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de Mar 28. 2024

횡단보도에서

이별공식

 학원 끝나고 집으로 가는 늦은 시간.

 빨리 눕고 싶은 지친 마음이 걸음을 재촉한다.

 서둘러 서둘러 마음과 맞지 않는 걸음걸이는 허우적거리고 그런 나를 멈추게 하는 도로의 줄무늬를 마주한다.


 변해라 변해. 빨리 푸른빛으로. 건너편의 신호등을 보며 빌어보는 순간은 오조억분의 일 같다. 눈이 시려 잠시 내려다본 발 밑에 누군가의 가방에 걸려 있었던 듯한 찰리브라운. 안타깝게 소중한 누군가의 가방에서 떨어져 이미 여러 명의 나 같은 이의 발 밑에 밟힌 채 웃고 있는 찰리브라운. 널 잃은 이는 네가 가방에서 떨어진 지도 모르고 길을 건너 멀리멀리 걸어가 버렸겠지. 아니면 건너편 버스 정류장의 버스를 보곤 신호가 바뀌자마자 뛰어가버렸을지도 몰라.


 그래도 웃고 있는 찰리브라운. 차갑고 딱딱한 아스팔트에서 그래도 괜찮아.라고 웃고 있다. 그래. 딱 그만큼만 마음을 주자. 널 잃은 이는 네가 없어진 걸 알고 잠시 속상한 후 다른 인형으로 널 대체하고 널 잊어버리는 만큼. 인연의 고리가 끊어진 뒤에 더러운 길바닥에 내팽개쳐져도 난 상관없어라고 웃고 있을 수 있을 만큼. 딱 그만큼만 서로 사랑하고 서로 마음을 주자. 그럼 이별 뒤에 좀 더 단단히 널 잡고 있지 못했던, 늘 곁에 있어 소중함을 잊고 살았던 자신을 후회하지도 않겠지. 헤어진 뒤에 내가 생각보다 훨씬 험한 환경에 던져져도 억울해하거나 원망할 일도 없겠지.


 딱 그만큼만.

 서로의 처지에서 딱 그만큼만.

 마음을 나누자.


 왠지 안쓰러운 마음에 널 사진 찍었지만 신호가 바뀌자마자 길을 건너고 난 씁쓸한 기분이 든다. 결국 그 순간인 것을. 신호가 바뀌면 결국 각자의 길을 걸어가게 되는 것을. 내가 가졌던 안쓰러운 마음조차 가식같이 느껴질 만큼 난 서둘러 집에 온다. 아직도 밤에는 공기가 차갑다. 마음을 굳게 먹으려 생각해 보지만 욱씬욱씬 온몸이 아파온다. 몸살기운인 건지. 성장통인 건지. 도시에서 나는 홀로 아프다.


작가의 이전글 언니가 그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