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루스츠 스키 여행기 2

혼자? 오히려 좋아

by Jude

나름의 각오를 하고 갔다. 전남편과 언니네 커플과 갔었던 루스츠. 그때 언니네 커플은 정말 처음 스키를 타 본 사람들이었고 오 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최상급 코스도 타고 내려올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다. 나는 그나마 겨우 하던 에이턴조차 엉망진창이 되었지.


전남편은 보드에 미쳐있었다. 함께 상급코스를 타고 싶어서 날 끌고 올라갔지만 난 결국 구르고 구르다 스키를 벗고 내려왔다. 그런데 이번엔 같이 간 이들의 응원 덕분에 다섯 번 넘게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나 스키를 벗지 않고 내려왔다. 내려와서 내가 내려왔던 슬로프를 보니 까마득해 보였다. 그래도 내가 혼자 해냈구나. 드디어 해냈어.


절대 극복하지 못한 채 마음의 돌덩이처럼 남아 있던 무언가가 쑥 내려간 듯했다. 내 다리를 붙잡고 있던 질척 질척한 젖은 솜들이 눈처럼 녹아 사라진 듯했다. 이제 내게 루스츠는 전남편과 갔던 스키장이란 생각은 중요하지 않아 졌다. 내가 모든 레드코스를 에이자로 정복한 역사적 스키장이 된 것이다. 누구의 도움 없이 오직 내 몸뚱아리 하나와 두 발로. 내가 이뤄낸 작은 쾌거라고나 할까. 2024년 1월 29일은 나의 독립기념일이 되었다.


이제 너 없이 하나하나 해내고 있다. 아니 이런 생각도 중요하지 않다. 내가 해야만 하고 내가 하고 싶다. 넘어져서 바퀴벌레같이 바둥거리고 못 일어날 때는 도움을 요청하자. 그것도 용이하지 않을 땐 그냥 좀 쉬다 스키를 벗고 다시 신으면 된다.


올해 안에 11자 턴을 꼭 해내고 싶다. 언제까지 나의 허벅지를 혹사시킬 것인가. 조금 쉴 시간을 주자. 그리고 아름답고 여유로운 호를 그리며 설원을 내려오자. 한국에 와서 스키레슨을 다니고 싶다고 하자 셋째 언니가 스키레슨 강습비를 주겠다고 했다. 마음은 고맙지만 받지 않겠다고 했다. 도움은 넘어졌을 때 정말 이거 혼자 안 되네 할 때 요청하자. 누군가의 선의와 호의에 기대어 살지 말자. 전에는 누군가를 의지하고 사는 것이 나 나름대로의 애정을 확인하는 과정이고 사랑받는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이제야 확실히 느낀다.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는 것이 이렇게 자유롭고 가벼운 느낌이란 것을.


그동안 온갖 것들을 끌고 다니며 정작 혼자서는 무서워하는 나를 본다.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지나치게 신경 쓰고 배려하고 미움받을까 전전긍긍하고. 그런 감정과 시선들은 그 슬로프를 내려가는 순간 지나쳐버리는 것들이다. 슬로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단 한 가지다. 슬로프를 내려가고 있는 나. 좀 더 실력을 연마해서 실력이 좋아질수록 아름다운 경치도 볼 수 있고 즐겁게 즐기며 슬로프를 내려오는 내가 되고 싶다. 내려온 길에 아름다운 라인을 남기며 ”진짜 재밌었다!! “라고 조금의 망설임 없이 웃으며 외치자.


아프다고 말하지 말자. 아무도 나의 아픔에 관심이 없다. 알아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하지도 말자. 내가 알아주지 않는가. 내가 아픈 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날 진정 가장 위로해 주고 보듬어 줄 수 있는 건 나뿐이다. 정말 많이 아프면 병원에 가면 되고. 혼자여서 즐겁다. 마음이 새털처럼 가벼워졌다. 인생은 혼자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이제야 조금 아주 조금 알 것 같다. 인생은 혼자라는 말은 고독하거나 시니컬한 의미가 아니다. 정말 이 모든 삶 자체가 오직 본인 하나에게 달려있다는 것이다. 신이 인간을 만들고 주었던 가장 큰 선물. 신조차 터치할 수 없는 고결하고 완벽한 힘. 그건 바로 자유의지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을 수 있었던 자유의지. 그리고 거기에 따라오는 결과 내지는 책임. 그 모두 본인의 것이다. 얼마나 멋진가. 삶은 자신이 실컷 자유를 누리고 그 결과를 누리는 것이다. 과정을 즐기고 모든 관계나 상황이나 환경에서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멋진 호를 그려보자. 나만의 자유를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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