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킬 업!! 인생은 스킬 업!!
이번 달부터 스케치업이란 프로그램을 배우기 위해 저녁 수업을 듣고 있다. 대학교 때 캐드와 맥스에 하도 치를 떨었어서 3D프로그램에는 담을 쌓고 살았는데 스케치업이란 프로그램은 워낙 쉽고 무게가 그리 무겁지 않아 수정도 편리해 요즘 많이 쓰인다고 하길래 스킬업을 위해 신청하게 되었다.
수업은 저녁 8:30분 시작 10시에 끝나는데 좁은 강의실에 15명 정도 되는 인원의 열기가 아주 뜨겁다. 컴퓨터 본체의 열기인지는 모르나 항상 강의실 안은 덥다. 처음에는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두려움과 패배의식이 날 잠식했지만 막상 배워보니 일러스트와 포토샵의 구성과 비슷한 구석이 많아서 왠지 친근하게 느껴졌다. 정말 직감적으로 사용하기 쉽게 잘 만든 프로그램이란 생각이 배울수록 들고 있다. 재밌기도 재미있고. 내가 가장 노령의 학생일 줄 알았는데 웬걸. 흰머리 지긋하신 남자분과 우리 큰 언니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여자분도 계셨다. 그리고 정말 누구보다 열심히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노력하고 성실하게 수업에 참여하고 계신다.
수업 삼일차에 들어서니 곧잘 따라가던 나도 버벅거리기 시작했다. 머리와 손에 버퍼링이 생기면서 분명 엔터를 쳤는데 엉뚱한 결과물이 화면에 나타나 있거나 아무 변화도 없거나 하는 일이 생기곤 했다. 그럴 때면 역시 선생님이 최고다. “선생님…”이라고 하면서 손을 소심하게 반쯤 들면 바로 오셔서 뚝딱 원인을 찾아주신다. 신기하다. 볼 때마다 신기하다. 분명 나도 그렇게 했는데 왜 내가 할 땐 안 되고 선생님이 와서 해 주시면 될까. 선생님을 향한 존경심과 충성심이 무럭무럭 맘 속에서 자라고 있다.
같은 반 젊은 친구들을 보면 확실히 손도 빠르고 이해도 빠르다. 같은 예제를 주면 뚝딱 해놓고 시간이 남아 지루해한다. 덕분에 나의 머리와 손은 더욱 바빠진다. 다다다닥 들리는 키보드 소리와 함께 급해지는 내 마음. 으악. 잘 못 눌렀다. 되돌리기를 하면서 울고 싶어 진다.
그제는 좀 웃긴 일이 있었다. 나는 종종 엉뚱한 포인트에 웃음이 터질 때가 있는데 그날이 그런 날이었다. 내 옆에 앉은 젊은 여학생을 의도치 않게 관찰하기 시작한 게 시작이었다. 그 여학생은 끊임없이 물티슈인지 소독솜인지로 틈이 나면 핸드폰을 닦고 있었다. 예제는 휘리릭 금방 금방 끝내고서. 나도 너에게 말 시키지 않을 테니 너도 나에게 말 시키지 마 라는 무언의 오로라를 내뿜고 있어서 난 얌전히 수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그 여학생 옆의 남학생이 과감하게 그 여학생의 오로라를 뚫고 자신이 안 되는 부분을 질문하면서부터였다. 난 그 여학생이 분명 냉정한 목소리로 선생님께 물어보시라 할 줄 알았는데 남학생에게 의외로 잘 알려주고 있었다. 단지 매우 화가 나고 불쾌한 목소리로.
“아니, 아니 그룹을 먼저 지어야죠!!!”
“다시 다 지우세요!! 이거 안 돼요. 새로 만드세요!! “
“아니, 아니!! 전체 선택을 하신 다음에 그룹을 만드셔야죠!!!”
여학생의 너무나 앙칼진 목소리에 그 남학생은 아.. 네네 하면서 진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요즘 내가 빠져있는 드라마에서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교육시키는 장면 같아서 난 웃음을 참느라 내 모니터에 더욱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저럴 거면 그냥 선생님께 물어보라고 하지, 아니 그래도 알려주려는 의지라도 있으니 그게 나은 건가. 둘 다 저래서 어떤 회사에 들어가서 어찌 생활을 할는지 궁금해하다 너무 많이 간 생각을 접고 다시 컴퓨터 안의 3D공간으로 돌아왔다.
학원 주변에는 각종 취업 관련 학원이 많다. 간호학원, 미용학원, 드론학원, 화물차학원… 수업이 끝나는 10시면 각 건물에서 학생들이 쏟아져 나온다. 첫날은 정말 깜짝 놀랐다. 다들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을 줄이야. 젊은 사람들의 그런 모습이 나에게 좋은 자극제가 되고 있다.
예전에는 새로운 뭔가를 배우기 위해 학원에 다니는 일이 무섭지가 않았는데 이번에 학원을 등록하며 자꾸 나이 때문에 쪼그라드는 나를 발견했다. 이 나이에 새삼스럽게 뭘… 이란 생각이 나를 잡아끌면서 지금 하던 거나 그냥 해라는 의식이 지배적이 되었다. 변화가 두렵고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는 것이 설렘보다는 낯섦과 함께 행여 주책스러워 보이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더 나를 작아지게 만들고 그런 선택의 순간에서 뒤돌아서게 만든 것이다. 예전에는 참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았던 나인데… 스케치업을 배우면서 잊고 있었던 배움에 대한 습관이 깨어난 듯하다. 새로운 걸 배울 때의 기쁨, 내가 할 수 있고 알 수 있는 부분이 확장되는 걸 느끼는 즐거움, 그런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까지.
스케치업이 끝나면 그렇게도 미뤄왔던 운동을 다니려고 한다. 탁구나 테니스나 복싱 중에 고민 중이다. 정작 엉뚱한 걸 배울 수도 있지만. 일단 시간에 맞춰 어딜 가야 하는 것이 내겐 굉장한 스트레스였는데-심지어 친구들과의 약속자리라도- 그게 많이 없어진 것 같아 그 사실이 가장 기쁘다. 우울증이 조금은 나아진 거 아닐까 싶은 희망이 든다. 이래서 죽기 전까지 배움을 놓지 말라는 지혜로운 사람들의 조언이 있는가 싶다. 오늘 저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빨리 또 배우고 싶다. 궁금하고 기대된다. 오늘은 비도 오니 선생님께 따끈한 차를 한 잔 사다 드려야지. 난 늘 어떤 수업 때마다 선생님 앞잡이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