는데 그중 목동 매장을 방문했다.



비엔나커피하우스 1683 

멜랑쥐(Melange)


카페 이름처럼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기대했는데 살짝 실망이다.

키오스크 주문에, 팝음악에.

인테리어는 오히려 미국 스타일이다.

그래도 이 카페가 기억에 남는 건 커피잔, 나무 의자,  <담배가게 소년>이라는 소설이 함께했기 때문이다.



주문한 커피를 마주할 때 향을 음미하기도 전에 먼저 식기를 살펴보는 버릇이 있다.

잔의 형태와 재질,  음료와의 어울림, 차받침과의 조화 등.

카페에 들어섰을 때의 실망감을 단번에 녹여줄 만큼 예쁘고 양도 많았다. 추운 날씨에 얼어붙었던 몸과 마음도 사르르 녹았다.


또 하나 마음에 들었던 건 나무 의자. 

테이블과 의자가 자리마다 각양각색인데 나는 구석진 작은 자리에 앉았다. 

딱딱한 나무 의자인데도 무척 편안했고 앉아있는 내내 포근하게 감싸주는 느낌마저 들었다.

읽고 있던 <담배 가게 소년>을 가방에서 꺼냈다.

빈 커피하우스에서 멜랑쥐를 마시면서 오스트리아 작가의 소설을 읽는 재미, 경험해 보시기를! 

<담배가게 소년>은 오스트리아 작가 로베르트 제탈러의 소설이다.

나치 시절을 살았던 소년의 성장기이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와의 우정이 담겨있다.


이 작가의 <한평생>이라는 소설도 읽어볼 만하다.

오스트리아의 티롤 산악지방의 휴양지 개발과 주민인 안드레아스 에거의 일생을 담담하게  그려내는 전개인데 그럼에도 읽는 내내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 

두 책 모두 양장본인데 작고 가벼워서(얇다) 휴대하고 다니면서 읽기에도 좋다.



싸일러(Sailer)


청담점(2019)과 용산점(2020)이 있다.

가문 대대로 제빵사인 오스트리아인이 한국 회사에 위탁 운영하는 방식인 듯하다.

입점지 특성인지 용산은 직장인들이 많아 보였고 청담은 주민들이 많이 찾는 것처럼 보였다. 방문 시간이나 요일에 따라 다르겠지만.


독일 리들(Lidl) 슈퍼마켓 베이커리 코너에서 담백하면서도 맛있고 저렴한 빵이 있어 종종 사 먹었는데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젬멜(Semmel)이었던 것 같다. 

독일 역사박물관 앞에서 사 먹었던 브레젤(Brezel) 맛도 잊지 못한다.

지중해의 작은 섬나라 몰타의 전통빵인 프티라(Ftira)도 생각난다. 역시 자주 가던 슈퍼마켓 베이커리 코너에서 우연히 사 먹은 후 틈만 나면 사서 먹은 기억이 있다. 쫄깃하면서 담백해서 식감이 아주 끝내준다.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빵도 역시 젬멜과 브레젤이다. 

카이저 젬멜(Kaiser Semmel)

<담배가게 소년>에서 굴라쉬(Goulash)가 나오길래 청담점에서 먹어보려고 했는데 품절이란다. 브런치 메뉴로 모두 나간 것인지 아니면 아예 만들지 않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카이저 젬멜과 멜랑쥐를 먹었다.

멜랑쥐가 약간 긴 컵에 나왔는데 입구가 넓은 동그란 잔에 담으면 어떨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멜랑쥐 맛도 맹숭맹숭하고 따뜻하지도 않았다.

젬멜은 겉 바삭, 속 촉촉.




카페 로젠 카발리에(Rosenkavalier,  장미의 기사)


클래식 전문 매장 '풍월당'에 있는 카페이다.

빈의 감성을 재현한 곳으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오페라 <장미의 기사> 초연 무대의상 오리지널 포스터가 벽을 장식하고 있다.

음료를 판매하지는 않고 풍월당에서 음반이나 책을 구매한 이에게 무료로 커피를 제공한다.

이 카페의 커피맛과 마룻바닥에 대해서는 <16세의 말러에 빠지다>에 적은 바 있다. 세상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찻잔이 아닌 머그컵에 커피가 나온다는 것.  


책을 열심히 소장하던 때가 있었다. 

잦은 이동으로,  소장이 부질없다는 것을 꺠닫고 그                                                                             후로는 책도 음반도 빌리는 것으로 해결한다.


차라리 유상 판매라면 자주 가서 커피도 마시고 음악도 들을 텐데...


풍월당에는 좋은 책도 많이 있다.

직접 발간한 <브람스 평전>도 아주 재미있게 읽었고 주인장 박종호 님이 지은 <빈에서는 인생이 아름다워진다>도 한번 잡으면 손을 떼기 힘든 책이다.



내가 꿈꾸는 카페 감성


자리에 앉는다.

웨이터와 눈을 마주친다.

가져다준 메뉴(판)를 확인하고 주문한다.

웨이터는 주문한 메뉴를 한 번 더 확인한다.

예쁜 잔에 담긴 음료를 자리에 가져다준다.


키오스크 주문이 일상인 요즘, 비대면 주문이 마음 편할 때도 많이 있지만 가끔 이런 모습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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