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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e Jul 03. 2024

당신은 누군가를 위해 보증 설 수 있는가?

 최근에 조금, 보다는 많이, 정확하게는 삼일정도 가슴을 타 들어가게 하는 일이 있었다. 나는 개인임대사업자이다. 이번에 전세를 줬던 집의 기존 세입자가 만기를 앞두고 계속 살고 싶다고 해서 재계약을 하게 되었다. 임대사업자는 세입자 전세자금 보증보험이 의무인지라 2년 전 그 고생을 또 해야 하는구나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2년 전 서류 준비로 은행을 세 번 방문한 끝에 가입을 했던 좋지 않은 기억이 있다. 그때는 전세반환보증보험이란 것을 이혼 후 처음해 보는 일이었고 내가 워낙 행정이나 서류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라 등기소 갔다 세무서 갔다 시청 갔다 각 필요서류를 떼느라 더운 여름날 몇 번을 허탕 쳤던 경험이 나로서는 엄청난 고생을 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던 것이다.


 2년 전에는 다행히 같이 다녀 준 친구가 있어서 해냈지-그 친구 아니었음 지금도 눈앞이 깜깜할 일이다-그런데 올해 또 그 짓을 해야 한다니!! 허그에 전화해서 필요서류를 물어보고 은행에도 물어보고 주민센터에도 물어보고 해서 그래도 이번엔 꽤 많은 서류를 인터넷으로 발급받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래서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는 거야라고 스스로를 대견해하고 있던 그때 허그에서 준 보증보험 가입 서류를 보는 순간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가입하는 본인-나를 기입하는 란 밑에 “연대보증인”칸이 생긴 것이다. 난 충격에 휩싸였다. 그 절대 보증만은 서지 말라던 그 연대보증인? 옛날 드라마에 나오는 그 가훈이 “보증을 서지 말자”의 그 연대보증인? 2년 전에는 없던 연대보증인 칸이 왜 생긴 것인가!! 깡통 전세 사기가 너무 많아져서 그런가? 그리고 그날부터 난 끙끙 앓을 수밖에 없었다. 지인이나 친구들에게는 말도 꺼낼 수 없었고 엄마에게 말하면 까무러치시면서 당장 집을 팔아버리라고 할 거고 언니들에게도 씨알도 안 먹히리라. 당장 처지를 바꿔서 나에게 언니 중 한 명이 보증을 서 달라고 한다? 나조차도 절대 안 해 줄 것이다. 기간 내에 가입을 하지 않으면 벌금이 나오는지라 정말 뼈가 마르는 시간을 보냈다. (다시 생각해도 가슴이 지리하게 아프다.) 그리고 고민에 고민을 하다 그나마 재테크와 부동산에 관심이 많은 편인 셋째 언니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그리고 언니가 날 싫어하게 되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 같아도 무리한 부탁을 하는 상대가 싫어질 테니까.


 다시 한번 이딴 제도를 만든 정부와 시스템에 욕을 하며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 어찌나 떨리고 긴장이 되던지. 곧이어 언니는 반가운 목소리로 내 전화를 맞이했고 이런저런 일상을 전하며 즐거워했다. 전화 한 내 검은 속내도 모르고. 괴로웠다. 이렇게 순수하게 나를 반겨주는 사람인데 이제 나는 곧 칼을 들이밀 텐데. 언니의 말을 듣다 괴로워 참을 수가 없어 난 언니의 말을 끊고 비장하게 이야기했다.


“나 부탁이 있어 전화했어.”

“뭔데?”

“나 세입자 전세보증가입해줘야 하는데 연대 보증인이 필요해. 보증 좀 서 줘.”


말하면서도 이 현실을 와장창 깨고 브라운관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이딴 드라마 안 찍고 싶다고!!! 언니는 바로 대답했다.


“응, 싫은데?”


왜일까. 얼어붙어있던 내 마음이 빵 터졌다. 하하하하하. 갑자기 가슴에 눌려있던 돌덩이가 스티로폼으로 만든 드라마의 소품처럼 느껴졌다. 맞아. 싫지. 나라도 싫은데. 언니에게 사연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고 어떤 불이익도 없을 것이라 확신을 주고 언니도 동생이 오죽하면 자기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나 싶었는지 그러마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난 결심했다. 연대보증인 없다고 못 구했다고 안 써야지.


은행에 도착해서 연대보증인칸을 비워놓은 서류더미를 내고 난 또 세상 비장하게 전투적으로 앉아 있었다. 연대보증인 칸이 비어 있다고 은행직원이 말하자마자 온갖 세상의 비굴함을 다 모아서 도저히 못 구했다고 눈물을 글썽일 터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 그냥 넘어갔다. 안 써도 됐던 것이다. 괜히 나 혼자 엄청나게 고민하고 우울해하고 심란해하고 언니한테 말하고. 은행에서 나오자마자 언니에게 자초지종을 말했고 감사함을 전했다. 정말 나도 쉽지 않은 일을 나서 준 언니가 고맙고 또 고마웠다. 언니도 보증을 서는 것에 대해 마음이 영 무거웠는지 자신이 연대보증인이 되지 않아도 되는 사실에 한층 목소리가 밝아졌다.


 이번 사건으로 다시 한번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결론은 연대보증이란 정말 극악의 제도 중 하나이며 꼭 폐지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인간관계랑 먼 상관. 나도 안 선다. 보증은. 퉷. 퉷. 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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