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쟁이
어제부터 몸살이 났다. 온몸을 밤새 누가 때리고 간 건지 몸이 부서지도록 아팠다. 아침에 비몽사몽 현장 한 곳을 겨우 제꼈다. 하지만 아프다고 봐주는 세상이 아닌지라 오전에 다른 현장을 가봐야 했다. 목공이 마감인 현장이었다.
끙 끙 소리가 절로 나왔다. 머리도 못 감고 고양이 세수만 하고 집에 있는 몸살약을 빈 속에 털어 넣곤 신발을 신었다. 밤새 꾼 악몽 때문일까. 정말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았다. 어찌어찌 마감을 하고 좀 일찍 잠 들어서 편하려나 싶었는데 또 지독한 악몽을 꾸곤 잠에서 깼다. 버림받고 싶지 않았는데. 꿈에서조차 그래서 그렇게도 잘해줬는데. 맛있는 저녁을 차려뒀는데. 왜 어째서 그렇게도 처절하게 매달리는 나를 뿌리치면서까지 날 떠나는 거야.
겨우 잠에서 깼더니 새벽 두 시 조금 안 된 시간. 미칠듯한 불안감과 서러움이 몰려와서 침대에 걸터앉아 잠시 숨을 고른다. 눈물이 나오려고 꺼이꺼이하다가, 답답한 숨부터 찾다가 급히 약봉지를 뒤져서 물과 함께 꿀꺽.
버림받는 것. 이별하는 것. 나에겐 어릴 때부터 가장 두렵고 어려운 일이었다. 누구에게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최대한 맞춰주며 살았다. 그러다 한번 싫어진 상대는 다시 돌아보지 않았다. 그래서인가. 다행히 부모로부터 버림은 받지 않았지만 내가 사랑했던 남자들은 다 날 떠났다. 가장 아프고 힘든 방법으로.
꿈에서조차 매달리고 매달렸다. 울면서 남자의 차에 매달리기 까지 하면서 가지 말라고, 제발 내가 잘못했다고 안 그러겠다고. 나를 경멸하는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나를 싫어하고 분노하던 그 눈빛을 지울 수 없다. 그는 내가 매달리든 말든 차를 출발시켰고 차에 매달려 있던 나는 끌려가다 손을 놓쳐 다치고 넘어지고 버림받았다. 그의 차는 멀어져 갔다. 숨이 넘어가도록 울면서 소리를 지르다 잠에서 깼다. 온몸이 깨질 듯 아프다. 종합감기약과 다행히 잠자기 전 약을 한 봉지 찾아내서 먹었다. 먹고 나니 조금 마음이 진정되는 듯 조금씩 호흡이 편해졌다.
시간이 이렇게도 많이 흘렀는데. 이렇게도 날 아프게 할 수 있다니. 고작 이런 일로 이렇게 힘들어해야 하다니. 나 자신이 정말 싫다. 이제 잊고 털어버릴 때도 됐잖아. 네가 이러는 거 아무도 안 좋아하고 공감도 안 해준다고. 새 출발 하라니까 왜 그러고 있는 거야. 진흙탕 속에서. 혼자가 좋다고 깨춤 추더니 왜 또 사춘기 소녀 마냥 감정기복이냐.
마음만큼 온몸도 아프다. 부서지는 느낌이다. 몇 시간 후면 또 다른 현장에 가서 일해야 하는데 힘들다. 내일은 수액을 좀 맞고 필요시 약을 챙겨 먹어야지. 어디서 본 글인데 성실한 정신과 환자가 제일 무서운 사람이라던데. 난 5년째 성실히 약을 먹고 있다. 나 무서운 사람인가. 어흥. 안 그럼 내가 못 버티는데 어쩌겠나. 성실할 수밖에 없다. 토요일은 병원 투어를 해야겠다. 복잡하고 속 시끄러움은 어차피 나의 몫. 귀여운 고양이와 강아지 영상이나 좀 보다 자야겠다. 이럴 땐 정말 마음 한가운데가 뻥 뚫려버린 것 같다. 증오니 분노니 하는 2차 감정이 올라오기 전에 자야지. 도와줘!! 약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