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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지숙 Sep 07. 2023

항공비에서 손해보고 방은 최악이고

2023. 3. 31

항공권을 일찍 끊으면 싸다고 해서 일찌감치 에어프랑스 항공권을 끊었더니 이게 웬일. 대한항공이 프라하 직행 항공을 재개했다는 소식이 단톡에 올라왔다. 못산다. 에어프랑스는 경유하는 항공이고, 대한항공은 직행 항공. 가격도 엄청나게 싸게 나왔다. 벌레 몇 마리 잡아먹으려고 먼저 일어나는 새는 다른 새의 먹이가 되거나 뒤통수를 맞는다. 취소 수수료가 30만 원. 예약료 3만원. 졸지에 33만 원을 날리게 생겼지만 고민해봐야 머리만 아프다. 에어프랑스 들어가서 취소하고 대한항공 끊었다. 

항공권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30여만 원 손해 봤으니 체코 데친에 있는 숙소에서 방은 좀 저렴한 것으로 골라 여행비를 맞추기로 했다. 1100, 1000, 900유로는 화장실이 있고 750유로는 화장실이 없단다. 나는 900유로 방을 선택했다.

숙소와 항공권을 정하고 나자 여행 준비는 다한 것 같았다. 짐은 최소한으로 줄였다. 20인치 캐리어에 갈아입을 옷 한 벌씩과 속옷, 지병으로 먹는 약, 쌀과 고추장과 김을 챙겨넣었다. 혹 계단을 만나더라도 부담없는 무게다. 짐에 치이는 만큼 여행의 퀄리티는 떨어지는 법.  

어제 서울로 와서 게스트하우스에서 자고 아침에 인천공항으로 와서 ‘동유럽 한달살기’의 일행을 만났다. 엄밀히 따지면 사실 고 감독이 여행 제목으로 뽑은 ‘동유럽 한달살기’는 어폐가 있다. 우리가 묵게 될 곳은 체코 북쪽에 있는 숙소이고, 열흘간 패키지로 돌면서 하루이틀씩 묵는다 해봐야 서너 나라밖에 안 된다. 그러니 ‘동유럽 한달살기’가 아니라 ‘체코와 독일의 접경지대에서 한달살기’가 돼야 할 것이다. 아무튼.

‘동유럽 한달살기’ 제목으로 인천공항으로 모여든 사람들을 만났다. 인상을 보니 끝까지 어색할 것 같은 표정으로 굳어있는 사람, 화들짝 예의를 지키며 인사하는 사람, 여행의 설렘에 혼자 자족하며 싱글벙글인 사람… 한 달이 짧지 않은데 구성원끼리 ‘따로 또 같이’가 조화롭게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한 시간 가까이 늦게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오후 네 시에 프라하 공항에 도착했다. 가는 동안 H와 중간자리를 비우고 나란히 앉아갔다. S는 약간 뒤쪽에 앉았다. H와는 모임을 같이하지만 잘 몰랐던 성격을 비행기 내에서 알게 됐다고 할까. 일단 뚱하지 않고 잘 웃어서 좋다. 같이 웃고 떠드느라 지루한 시간을 달랠 수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내 앞에 어떤 상황이 기다리고 있을 줄.

900유로짜리 방은 한마디로 최악이었다. 1000유로짜리 H의 방과 비교하면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 아니, 100유로면 15만 원 정도인데 한 달에 15만원 차이 나는 방을 어떻게 그렇게 차이 나게 주는지 숙소주인(이자 우리 열흘간의 패키지를 이끌 가이드)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1000유로짜리 방에는 한달살이를 할 수 있게 싱크대도 있고 너른 침대도 있고 냉장고도 있었는데, 크기가 반밖에 안되는 900유로짜리 내 방에는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750유로짜리 방하고 똑같은데 세면대 대신 화장실이 있는 게 달랐다. 심지어 침대는 가로 길이가 90센티. 나는 밤에 통증 때문에 몸부림을 심하게 치는 편이고, 골다공증이 엄청 심해 크기가 넓은 침대를 써야 하는데 이 작은 침대에서 불안해서 어떻게 자나, 밤마다 잘 일이 걱정이었다. 

주인장인 마담K에게 이야기하자 쉿쉿거리며 이 문제를 덮어두려고 했다. 나중에 자기가 다 알아서 배려하겠다고, 보상을 하겠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말하는 투가 이 순간만 피하자는 느낌이 들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 문제를 항의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영 뒷자리에서 나는 이 문제를 다시 꺼냈고, 이야기하다 보니 다소 격한 어조로 따지게 되었다. 환영 뒷자리에 앉은 다른 사람들에게 본의 아니게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지만, 그 사실을 의식하면서도 나는 방 문제를 그따위로 처리한 건 사기에 가깝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두 방을 갔다가 온 S는 H의 방 보니까 열 내는 이유를 알겠다고 했다. 

다소 분위기가 진정되고 와인이 들어가면서 수다로 이야기판이 흘러가는 가운데 숙소 주인이 내가 잘 아는 소설가 N의 이야기를 꺼냈고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N을 시작으로 이야기하다 보니 이래저래 인연들이 얽히는 인간관계가 풀어지고… 일단 방 문제는 흐지부지됐지만, 나는 숙소주인이 방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지켜보기로 했다. 

술자리에서 일어나 2층 숙소로 올라오면서 기분이 우울했다. 씻고 자리에 누웠는데 역시나 침대는 너무나 좁았고 너무나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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