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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지에 사는 허거북 Jul 16. 2024

4. 사실 제가 왜 퇴사를 했냐면요...

PART 1. 나의 첫 부서에서부터 첫 퇴사까지.

 그렇게 나는,
 신생아중환자실에서는 독립 전에 퇴사했다.
 (독립이란, 사수 밑에서 1~2개월간 배운 이후 혼자서 일하는 것이다.)
 
 이전 글에서도 퇴사 사유가 있었지만,
 이번 글에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쓸 예정이다.
 
 
 사실, 퇴사한 가장 큰 이유는
 일머리가 없기도 했는데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기 때문이다.
 
 -프리셉터(사수)가 하는 말, 행동을 다 필기한 것.-
 
 한 마디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모든 것을 필기하는 나,
 속기사. 음성인식 파파고 그 자체였다.
 
 숲을 봐야 하는데 먹을 것을 나르는 개미를 보고 있는 격이 되었다.
 필기에 꽂혀서 다른 것들은 보지 못하고 오로지 내 귀에 들리는 음성밖에 집중하지 못했다.
 
 간호사 업무는 손으로 직접 하는 업무가 대부분이다.
 수액이 일정 속도로 들어가게 만드는 기계를 다루는 방법,
 정맥주사를 하는 방법, 기관 내 삽관 관리 등등 

 서류 업무보다는 내가 직접 발로 뛰는 업무가 많다.
 
 신규 시절에는,
 하는 방법들을 눈으로만 보고 외우는 게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행동 하나하나를 다 필기했다.


 
 현시점에서 생각해 봤을 때,
 직접 눈으로 보고 간략하게 메모만 해두었다가
 유튜브를 찾아보는 게 더 좋았을 터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연차가 어느 정도 쌓였기도 했고 기계 다루는 것이 전보다 익숙해져서 이런 태평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수도 있다..ㅎㅎ)
 
 그리고 모든 필기를 노트북으로 정리한 것이 큰 실수였다.
 
 -내 손 아프게 공책에 정리하기 전에,
 노트북으로 편하게 타이핑해서 정리한 다음 공책에다가 정리해야지~-
 
 이것이 퇴사의 발화점이 될 거라는 생각은 했을까?
 
 일을 왜 이중으로 하니…. 한 번에 일을 해결해…..
 정말 미련한 짓이었다.
 
 공책에 간단히 정리하지 못해서
 업무 시 막히는 부분이 있을 때 절대로 찾아보지 못했다.
 
 노트북으로 정리한 파일을 휴대폰으로 본다?
 부서 내에서는 휴대폰을 꺼낼 수 없는… 분위기였다.
 
 그렇게 하여,
 거의 300페이지가 넘는 (책 한 권 썼네..) 파일을 결국 정리하지 못하고 퇴사했다. ^^
 
 다시 공책에다가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일할 때 내가 볼 수 있는 지침서가 없었기에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교육 기간 내내
 정리한 문서파일을 흡사 공상과학처럼 공중에 띄우고 싶다는 생각을 수천번이나 했다.
 
 
 이것이 가장 큰 퇴사 이유였고, 그 외 부수적인 것들은 부서 문화였다.
 
 
 그 부서는
 정시출근, 정시퇴근으로 정시로 다 같이 부서에 들어가고 정시로 다 같이 나가는 형태였다.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출근할 간호사들은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바로 부서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탈의실에서 모든 간호사가 오기까지 기다렸다가 출근 시간이 되면 다 함께 부서로 들어가는 것이다.
 
 정시로 다 같이 퇴근하는 것도,
 퇴근 시간이 되면 일을 다 끝내지 못하여도 모두가 한꺼번에 퇴근한다.
 
 
 정시출근, 정시퇴근이면 좋은 거 아니에요?
 아뇨, 그걸로 사람을 괴롭힐 수 있다는 걸 여기 와서 처음 알았습니다 하하하
 
 정시출근, 정시퇴근으로 날 괴롭혔던 두 가지가 생각난다.
 
 1.
 모든 사람이 출근하기 위해 부서로 들어가기 전,
 탈의실 안에서 그날 밥 먹을 사람을 체크해야 한다.
 왜냐면 중환자실은 식당까지 갈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기에
 초등학생 때 봤던 추억의 밥차가 부서까지 올라온다.
 
 그날 밥 먹을 사람 인원에 맞춰 양이 올라와야 하므로 체크해야 한다..
 
 그것을 신규가 체크한다.
 나 역시 체크를 했다.
 
 일한 지 2주밖에 안 되었는데 누가 누가 인지 어떻게 아냐…
 
 부서 사람들이 20명? 그 정도 되었던 거 같고,
 매번 듀티마다 사람들이 다르고 이야기도 나눠본 적도 없다.
 프리셉터(사수)한테 탈곡기처럼 털리는 와중에
 가서 맑은 눈의 광인처럼 “성함이?”라고 물어볼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그래도 체크해야 하니 시도하였으나
 
 “아직도 부서 사람들 이름이랑 얼굴 몰라요? 그날 같이 일하는 사람 신경 안 써요?”
 
 이렇게 혼난 적이 있었다 ^^
 (누가 보면 전시 상황인 줄)
 
 그래서 매일 출근하기 전,
 그날 듀티표를 확인하고 출근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보며 외웠다.
 


*듀티표
 근무 시간표다. 모든 선생님의 근무시간을 알 수 있고, 나랑 겹치는 선생님도 알 수 있다.
 여담이지만,
 대학 동기 듀티표 종이에 날짜별로 형광펜이 칠해져 있었다.
 
 “중요한 날이야? 형광펜으로 칠해져 있네.”
 “미친 X이랑 같이 근무하는 날이야.”
 “.... 노란 날이 많네?”
 “예민하니까 말하지 마. 퇴사하고 싶으니까.”
 
 내 대학 동기 중 몇 명은 같이 일하기 싫어하는 선생님과 겹치는 날에는 형광펜을 칠했다.
 학창 시절 급식 표에 맛있는 음식 나오는 날 형광펜으로 칠했던 날들이 잠시나마 생각이 났다.
 



 2.
 

 첫날 다 같이 퇴근할 때 충격받았다.
 
 부서 동기 두 명 중 한 명은 퇴근하자마자 날다람쥐가 되었다.
 잽싸게 탈의실에 먼저 들어가 근무복을 미친 듯이 벗고 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다른 선생님들이 벗어둔 근무복을 다 모아 한꺼번에 치운다.
 다른 한 명도 미친 듯이 옷을 갈아입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기 위해 뛰쳐나간다.
 
 처음에는 정말 정시 퇴근에 미친 건가?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그렇지만,
 다른 선생님들은 여유롭게 옷을 갈아입은 후,
 내 동기들의 행동들을 당연시 여기며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이게 뭘까 싶었다.
 
 이후로 동기 없이 나 혼자 있었을 때가 있었다.
 프리셉터(사수)한테 탈탈 털리기도 했고 안 그래도 행동도 굼떠서
 탈의실에 제일 먼저 가지 못하였고, 결국 선생님들의 옷들을 치우지 못하였다.
 
 결국,
 다른 선생님께서 치우셨고, 나는 생명의 은인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여러 번 하였다.
 하지만, 모두가 보는 눈앞에서 한 선생님은 나를 불렀다.
 
 “선생님”
 
 싸늘하다.
 일자로 째진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안 그래도 째진 눈, 더 째리네.)
 
 “네?”
 “선생님이 제일 연차 낮은 거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이런 일은 연차가 제일 낮은 선생님이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왜 선생님보다 연차가 높은 선생님이 해야 해요?”
 “죄송합니다... 앞으로 더 빨리 나와서 하겠습니다..”
 “앞으로 지켜볼 거예요.”
 
 프리셉터(사수)한테 털리는데 어떻게 빨리 튀어 나갈 수 있니?
 그리고 여유로운 날이면 몰라도,
 신규가 빨리 나갈 수 있는 게 가능한가?
 
 지금 생각해도 화가 나고 탈주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행동 빨리해야 하는 거에 예민해서 더 화난다)
 
 한창 태움에 대해 이슈가 되는 시기였어도,
 이러한 것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게 이상했다.
 
 태움 관련 뉴스를 보며,
 자신들이 한 행동들도 만만치 않게 이상하다는 것을 못 느끼는 건가?
 
 나는 이 병원이 처음이었고, 대부분 병원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학 동기들과 이야기를 나눌수록
 이 부서가 유독 이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대학 병원에서 근무하게 되었을 때,
 더 확고해졌다.
 
 전에 있었던 부서가 정말 이상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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