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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승일 Oct 13. 2016

국가 폭력 도구로서의 회고(1)

1999년 4월에 나는 입대를 하게 되었다.


6주 기초훈련 마친 후


나는 전투경찰(일명: 전경)으로

국방부에서 내무부(현 행자부)로

인원  차출이 된 것이다.


참고로 사실 전경은 '해안경비'를 주업무인데,

전두환 대통령 때,  그 주업무가 '시위진압'으로

변질 되었다.


그래서 '전경'으로 차출되었을 때

두려움이 앞섰다.


당시 2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갔기에,

이미 '전경'으로 복무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이야기를 들은바가 있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거기다가 평생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전라북도의 정읍에 전경대로 배속되었다.


드디어 훈련소를 떠나는 날,

그때에 떨림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렇게 전라북도로 가게 되었다.


참고로 전경/의경도 기초 훈련을 마치면

경찰학교를 가서 육군처럼 주특기 훈련을

4주동안 한다.


전의경 사이에서 경찰학교는 천국같은 곳이다.

말그대로 학교다.


그러나 나왜 내 동기들은

경찰학교를 가지 못했다.


당시 IMF 이후라 입대인원이 많아

경찰학교도 정원을 넘친 관계로

갈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전북의 전경대로 가서 2주 훈련 받고,

자대가서 다시 2주 훈련을 받았다.


국가폭력의 도구로서 키워짐과 폭력은

그곳 전주의 전경대부터 시작 되었다.


그 전경대는 예전에

'백골단' 이었던 곳 이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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