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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진 Dec 03. 2021

16. 목포 근대역사관(2관)

구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植株式會社)





16. 목포 근대역사관(2관)

구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植株式會社)



1900년대 파란만장했던 격동의 시대에 기쁨과 슬픔, 그리고 아픔으로 가득했던 목포는 그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1897년 개항이후, 목포는 항구도시와 산업도시로서 큰 부흥을 이루었고 일본인들은 이를 조선침략의 전진기지로 이용했지요. 특히 풍요로운 호남지방의 곡식들을 한 곳으로 모아 배로 수송할 수 있었기에 목포는 일본인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조선농민의 곡식들을 효율적으로 수탈하고 관리하기 위해 1921년 '동양척식주식회사'라는 기관을 만들었으며 명실공히 일제 식민정책의 선봉기관이자, 조선의 농민수탈기관이며 식민지 지배정책의 첨병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1929년 고질적인 대공황과 이후 2차 세계대전으로 발발하게 되는 전쟁을 준비하느라 일본 민중의 형편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일제의 정치부는 조선으로 부터 수탈한 곡식으로 일본 자국내 민생구휼과 전쟁을 위한 군량미로 쓰이게끔 합니다.

그들의 수탈이 얼마나 지독했는지 소작농의 소작료마저 착복을 하고, 형편이 어려운 농민들에게는 고리까지 놓아 불어난 이자를 갚지 못하면 노예로 팔아버리기까지 하는 등, 그 수법이 아주 악랄했습니다.

지난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된 저도 두 주먹이 불끈 쥐어지는데, 당시 수탈을 당한 민중들의 가슴에는 얼마나 큰 불이 일어났을까요. 견디다 못한 독립운동가들과 농민들은 그들의 횡포에 맞서 싸우게 됩니다.


조선 농민의 수탈기관이었던 동양척식주식회사는 현재 '목포 근대역사관 2관'으로 명칭이 바뀌고 내부에는 일제 강점기에 있었던 역사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1920년대의 목포의 거리와 건물, 생활을 알 수 있는 사진들이 전시되어있고, 민족 독립의 역사스토리와 여러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들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또, 목포 근대역사관의 외형 또한 1920년대 공공시설물로는 이 지역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곳으로 후기 르네상스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일본을 상징하는 모양이 여러곳에 새겨져 있어서 제국주의 사상을 건축물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당한 고초를 생각하면 당장에라도 허물고 싶은 마음이야 들지만, 근대역사관은 현재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그 가치가 높은 건축물이기에 뼈아픈 역사를 받아들이고 그 시기를 잊지않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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