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약을 끊어야 할 텐데…“
말 끝을 흐리는 엄마의 걱정스러운 마음을 알지만, 한 편으로는 나를 약 먹는 중독자로 보는 시선이 싫다.
“다른 것도 아니고 정신과 약을 계속 그렇게 먹으면… 이미 넌 중독이야.”
아. 염려하던 단어가 바로 나온다. 중독.
“그래, 난 이미 중독이야.”
지갑은 잊어버리고 놓고 나가도 정신과 약만은 꼭 챙기는, 안 먹고 잠들리라 하다가 결국 새벽 세 네시에 참담한 패배자의 기분으로 수면유도제를 먹고 마는. 그리고 다음날 오전까지 잠에 취해 헤롱거리는.
“그래도 많이 약의 세기는 줄였어. 의사 선생님도 약을 줄이자는 쪽이라서.”
조금이나마 엄마에게 위로가 될까 덧붙여본다. 엄마 딸이 정신과약 왕중독자는 아니에요 라는 의미로.
“그래, 줄여가야지… 약을 먹지 말고 잠이 안 오면 그냥 잠을 자지 말아 봐.”
엄마는 걱정이 많이 되나 보다. 저라고 안 해봤겠어요. 그렇게 약 안 먹고 지새운 밤만 모아도 고양이수염 한 터럭입니다. 잠이 안 오면 그냥 안 오나요. 온갖 수상한 생각들이 둥실둥실 떠오르기 시작해요. 후회되고 아팠던 시간들이 나를 찔러요. 어리석고 무디기만 한 기억들이 나를 짓눌러요. 조금의 빛나던 소중했던 추억들이 부서져 내려요.
늙어버리는 기분이에요. 아침이 되면 한 노파가 거울에 서 있을까 두렵고 무섭도록 지쳐버려요.
그런 말을 다 할 수는 없다. 그냥 약을 안 먹고 못 자면 온갖 생각이 나서 힘들다고 했다. 엄마는 그렇지 밤 새 기와집을 열 번도 지었다 부셨다하게되지라고 맞장구 쳐 준다.
나도 궁금해진다. 약을 끊을 수 있는 날이 정말 올까? 싸우지 않기로 한 후로는 증상이 느껴지면 바로 약을 먹고 있다. 전보다는 덜 먹는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예약날이 돌아오니 거의 다 먹어 약이 간당간당하게 남았다. 이런저런 고민 계산하면 뭐 하나. 오늘도 취침 전 약을 입에 털어 넣고 방 천장 벽지의 반짝이를 바라보며 저게 정말 하늘의 은하수라면… 이런 상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