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공녀

by Jude

너무너무 춥다고 하는 날.

나가기 싫어서 미적거리던 늦은 오후 시간.

수많은 채널을 넘기다 영화 소공녀를 보았다.

전에도 한 번 얼핏 봤던 것 같은데 이번에 보니 왠지 생각이 많아졌다.


극 중 한 명의 이름이 나와 같은 것에도 깜짝 놀랐고 보다 보니 끝날 때까지 자릴 뜨질 못하고 꼬박 봐버렸다. 요즘 유튜브에 찌들어 두 시간짜리 영화가 힘겨운 나에게 의외의 시간이었다.


주인공 미소는 극 중 주변인들이 말하는 소위 바람이 들었다고도 볼 수 있고 염치가 없게도 보일 수 있다. 아니, 보일 수 있는 게 아니라 그렇다고 해야겠지. 자기가 살 월세 돈을 포기하고 자신의 기호품인 담배와 위스키를 포기 못한다. 다들 어른이 되어 어찌어찌 고통과 현실의 고생과 살아가는데 견뎌가는데 미소는 아직 어린애 그 자체다. 좋게 말하면 자신의 모습 그대로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살아가는데 현실적으로 말하면 자기를 위한 방 한 칸 조차 없는 한심하고 나약한 어른이다. 공중화장실에서 머리를 감고 말리는 그녀의 모습은 애잔하기보다는 추하기까지 하다.


그녀의 남자친구는 결국 웹툰작가의 꿈을 접고 그녀와의 미래를 약속하며 사우디아라비아로 일하러 떠나지만 사실상 이제 그녀에게 그는 더 이상 꿈꾸는 청년이 아닌 열정도 꿈도 없는 늙어가는 하나의 남자일 뿐이다. 결국 영화 말미에 그녀는 핸드폰요금을 내기 힘들어 전화기가 끊긴 것으로 나오지만 그녀가 자신의 세계를 비키기 위해 예전 밴드 멤버를 손절한 것인지 정말 돈이 없어 핸드폰이 끊긴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장례식장에서 청첩장을 돌리는 모습을 보며 찡그려지는 내 미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미 그 정도의 사이가 되어버린 그들. 미소는 뭘 기대했던 걸까. 미소에게 공감하기도 하며 미소를 내치는 상대방에게 공감하기도 하며 영화 내내 머리가 복잡했다.


미소의 모습에서 지금의 내 모습이 자꾸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월세로 아파트에 살고 있는 내게 언니는 늘 넌 덜 배가 고프다. 그 월세를 내고 살 거면 차라리 더 싼 빌라로 가거나 엄마네로 들어가는 게 현실적이라고 말하는 언니의 말에 늘 말문이 막히고 만다. 그래도 나는 나답게 살고 싶어서. 그런데 나답게 사는 건 과연 무엇일까. 이렇게 살다 나만의 풍미를 즐기려다 아무 대책 없이 흉물스럽게 늙어버리면 어쩌라고. 그래도 난 그게 나라고 할 수 있을까.


영화 소공녀를 보니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란 일본 영화도 오버랩되었다. 사랑받고 싶었던 여자. 사랑만이 자신의 삶이자 이유였던 마츠코. 그러나 누구보다 추하고 한심하게 늙고 허무하게 죽어버렸다. 가장 다시 일어나고 싶었던 순간에. 하지만 감히 누가 누구의 삶을 판단하고 평가할 수 있을까. 내 장례식은 치러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딘가에 아무 이름 없이 그렇게 사라지면 좋겠다. 잠시나마 짧게나마 날 기억하는 이가 ‘걔는 참 엉뚱한 면이 있었어.’ 이런 식의 언급조차 안 하고 그저 사라졌으면 좋겠다.


미소에게 작은 위로조차 되지 않았던 주변인들과 단 하룻밤조차 편히 지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지 못한 채 오히려 미소에게 위안받기도 하고 멸시하기도 하고 도구로 보던 이들. 내 삶이 내 죽음이 그런 사람들로 채워진다면 너무 슬플 것 같다.


물질적인 성공이나 기반이 없으면 염치가 없는 세상. 그래도 집은 있어야지!!라는 지인의 대답에 웃음이 나오면서도 슬픈 나이. 내가 나로 살기 위해선 물질적인 바탕이 되어야 하는 인생. 그래서 그렇게 자기 집에 발 뻗을 곳 없는 삶들이 슬프고 고단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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