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자궁이란
보름 넘게 생리도 아닌데 하혈을 했다. 상황이 이러니 기운도 없고 어지럽고 피부는 헐고… 병원에서는 처음에는 염증 때문이라고 했는데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피의 양이 늘자 초음파를 다시 했다. 일주일 가량되는 사이 피주머니 같이 고인 덩어리 같은 게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반 사람의 자궁벽은 두꺼워도 1.6cm 정도인데 지금 나는 2.3cm는 족히 된다면서 조직검사와 긁어내는 소파술을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평소에도 자궁에 문제가 많아 산부인과는 나의 친구였다. 다들 굴욕 의자라고 하지만 나는 그 의자마저 너무나 익숙했고 오히려 남자 선생님들이 더 잘 봐주시고 부드럽게 대해주신다는 걸-물론 사람 나름이지만 확률상-알게 되어서 남자 선생님을 선호한다.
아무튼 덜컥 겁이 났지만 너무나 오래 진행된 하혈에 나도 지칠 대로 지쳐서 이걸 끝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다음날로 예약을 하고 다음날 아침 자궁문이 열리게 하는 약을 7시 반에 먹고 8시 50분까지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에서 별 것 아닌 것처럼 말하는 것은 별 것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난 별 것 아닌 것처럼 말씀하셔서 그냥 수면내시경 정도로 생각을 하고 검사실로 들어갔다.
평소에도 혈관이 잘 안 보여 그때까지만 해도 나의 가장 큰 걱정은 간호사 분이 제발 한 번에 혈관을 찾아주시길...이었다. 얼마나 인간은 한 치 앞도 모르는 무기력한 존재인가. 혈관은 다행히 한 번에 찾아 주셨고 수면마취인 줄 알았던 것과 달리 그냥 일반 마취였다. 그런데 완전히 잠드는 게 아닌 반 마취 같은? 마취약이 들어오고 크게 숨을 쉬라고 하시며 자궁에 엄청난 통증이 밀려왔다. 난 너무 아프다고 했고 조금만 기다려 보라고 하시며 약을 좀 더 투입하셨다. 그래도 너무나 뻐끈하고 아파서 참을 수 없어 고통을 호소하니 선생님은 이제 아픈 게 다 끝났다고 걱정 말라고 하셨다.
천장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고 몽롱한 가운데 너무 아프다 라는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인간은 육체의 고통에 얼마나 본능적인가. 내겐 고통만이 선명하고 영롱할 정도로 남아 있었고 간호사님이 갑자기 어느 순간 날 깨웠다. 어느새 시술은 끝나 있었고 속옷도 입혀져 있었다. 순간 속이 엄청나게 메슥거리며 토할 것 같았다. 난 토할 것 같다고 했고 토할 수 있는 스테인리스 그릇?을 주셔서 결국 토하고 말았다. 어지럽고 메슥거리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간호사님이 놔준 진통제를 맞고 부축을 받으며 회복실로 이동했는데 침대에 눕자마자 배에서 엄청난 통증이 몰려왔다.
너무 아파요...! 란 나의 말에 진통제 기운이 곧 돌 거라고 조금만 참으라고 하시고 간호사님은 나가셨다. 난 병원용 침대에서 혼자 데굴데굴 구르며 파도처럼 덮쳐오는 고통을 고스란히 맞았다. 다 긁어냈으니 자궁이 얼마나 아플까. 미안해. 이렇게 아프게 해서. 정말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통증이었다. 도대체 망할 진통제는 언제 효과를 발휘하는 거야. 간호사님이 다시 들어오셨길래 진통제 한 대만 더 놔달라고 너무 아프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내 고통은 나의 것. 이를 악 물고 고통을 느꼈다. 아프다는 생각밖에 아무것도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육체적 고통을 느낄 때 인간은 가장 스스로 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만큼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고 절실히 집중하는 때가 또 있을까.
어느새 고통이 서서히 잦아들고 있었다. 배의 통증보다 손등에 맞은 링거 바늘의 통증의 크기가 점점 더 크게 느껴지자 난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분명 일상생활 가능한 정도의 시술이라고 하셨는데 치질 수술처럼 또 속고 말았다. 뭐 일상생활이 가능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전 아니네요. 링거를 다 맞고 좀비처럼 집에 오는 길에 설렁탕을 한 그릇 먹고 집에 와서 약을 먹은 후 죽은 듯이 잤다.
아무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세상에 아무 일도 아닌 일은 역시 없었다. 특히 병원 관련해서는. 결국 하루 종일 생리통 비슷한 통증에 시달리며 자다 일어났다 다음날까지 하루를 그렇게 보냈다. 거울을 보니 한결 늙은 내가 있었다. 고생했어.
살면서 아기를 낳을지 안 낳을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겠지만 어머니는 네가 너무 힘들면 속 썩이는 자궁을 차라리 적출하라고까지 말씀하셨다. 내가 하도 고생하는 걸 봐서 안타까움에 하신 말이겠지. 그래도 막상 그런 말을 들으니 서운하더라. 여자에게 자궁이란. 나에게 자궁이란. 왜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할까. 하긴 너도 힘들어서 그런 거겠지. 아무튼 아기를 낳은 모든 사람들이 위대하게 느껴졌다. 이보다 더한 고통을 견디다니.
아무튼 그래서 요양 중입니다. 생각보다 몸 전체 데미지가 크네요. 결과가 나쁘지 않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