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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지에 사는 허거북 Jul 09. 2024

3. 나의 프리셉터(사수)와 짤막한 신규시절

PART 1. 나의 첫 부서에서부터 첫 퇴사까지.

“우리 부서에는 3대 일진이 있지. 왜 일진인 줄 알아? 패고 다녀서 일진이야.
 A쌤,B쌤 그리고 너 프셉쌤(프리셉터 선생님의 준말. 간단히 말하면 사수).
 너 프셉쌤은 말과 눈빛으로 사람을 때려.”
 
 나이트 끝나고 국밥집에서 소주를 마시며
 얼굴이 시뻘게진 부서 동기가 말했다.
 
 
 동기가 해준 말과 비슷하게,
 3대 일진 명성에 걸맞았다.
 
 프리셉터 선생님의 첫인상은 관상에서부터 느껴졌다.
 -예민-
 -건드리지 마. 나 문다?-
 
 치와와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치와와를 닮으시지는 않았다.
 
 “제가 한번 알려준 거 다 기억하고 잘할 거라는 기대는 없어요. 그걸 어떻게 한 번에 기억해요.”
 
 처음 본 나의 프리셉터 선생님은
 나름 다정한 말조차
 착즙기로 웃음 즙마저 다 빼버린, 고조 없는 말투로 말하였다.
 
 아마도 이 꽉 깨물고 말한 것 같다.
 
 하지만 이곳은 병원.
 그저 글자만 다정하면 다정함으로 다가온다.
 
 ‘내가 쓸데없는 걱정 했네’
 이런 생각까지 들게 했다.
 
 
 2주 뒤,
 
 “선생님은 제가 이때까지 물어본 것 중에서 제대로 답한 게 하나도 없어요.”
 “죄송합니다.”
 
 2주 전 좋게 생각했던 내가 한심하다.
 정말 솔직하게 말해서 선생님이 10개를 물어보았을 때 8개 정도는 답을 했다.
 
 8개 정도의 답을 했을 때는
 맞는 답이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나갔고,
 
 2개 정도 틀렸을 때
 저 말 한마디와 그 외의 말들을 퍼부었다.
 


“선생님은 저랑 같은 월급 받는 거 아니에요? 일 이딴 식으로 해서 같은 월급 받은 선생님들 안 억울하겠어요?”
 - 지금은 수습 기간이라서 80퍼센트만 받는데요? 부들부들 

“여기는 학교가 아니라 일하는 곳이에요. 배우러 오는 곳 아니에요. 선생님은 왜 배우러 와요?”
 - 아니 배워야지 일하지. 안 배우고 어떻게 일해.

 “선생님 간호사 아니에요?”
 - 네 ^^ 아닌 거 같아요ㅎㅎㅎ 그건 인정합니다.
 


 속으로 말대답하면서
 입에서 나오는 말은 “죄송합니다. 좀 더 숙지하겠습니다.”라는 말만 했다.
 
 하지만 묻는 말에 대답하는 것 외에는 다 못했다.
 저주받은 손이었다.
 
 기본적인 신생아들 수유하는 것, 포대기 싸는 거부터
 지금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멸균상태에서 수혈할 피만큼만 혈액 팩에서 뽑았던 것까지.
 이러한 기본적인 것들을 잘 못했다.
 
 머리로는 알지만, 몸이 따라주지 못했다.
 심지어 수전증이 있나? 싶을 정도로 손이 떨렸고, 느렸다.
 
 그리고
 손도 엄청 작다.
 그래서 약을 떨어뜨리거나, 분유를 엎는 일들이 있었다.
 
 액팅(간호사가 발로 뛰는 일, 예를 들어 약주는 거나 포대기 싸거나.. 등등) 봉인당한 손이다.
 
 신규 때는 어설프니, 그럴 거라고 다들 생각하고 나도 그런 생각했지만.
 몇 년이 지나도 약 깨뜨리고, 엎은 적 많다.
 (깨면 골치 아픈 마약도 깬 적이 있었다.)
 
 신규 시절 이후로는
 손 떠는 건 어느 순간 괜찮아졌다가
 주사기 바늘에 다친 적이 많아 다시 떨기 시작했다.
 
 키도 작아서
 쓸데없이 키가 겁나 큰 폴대에 약물을 걸 때
 화를 내며 폴대 발치 위로 올라간다.
 
 내 몸뚱이 자체만으로도 페널티를 받고 일하는 느낌.
 기분이 썩 좋진 않다.
 
 
 일하기에 마이너스 몸이라 그런가,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간호사 태움 모음집에 있는 말들을 거의 다 들었던 거 같다.
 혹시 내 프리셉터가 온 세상 신규 간호사를 털었나? 할 정도로 똑같았다.
 
 
 그리고 액팅을 어설프게 했을 때 프리셉터(사수)는 주변 간호사들을 쳐다보며
 “쟤 좀 봐. 내가 안 미치겠어?”라는 식으로 얘기를 했고 서로 웃었다.
 
 그 외에도 계속 앞에서 한숨을 쉬고 뒤로 가서 내 이야기를 안줏거리 삼아서 얘기를 나누었다. 정말 아닐 수도 있지만, 은어로 나를 “대구탕”으로 칭해서 얘기하는 것 같았다.
 나의 본가는 대구였기 때문이었다.
 
 대구탕이라는 단어는 어느 출근 전 탈의실 앞에서 들었다.
 문밖에까지 시끄러운 말소리가 들렸고,
 간간이 “대구탕” 단어가 들렸다.
 
 대구탕을 먹으러 가자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다.
 
 내가 문을 여니,
 모두가 나를 쳐다보았고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 이후로도
 부서에 돌아다니다 보면 “대구탕”이라는 단어가 빈번히 들렸다.
 
 
 그래도 꿋꿋이 버텼다.
 내가 일을 못해서 그런 거라며, 1인분만 할 수 있게 된다면 당당해질 수 있다고
 
 프리셉터 선생님은 365일 24시간 동안 나에게 화를 내시진 않았다. 가끔 나에게 보여주셨던 농담과 미소. 날 싫어해서 저런 말들을 한 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으로 미련하게 조금씩 버텼던 거 같았다.
 흡사 스톡홀름 증후군 같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날 싫어했던 게 맞는 것 같다.
 
 왜냐하면
 프리셉터 기간 때(교육기간)는 프리셉티(후임)가 귀찮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왜냐면, 프리셉터(사수)는 자기 일을 하면서, 프리셉티(후임)를 알려줘야 하니까.
 바쁜 와중에 일이 2배나 늘어나고, 말하면서 일하기는 쉽지 않다.
 근데 프리셉티가 한 개 알려주면 완벽하게 하고, 일취월장한다면 보람을 느끼겠지만,
 그게 아니라서 힘들고 가르쳐줄 의욕이 생기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이전에 가르쳤던 프리셉티에 비해서 얘가 너무 못한다?
 “아니 얘는 이렇게 간단한 걸 왜 못 하지? 이전 프리셉티는 다 했는데?”
 화가 나고 답답할 것이다.
 
 고로, 날 싫어했던 게 맞는 거 같다.
 
 하지만,
 그렇게 별칭을 붙여서 괴롭힐 것까지는 없지 않나.
 
 
 
 어느 순간,
 새벽에 눈을 뜬 순간부터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속으로는 ‘도망치고 싶다. 사라지고 싶다. 안 가고 싶다.’를 수도 없이 외치며
 출근 준비를 했다.
 
 집 밖으로 나왔고 시간을 봤다.
 나의 목표 시간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살짝 뛰어야 됐다.
 
 내 마음은 반대로 집으로 도망치고 있고, 내 몸은 병원을 향해서 뛰어갔다.
 병원이 다가올수록 심장이 더 빨리 뛰었다.
 
 
 이러한 루틴을 반복하며 출근하였고,
 나는 퇴사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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