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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 마수리 Oct 22. 2017

다시 책부자가 되었다

여유로웠던 한 주간의 기록


이번 주는 'DEEPAVALI'라는 인도 축제(공휴일)가 있어서 농장 일을 하루 쉬었다.  

격일 근무인지라, 농장 다녀온 날은 오후에 기진맥진해있다가 다음 날 충전하고 이튿날 출근하는데 중간의 하루 휴일이 이번 한 주간을 무척 여유롭게 해주었다. 몸에 무리가 오던 차에 제대로 쉴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머리에는 1년 치의 고민을 안겨주었다.

갑자기 많아진 시간, 생각도 많아졌다.

익숙해져 가는 오로빌의 일상, 굳어지는 패턴. 내가 여기 왜 있는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구상하고 있는 일들은 잘 될 것인지.

이런 마음을 눈치챘는지 영혼이 나를 이런 글귀로 데려다주었다.


'인간은 자신의 혼과 지속적으로 접촉해 있기가 어렵다. 정착하여 새로운 경험의 신선한 느낌이 바래져가기 시작하면 이내 예전의 인격이 표면으로 돌아와서 모든 습관과 선호와 자잘한 것들에 대한 열광과 결점과 오해들을 되가져다 놓는다. 평화는 초조함으로 바뀌고 희열은 간데없이 사라지고 이해는 눈이 멀고, 이곳도 다른 여느 곳과 다를 것이 없다는 식상한 느낌이 슬금슬금 기어들어온다. 다른 모든 곳에서 그랬던 것과 동일한, 그 사람으로 돌아가버렸기 때문이다'.

                                                                                              - 마더 '뉴커머에게 주는 충고' -

*뉴커머: 오로빌리언이 되기 바로 전 단계.


마더는, 여기에 대한 해결책으로 혼을 붙잡으라고 제시했다. 그런데 너무 애매하구먼. 그리하여, 예전의 나로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한 내 처방전은 새로운 자극과 활동. 

생각보다 쉽고 빨리 찾아왔다.


집 근처 카페는 목요일마다 쉰다. 하필 처음 찾아간 날이 그날이었는데 그늘에서 책 읽는 재미가 있어서 이제는 일부러 카페 쉬는 날 찾아간다.  

이번에는 오전 일찍 갔는데 옆에 있는 게스트 서비스 사무실 문이 열리면서 직원이 안으로 들어올 것을 권했다.


테이블 위로 쓰윽 한국어 책 한 권이 놓인다. <웰컴 투 오로빌>.

오로빌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바이블로 통한다는 바로 그 책이다. 나는 이곳에 와서야 알았지만. 물론, 읽어본 적도 없고.

직원이 건네주면서 도서관에도 한국어판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두께도 상당하고 정보도 방대해서  한자리에서 읽기에는 무리였다. 그대로 도서관으로 달려가서 빌렸다. 

오로빌에 온 후 적응하느라 책 읽을 여유가 없었다.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내 눈은 반짝이고 심장은 뛴다. 


오로빌 도서관 이용

1. 도서관에서 계좌번호가 적힌 종이를 받는다(계좌번호를 알고 있다면 생략).
2. 타운 홀(Town Hall, 관공서)에 있는 파이낸셜 서비스(Financial Service)에서 보증금 일천 루피를 도서관 계좌로 이체한다.
3. 영수증을 받아 도서관에 제출한다.
4. 3권까지 한 달간 빌릴 수 있다. 

* 보증금을 돌려받을 때는 도서관에서 주는 종이를 받아 파이낸셜 서비스에 제출하면 된다.
* 영어가 다수, 그 뒤로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순이다.
* 운영 시간: 월-토 09:00-12:30/14:00-16:30


오로빌 도서관


파이낸셜 서비스 이용

은행으로 생각하면 된다.
1. 오로 카드 충전
신용카드와 현금으로 가능. 신용카드로 충전 시, 수수료 1.9%.
1. 계좌 이체
다른 사람의 계좌로 송금
1. 환전
달러를 루피로 바꿔준다.
1. 출금
오로 카드에 충전되어 있는 금액을 현금으로 찾을 수 있다.

* 운영 시간: 월-토 09:00-12:30/15:00-16:30


오로빌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건 흥미롭다.

새로운 과제와 해야 할 일들이 생기니까.


한국 식당을 찾았다. 

한식도 먹고 책을 전해 달라는 부탁도 수행할 겸. 

소(규모) 농(업)에 관한 책이라 흥미롭게 읽고 전해주었다.

예약이 필수라서 이메일로 했는데 답이 없어서 제대로 된 건지 불안해하면서 도착했는데 역시 예약이 안되어있었다. 메일 주소가 틀렸다. 다행히 내 몫까지는 분량이 되었다. 그리고 설령 예약이 안 되었다 해도 일부러 찾아간 사람 돌려보내지는 않으리라는 한국인의 정서에 기댄 측면도 있다. 

메뉴는 비빔밥. 한 달 만에 먹는 한국 음식이기도 했지만 담백한 음식들이 모두 내 입맛에 맞았다. 기운이 번쩍 났다.

그리고 나를 더 배부르게 한 것은 식당 한편에 있던 책들. 내가 고른 2권과 주인이 권해준 1권 모두 3권을 빌려왔다. 

나는 다시 책부자가 되었다.

M에게 빌린 책까지 모두 합하면 9권이 지금 책상 위에 있다. 틈나는 대로 계속 읽고 있다. 읽어야 할, 읽고 싶은 책들이 쌓여있는 것만으로도 뿌듯하다. 어떤 이들은 옷, 모자, 신발, 가방, 장비들에서 이런 행복감을 느끼겠지.

대상만 다를 뿐이다.


남은 기간 지루할 틈은 없을 것 같다. 요가도 시작했고 사비트리 공부도 시작했다. 

엔트리 서비스팀에 찾아가 계속 실랑이도 해야 한다. 지금 이런저런 활동들을 하고 있으니 나한테 엔트리 비자(Entry Visa)를 내어주라고.


사비트리(Savitri)

오로빌 공동체의 설립자 '마더'의 스승 스리 오로빈도(Sri Aurobindo)의 저작(서사시).
문학적으로 뛰어나다는 정평이 나있으나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오래된 영어가 많음.
게스트 서비스 직원은 내가 이 공부를 시작했다고 하니 뜨악해했다.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

사비트리 바반(Savitri Bhavan, 사비트리의 집)

모여서 사비트리를 공부하는 장소이며 스리 오로빈도와 마더의 전시관
사비트리 공부는 매주 목요일 오후 4- 5시, 일요일 오전 10시 30분부터 11시 30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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