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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 마수리 Oct 18. 2017

오로빌에서 외국어를 대하는 나의 자세

오로빌 영어에 대한 생각


옥스퍼드에서 영어 연수할 때 같은 반에 스위스 청년이 있었다.

아이디어도 많고 말도 많고 질문도 많았다. 

'철자가 어떻게 돼요?' '뜻이 뭐예요?' 본인이 모르면 다른 사람도 모른다고 생각하는지 거침없이 질문해서 수업 시간 맥을 자주 끊었다.

 '어쩜 그 단어를 모를 수 있지?'라고 생각할 때도 많았다. 그런데 나는 그 뜻도 알고 철자도 알지만 그 사람 영어 말하기의 반의 반도 못 따라갔다. 


나는 프랑스어를 모르지만 적극적으로 마음먹으면 배울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이곳은 프랑스어에 노출되어 있다. 그렇다면 내가 이런 환경에서 문법을 배우고 글쓰기부터 배우겠는가? 당연히 아니다. 말하기부터 하게 될 것이다. 철자도 모르고 문법도 모르지만 상황에 맞는 말들을 할 것이고 간단한 의사소통은 될 것이다.


그 스위스 청년도 영어를 그렇게 배웠을지 모른다. 살아있는 언어로.


영국(인) 선생님들은 미국식 영어를 싫어하셨다. 몰타에는 영국에서 온 선생님들이 많이 계셨는데 유난히 영국 영어를 고집하셨다. 미국 사람들이 영어를 망쳐놓았고 세계 공용어로 쓰이다 보니 영어가 무너지고 있다며 안타까워하셨다. 미국의 실용적인 영어를 반기지 않으셨다. 

작문 과제에 유독 빨간 줄이 많아 봤더니 gray(->grey) center(->centre)까지 체크되어있던 기억이 생생하다. 


외국어를 대하는 태도 두 가지.

하나, 실용성

문법에 안 맞아도 발음이 틀려도 철자를 몰라도 단어와 상황, 표정 등으로 무슨 말인지 서로 알아들으면 된다.

언어의 존재 이유는 의사소통. 

언어는 생물이다. 시대에 따라 사라지기도 변형되기도 한다.

다른 하나, 정확성과 품격

문법에 맞게 사용하고 각 언어의 고유성과 아름다움을 살려야 한다. 문법과 용법에 맞는 언어 사용.

초등학생과 대학생이 쓰는 언어는 분명 다를 것이다. 좀 더 정제되고 예의 바른 표현들이 있다. 

하지만 의사소통이 되면 누가 굳이 문법과 정확한 사용법, 품격에 신경 쓰겠는가. 영어가 무너지고 있다는 탄식이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이유다.


오로빌의 영어는 당연히 실용성이다. 수십 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 

주방에서 남은 식재료를 콜드 룸(cold room)에 넣어달라고 했다. 콜드 룸? 뭐지?

냉장고를 말한 거다. refrigerator.


몰타 영어 연수 첫날, 오리엔테이션.

일본인 직원이 다가와 May I ask your name?이라고 물었다.

너, 이름이 뭐니? 가 아닌, 이름을 물어봐도 될까요? 였다.

내가 일본인인지 아닌지 확신이 안 서서 물어본 것 같다. can도 아니고 get도 아닌 may라는 표현에 기분이 참 좋았다. 직원이 학생을 대할 때, 사람을 대할 때의 이런 정중함이 좋았다.


실용성이 강조되면 정확성과 품격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 거기에서 멈춘다. 초등학생의 수준으로도 별문제 없이 지낼 수 있겠지만 정제되고 격 있는 영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공부가 더해져야 한다. 고급 영어로의 지향은 개인의 선택 문제이고 각자의 노력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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