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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e May 14. 2024

대기업 하청으로 일한다는 것2

 나는 워라밸을 중요시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게 안 된다면 월 수입 일억, 이억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꼴랑 몇 백만 원 몇 천만 원 벌자고 내 삶을 바칠 생각은 없다.


 전남편이 연봉 일억을 넘게 벌어도 하루도 쉬지 못하고 껍데기만 남을 때 먼저 그만두라고 말한 것도 나였다. 그렇게 사는 건 사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그렇게 살고 있다. 그것보다 못한 돈을 받으면서.



이런 체크리스트를 주말에 지워가면서 보고하면서. 하. 이게 뭔가. 이건 목에 줄만 없을 뿐이지 완전 인간에게 붙잡혀 사는 가축의 삶 아닌가.


 심지어 며칠 전 입주청소를 앞두고 고객이 저녁에 보러 온다길래 나름 청소를 했다. 먼지를 쓸고 닦고… 안방 변기 뚜껑이 닫혀 있길래 생각 없이 열었는데 어떤 개잡놈이 똥을 싸고 물을 안 내린 상태였다. 욕을 하며 변기물을 내렸는데 도대체 언제 싼 똥인지 눌어붙어 닦이질 않았다.


 조금 있으면 고객은 올 텐데 멘붕이 되었다. 현장을 둘러보다 폐기직전 빗자루를 발견해서 그걸로 닦는데 정말 욕이 욕이 나왔다. 국과수에 의뢰하고 싶었다. 도대체 어떤 정신 나간 미친 인간이 자기 똥을 저렇게 과시하고 싶었을까. 우리 팀은 도배로 끝났으니 범인은 싱크대나 붙박이나 시스템 에어컨 중문 네 팀 중에 한 놈이다. 분노가 치밀어 올라 매니저 단톡에 사진까지 찍어 올렸지만 매니저들의 반응은 뜨뜻 미지근했다. 지네는 퇴근했다 이거지. 똑같은 짐승들.


 그냥 치우지 말고 둘걸 뒤늦은 후회가 몰려왔다. 알게 뭐람. 하고 둘걸 젠쟝 나는 너무 성실해 ㅠㅠ. 그 와중에도 고객이 이걸 봤으면 정말 소송감이다 생각했으니… 암튼 나는 워라밸이 중요하다!! 그런데 약 두 달간 내 생활이 없어졌다. 주말도 없어졌다.  미친 듯이 일만 한다. 매일매일 시도 때도 없이 불려 가 그들의 요구에 맞춰 일을 하고 있다.


 참자. 참자. 참자.

 마지막 정산을 위해.

 그 돈을 받는 순간 빠이 란다. 아가들아.


 그 덩치 큰 대기업이란 조직에 숨어서 너네가 지금은 굉장히 갑인 것처럼 나를 부려먹지만 결국 너네도 알게 될 것이다. 너희야말로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 아주 미약한 존재들이란 걸.


 벌거벗은 알몸으로 그 조직에서 버림받아 정글 같은 이 세상에 나왔을 때 너희의 얼굴이 궁금하구나. 아니, 얼마나 살아는 갈 수 있으려나. 지금 이렇게 나에게 갑질을 하며 지랄했던 날들을 기억하렴. 더더욱 비참하고 서러워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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