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가 시작됐다

대자연의 난리부르스

by Jude

어제부터 배가 묘하게 기분 나쁘게 아프더라니. 느낌이 왠지 싸해서 혹시나 몰라 준비를 하고 친구를 만나러 갔다. 분명 기온이 많이 낮다고는 안 했는데 으슬으슬한 날카로운 한기가 자꾸 몸에 스며들었다.


맛있는 식사를 하고 즐거운 대화 끝에 도착한 커피집에서 드디어 날 기분 나쁘게 했던 그 확연한 정체를 만날 수 있었다. 생리가 시작됐다. 이번 달은 3일이나 당겨졌구나. 사람마다 다르지만 난 생리통이나 관련증후군이 심한 편이다. 며칠 전부터 식욕이 폭발해서 생리하려나 하면서 와구와구 자신의 식욕을 합리화하며 온갖 군것질을 섭렵했건만 그게 사실이었을 줄이야.


온몸이 으슬으슬 아프다. 일단 하체-다리 쪽은 전부 저릿저릿해서 가만있어도 고통스럽다. 배는 기분 나쁘게 돌아가면서 살살 꼬이고 있고. 진통제를 한 알 먹고는 털잠바에 극세사 이불까지 덮은 후 약 기운이 돌길 바라며 이 글을 쓴다.


첫 월경은 중학교 1학년쯤으로 기억한다. 우리 집은 여초가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시대상과 여자라서 죄송해요 분위기의 우리 집에서 생리의 ‘생’자도 꺼내는 것은 매우 불경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난 왜 그런 애였을까. 난 처음부터 생리가 부끄럽지 않았다. 그저 재채기하고 대소변 같은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이라는 생각이 어릴 때부터 있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청소년기에만 해도 약국이나 슈퍼에서 생리대를 사면 까만 봉지에 담아 한 번 더 다른 봉지에 넣어주시곤 했다. 그땐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첫 생리를 시작하고 엄마에게 생리를 시작한 거 같다 생리대를 달라고 하자 엄마는 굉장히 당황하면서 슬픈 표정을 지었다. 너도 이제 고단한 여정에 들어섰구나 그런 느낌으로 날 바라보곤 엄마는 나가서 날 위해 생리대를 사 왔다. 그 생리대 이름이 아직도 잊히질 않는다. 미라젤. 엄마는 같은 여자끼리도 굉장히 민망해하며 나에게 던지듯 주고는 돌아섰다. 미라젤은 정말 놀라운 생리대였다. 흡수력이 하나도 없는 비닐 같은 소재였다. 부스럭거리기는 얼마나 시끄럽던지. 자신의 본분을 하나도 모르는 미라젤이었다. (과거 미라젤업체 관계자분이 보신다면 죄송하지만) 미라젤의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음부터 직접 나의 생리대를 사기로 했다. 난 예민한 피부의 소유자이기에 순면 소재느낌의 생리대를 찾아 신중구매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미처 준비하지 않은 상황에서 생리대가 없어서 언니들에게 “생리대 있어? 하나만.”이라고 물어본 날의 언니들 표정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언니들은 ‘넌 창피한 줄도 모르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며 날 타박하고 난리였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언니들이 생리를 하는지 안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마치 닌자들처럼 생리를 숨기고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니는 책상 마지막 서랍구석에서 생리대를 꺼내어 나에게 주었다. 난 온갖 구박을 당했다.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철딱서니가 없다 여자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 등 등…

그런데 우스운 건 그 뒤로 우리 집에서 생리대가 더 이상 금기어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구석에 숨겨놓았던 생리대도 좀 더 밝은 곳으로 나오게 되었고 생리라는 말에 대한 거부감도 많이 줄어들었다.


난 지금도 생리대가 칫솔이랑 비슷한 개념이란 생각을 한다. 내 몸에 관련된 위생용품인 것이다. 물론 ‘저 생리해요!!! 생리대 갈러 가는 중입니다!!!‘ 외칠 요량으로 생리대를 흔들며 화장실을 갈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보여서 불경한 물건 취급을 받는 건 건강하지 못한 생각이란 뜻이다.


지금도 내 자궁은 아기를 만들 꿈을 꾸며 한 달가량을 기다렸는데 아기는 오지 않았구나. 360번이 넘는 생리를 하면서 대자연은 아기를 위한 방을 꾸미고 좌절해서 무너트리고 그래도 다시 또 다음을 기대하고 있다. 꼼짝도 못 할 것 같이 온몸이 물 먹은 솜 상태지만 나에게 이제 몇 번이나 남았을지 모를 대자연의 난리부르스를 오늘은 좀 보듬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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