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증후군

어느덧 명절 마지막 날

by Jude

이혼 후 가장 만족하는 건 명절에 대한 부담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결혼 시절에는 명절이 다가오면 정말 한 달 전부터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기 시작했다. 명절 전 날 오전에는 친정에 가서 음식을 하고 다음날 아침 상을 차릴 준비를 하기 위해 오후에는 장을 봤다. 시어머니가 따로 사셔서 시어머니댁에도 잠시 들리고 그날 저녁이나 명절 당일 저녁에는 시댁 모임이 있곤 했다.


명절 당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장 봐놨던 음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시댁에 도착해서 차례예배를 드리고 호다다닥 아침을 차려서 먹곤 상을 치우고 큰 집을 향해 출발. 포천 큰 집에 도착해서 시댁 큰 집의 제일 큰 아버지댁에 들려 인사드리고 둘째 큰아버지 댁에 가서 할아버지 산소 들렸다 내려와선 (헥헥) 20명가량의 음식 차리기와 설거지는 내 차지였다. 큰 집 며느리들은 아기들이 있어 잘 오지 않거나 와도 아기들을 봐야 해서 아기가 없는 내가 가장 만만한 재원이었던 것이다.


어찌어찌 상을 치우고 커피와 과일을 차려드리고 설거지를 끝내고 자리에 앉으면 다들 모르는 얼굴들. 일 년에 한두 번 뵈기는 하나 단지 내가 이 사람을 남편으로 받아들인 이유로 생판 모르던 사람들과 명절날을 고스란히 함께 보내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왜 나만 일해야 해하는 얼굴로 있을 수는 없으니 예의상 방실방실 웃고 있으면 그나마 아는 척해주시는 말이 “왜 아직 아기는 없냐” , “볼 때마다 살이 찐다.” 는 식의 반갑지 않은 까스라운 말들이었다.


명절날 가장 행복한 사람은 시할머님이셨다. 그곳에서만큼은 자신이 가장 큰 어른이자 살아있는 거목인 듯 대접을 받으셨으니 말이다. 그런 할머님의 마음을 모르지 않아 명절날 며칠전마다 비록 비싼 옷은 아니지만 그래도 예쁜 옷을 하나씩 선물해 드리곤 했었다. 그렇게 좋아하시는 자리 고운 옷 입고 사람들 있는 자리 주인공으로 가시라고.


그렇게 시계가 오후 세 시, 네 시가 되면 드디어 큰 집을 떠날 수 있었다. 시누이네집에 모이는 날엔 시할머님과 시아버님을 데려다 드리고 안 모이는 날엔 시댁에 두 분을 내려드리고 난 친정에 갈 수 있었다. 친정에 도착하면 저녁 9시 정도 되어서 이미 친정 쪽 언니나 사촌들은 가고 없거나 가는 길에 마주쳐 잘 가란 인사 정도를 나눌 수 있었다. 친정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30분 정도 남짓되었다. 친정에 머문 짧은 시간의 아쉬움을 느낄 여유도 없이 너무나 피곤하고 지쳐 집으로 가는 길에 드는 생각은 다음 명절날 이 짓을 또 어떻게 하나 하는 지긋지긋함 뿐이었다. 빨리 애를 가져서 애 핑계로 안 가야 하나 무슨 방법이 없나 복잡한 머릿속과 반대로 입은 열 힘도 없어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로 집에 도착해 뻗곤 했다.


이번에도 설을 앞두고 시댁에 가서 차례상을 차리고 자고 와야 하는 친한 언니의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들으며 “언니에겐 지금 이런 말 해서 미안하지만 나 진짜 명절 때만큼은 이혼하길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라고 말해버렸다.


명절이 되면 엄마네 가서 뒹굴뒹글하면서 언니들이랑 영화 보면서 잡담하고 맛난 것 먹고 술도 한 잔씩하고 이런저런 이야기하다 잠도 실컷 자고 집에 와서 뒹굴렁도 다시 하고 정말 좋다. 명절을 누가 만들어서 이 고생을 하나 이를 갈았었는데 명절이 휴가가 되니 이 달콤함을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물론 혼인이란 것을 하여 상대방의 가족들과 친척들과 좋은 시간을 갖는 것은 당연하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잘 모르는 사이지만 알아가는 기회도 되고. 하지만 그 모임의 유지를 위해 누군가의 노동력을 갈아 넣어야 하거나 누군가의 희생이 당연시되는 구조라면 그건 나쁘다고 생각한다. 명절 나기가 쉽지는 않지만 며느리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여인들도 많으니 뭐 이건 지극히 내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지난날에 대한 넋두리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을 것 같다. 남자 여자에 대해 누가 더 힘들다 억울하다는 식의 유치한 대립구도를 논하고자 함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밝힌다.


자의든 타의든 명절이란 기간에 자신의 시간을 갈아 넣은 모두들 오늘 하루 잘 마무리하고 내일부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힘내서 생활하시길. 남은 시간 충분히 뒹굴뒹글하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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