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살아야 하나 결국.
아이를 낳으면 예술을 했으면 했다. 한 없는 창작의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는. 보는 사람에게 끝없는 영감이자 삶을 끝자락에서 그걸 잡고 한 번쯤은 위로받을 수 있는 결과물을 창조해 낼 수 있는. 수익과 현실적인 괴로움에서 벗어나 온전한 창조만을 할 수 있는 예술적 환경을 조성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안다. 영화를 보며 다시 한번 깨닫는다. 결국 예술이란 산고와 같은 것을. 죽을 듯한 고통과 인내의 세월을 지내야 낳을 수 있는 자식과 같은 존재란 것을. 그것을 낳는 끝없는 산고의 연속이 예술이란 것을.
그리고 인간의 순간의 연민 내지 동질감이라는 것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것임을. 그래서 살아야 하는 것임을. 내가 마지막 순간 내민 손짓하나에 죽어가던 삶이 하나 살아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 반대일 수도 있고. 기역기역 삶을 살아내야 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내가 유대인이었고 그 독일인이 내게 묻는다면. 전쟁이 끝나면 무얼 할 것인가. 그는 다시 연주를 하겠다고 했고 그 연주가 그를 살렸다. 나는 무엇을 하겠다고 하고 무엇이 날 살릴 수가 있을까. (이럴 땐 초6학년 때 피아노를 전공하라고 하셨던 선생님과 대학교 1학년때 의상디자인과로 오라고 하셨던 교수님이 생각난다..)
예술은 온순하고 안락한 환경에서 결코 좋은 성과물을 내기는 힘든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만약 나에게 자녀가 있고 그 아이가 안락한 환경에서 좋은 창작물만을 창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예술은 상대방의 상처에서 나는 고름을 핥으면서 흘리는 눈물이란 것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