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돌이를 만나다
문이 열리고 건장한 남자들 열댓 명 정도가 우르르 들어와 질서 정연하게 두 줄로 섰다. 앞에서부터 한 명씩 자기 닉네임을 말하며 나름의 어필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녀에게 한 번에 눈에 띄는 한 남자가 있었으니 그동안 그녀가 봐 왔던 남자들과는 다른 외모의 남자였다.
과장을 왕창 섞으면 BTS의 뷔를 닮은 그의 외모와 젊음은 그녀의 마음을 순간적으로 휘몰아 잡기 충분했다. 같이 간 언니가 내심 그를 찍지 않자 그녀는 마음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그를 선택했다. 젊고 잘 생긴 남자. 처음이었다. 그동안 연상만을 만나왔던 그녀에게 연하의 잘 생긴 남자는. 두 번째 남자를 잊고 싶었는데 이미 그녀는 사랑에 빠진 듯 마음이 부풀어 황홀해졌다. 그렇다. 그녀는 굉장히 심한 금사빠였다. 기분 좋은 취함과 적당한 농담. 그리고 진지하게 성심성의껏 불러주는 노래까지. 같이 간 언니의 간곡한 금기를 깨고 그녀는 그와의 연락처를 교환하고 말았다. 그리고 짧은 입맞춤. 그녀는 심장이 다시 뛰는 것을 느꼈다. 그래. 언제든 다시 사랑은 찾아올 수 있어. 그리고 내가 이 나이에 이렇게 젊고 잘 생긴 애를 만나다니 이게 무슨 복인가. 그녀는 다시 삶이 시작되는 듯한 느낌을 가졌다. 하지만 노래방 시간이 끝나고 취한 걸음으로 집에 오고 잠이 든 후 다음날이 되었을 때 그녀는 마치 신데렐라의 마법이 끝나버린 듯 그렇게 혼자였다. 어제의 일이 다 물거품이었던 것처럼 그의 웃음도 달콤한 말도 입맞춤도 술김의 착각이었나 그런 일은 없었나 씁쓸함까지 몰려왔다.
그리고 그날 오후가 되었을 때 문자가 한 통 왔다.
“속 괜찮아? 시간 되면 저녁 먹을까? “
노래방 그 녀석이었다. 그녀는 마음이 다시 떨려오는 걸 느꼈다. 좋아.라고 보낸 뒤 그녀는 뭘 입을지 정말 오랜만에 고민 고민에 빠졌다. 이건 너무 꾸민 티가 나고 이건 너무 추리해 보이고 적당히 센스 있어 보이고 요새 젊은 애들처럼 보이려면 뭘 입어야 하나. 그리고 약속 시간이 되었을 때 그를 만나기 위해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다 그녀는 건너편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그를 보았다.
전날 노래방에서와는 다른 모습. 머리에 뭘 잔뜩 발랐던 전날과는 달리 수수하게 자연스러운 머리. 청자켓과 청바지로 꾸몄던 옷차림과는 달리 베이직한 무채색 티에 검은 바지. 오히려 그 모습에 그녀는 더 마음이 설레었다. 신호가 바뀌고 정말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식당을 향해 가면서 그녀는 즐거웠다. 그가 자신에게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행복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한다는 누룽지통닭집을 가자고 했고 그녀도 좋다고 했다. 맥주 한 잔에 누룽지통닭에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이런저런 이야기들. 그녀는 그렇게도 자신이 찾던 동네 친구가 생긴 것 같아 마음이 푸근해졌다. 같이 저녁을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상대. 거기다 잘 생겼다. 그래도 나름 그녀도 들은 게 있어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은 갖고 있었다. 조금 취기가 오르고 그녀는 용기를 내서 말했다.
“너 나한테 공사 치려고 이러는 거야?”
공사. 선수들이 여자들의 돈을 빼먹으려고 작전을 짜서 서서히 조여들어 목돈을 가져가는 것을 말한다. 그는 매우 기분 나빠하며 말했다.
“누나, 솔직히 내가 그런 마음으로 누나 만나는 거면 나 지금 이렇게 누나랑 밥 먹는 것도 시간당 다 돈 받아야 하는 거야. 그런데 난 그냥 누나 생각나서 밥 먹고 싶어서 온 거야. 돈 받을 생각도 전혀 없어. 같이 밥이나 먹으려고 한 건데 공사는 무슨 공사. 누나 돈 많아?”
그 말이 피식 웃고 말았다. 하긴 내가 돈이 어딨냐. 네가 공사 쳐봐야 가져갈 것도 없는데. 그녀는 그에게 완전히 빠져버렸다. 아니, 비어있던 시간을 함께 보낼 누군가가 생겼다는 게 행복했던 걸까. 꼭 연인이 아니라도 이 관계가 이렇게 쭉 이어지길 바랐다. 그리고 그 바람이 모래성처럼 무너지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