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de Mar 20. 2022

나의 이혼이야기.20

20. 12월

  점점 그 사람은 영혼을 잃어갔다. 나는 껍데기와 살고 있는 듯했고 그만큼 그 사람의 업무는 과중했다. 항상 방전된 핸드폰처럼 그 사람은 함께 있어도 건성건성 대답하거나 자신의 피로도를 최소로 하기 위해 업무 외의 일에는 최소로 반응했다. 일 때문에 집에 와도 노트북만 끌어안고 있었다.


 늘 업무가 넘치게 힘들다는 걸 알기에 난 아침마다 그의 발바닥을 주물러 주고 목 뒤도 주물러주고 손이 아플 때까지 주물러 주곤 했다. 사실 난 주물러 주는 걸 몹시 싫어한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한번 잘 못 잡히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주물러 드려야 했기에 그게 너무 싫은 기억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람은 내 발을 주물러 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나중에 가게를 시작하고 한 두 번 주물러 줬었나... 아무튼 난 그 사람이 지치지 않기를 그렇게도 바랬다. 그렇다 그 알량한 돈 때문에 그 사람이 그곳을 계속 다니길 바랬다.


 이미 난 경단녀가 된 몸. 아직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년이 되지 않아 어머니도 챙겨야 하는 생활. 난 1년만 버티자 생각했다. 딱 1년만 어머니를 챙겨드리고 그 후엔 내가 하고 싶던 걸 하자. 그때는 동화 일러스트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린 시절 내가 읽고 싶었지만 읽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내가 그린 그림과 함께 해서 동화책을 내고 싶다는 꿈이 생겼었다. 그리고 그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동화 일러스트 학원에 등록도 하고 새롭게 시작될 1월을 기다렸다. 학원비가 비싼 게 영 마음에 걸려서 그 사람에게 눈치가 보이긴 했지만 오랜만에 생긴 꿈에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12월. 아버지 기일 3일 후. 난 맨날 어머니와 언니들에게 얻어먹는 게 미안해서 합정동에서 친구와 맛있게 먹었던 스파게티 집을 예약했다. '한 번쯤은 내가 사야지.' 생각하며 나름 큰 맘을 먹고 예약한 자리였다.


 그런데 내 기대와는 다르게 셋째 언니, 넷째 언니, 그리고 어머니는 불평불만을 쏟아냈다. 맛이 없다느니, 서비스가 별로라느니, 가격 대비 별로라고 하면서 날 속상하게 했다. 난 이런 자리를 준비한 게 정말 후회되었다. 그 와중에 둘째 언니한테 전화가 왔다.(첫째 언니는 출근이라 안 왔던 것 같다) 자기도 가고 싶었다고.


 그래서 오지 그랬냐고 왜 안 왔냐고 하자 둘째 언니는 무슨 말을 더 했지만 잘 기억은 나지 않고 '맛있게 먹어~'라고 하곤 전화를 끊었다.


 아무튼 그날의 저녁은 대 실패. 대 후회였다. 차라리 그냥 그 돈 내가 쓸걸. 이런 후회도 들고. 다시는 사 주지 않으리라 이를 갈며 집에 돌아왔다.


 맘이 있는 대로 상해서 집에 온 그날 난 속상함으로 쿨쿨 잘 잤다. 속상한 건 속상한 거고 잠은 잠이었나 보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니 새벽 3시쯤 둘째 언니한테 카톡이 와 있었다.


 "00이-둘째 언니 아이-를 부탁해"


 단 한 마디. 불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는지 했는지... 이상하게 아버지의 돌아가신 날은 선명하게 장면 장면 기억나는데 둘째 언니가 죽은 날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둘째 언니는 그날 집에서 새벽에 목을 매고 자살했다.


 내가 아직도 열어볼 수 없는 상자에 있는 둘째 언니. 난 아직도 그 상자를 열어볼 수가 없다. 남편의 죽음과 자식의 죽음은 차원이 달랐다. 어머니는 완전 혼이 나간 듯했다. 우린 어머니가 정신줄을 놓지 않게 잡아야 했다. 사람에겐 진짜 정신줄이 있는데 그걸 놓치는 건 순간인지라 우린 울부짖는 어머니를 계속 말리고 진정하게 하고 장례를 치렀다.


 1년 전 갔던  그곳. 아마 우리 가족들은 장례식 도우미를 해도 잘할 것이다. 그런 것에 잘하고 싶지 않았는데. 우리의 충격은 말로 할 수가 없었다. '맨날 죽고 싶다'를 입에 달고 살던 둘째 언니. 하지만 누구보다 맘이 여리고 약하고 예뻤던 그녀가 정말로 이렇게 떠날 줄이야.


 무엇보다 나랑 잘 맞고 어머니에 대해 가장 말이 잘 통했었는데... 이제 그럴 존재가 사라져 버렸다. 난 이번에도 비겁하게 언니의 시신을 보지 못했다. 언니들 말로는 아버지와는 다르게 멍이 많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그 날 내가 사기로 한 비운의 저녁외식이 끝나고 셋째 언니랑 어머니랑 둘째 언니네 집에 들렀었다고 한다. 둘째 언니는 이혼 후 혼자 살고 있었는데 느낌이 영 이상했던 셋째 언니가 오늘은 엄마네 집에 가서 같이 자자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사코 거절했고 결국 이 사달이 난 것이었다.


 아직 창창했던 둘째 언니의 죽음은 우리 가족에게 깊은 슬픔을 남겼다. 아니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을 남겼다. 결국 그녀는 떠났고 장례식장은 정말 최소의 인원만 와서 조용한 장례식이 되었다.


 어머니는 괴로움에 몸부림치셨고 자식을 잃은 짐승처럼 울부짖고 또 울부짖었다. 우리는 밤이면 다시 서로 때문에 언니가 죽은 거라고 자책했고 차라리 그렇게 자책하는 시간이 덜 괴로운 듯했다. 아무 대화도 하지 않는 시간에는 다들 심연의 구덩이같은 곳에 빠져 먹혀들어가듯이 서로의 속을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은 여전히 일을 했던 것 같다. 아버지 때와 똑같이. 어떤 따스한 위로나 온기도 기억나지 않는다. 조문은 최대한 못 오게 했다. 사람들이 오면 또 왜 돌아가셨냐, 이러쿵저러쿵 이야길 해야 하는데 아무도 그것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댁에서는 시아버님만 오셨던 것 같다. 아마 다른 분들은 오시지 말라고 했던 것 같은데 난 나중에 시누이도 안 왔던게 서운했다. 내가 그것에 대해 나중에 그 사람에게 따지자 '네가 오지 말라고 했잖아.'라고 했다. 난 그게 참말인지 거짓말인지 모르겠지만 만약 그 사람 여동생이 죽었는데 우리 언니들이 아무도 안 갔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2년 동안 두 번의 가족 장례를 치렀다. 같은 사인으로. 우리 안에 무슨 생각이 어떻게 있는지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12월에는 우린 서로를 은연중 감시하듯 눈치를 본다. 그래서 정말 공포의 12월이 되었다. 다음은 누구 차례지... 이런 두려움이 우리 마음 깊은 곳에 뿌리를 내렸다.


 언니의 시신을 화장하고 납골당에 언니의 유골함을 보관하기로 했다. 지금도 우스운 것은-우스워하면 안 되지만- 가격을 설명하던 아저씨의 설명이었다. 눈높이에서 높은 곳과 낮은 곳은 가격이 좀 더 저렴하고 중간층은 비쌌다. 정말 아파트 같았다. 그리고 빼곡했다.


 사람의 죽음으로 장사를 한다는 것이  씁쓸했다. 우린 중간층으로 선택했는데    칸이 얼마나 좁은지 나는 죽어서 절대 저런 곳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보기만 해도 답답했다. 아무튼  둘째 언니의 죽음은 아직도 열어볼 수가 없는 깊은 마음속 상자에 담아놨다. 그래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1월부터 동화 일러스트 학원을 등록해 놓은 나는 어머니께 학원을 다녀야 한다고 했다. 언니들은 다 미루라고 했지만 난 더 이상 미루고 싶지 않았다. 1년을 어머니의 보필을 했으면 됐지 또 해야 한다고? 마음에 이상한 분노가 치밀었다. 언제까지 내가 어머니의 보호자가 돼야 하는 건가.


 그래 놓고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언니들은 "엄마가 널 제일 좋아하잖아."라고 했다.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난 어머니께 싫은 소릴 안 하고 맞춰주니까.


 어머니는 학원에 가라고 하셨다. 그리고 드디어 내가 꿈꾸던 일러스트 학원에 가게 되었다. 굳은 의지로 시작한 학원생활이었지만 단 일주일. 내가 학원에 다닌 건 일주일이었다. 아침에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오면 난 단단히 먹었던 마음이 무너졌다. 지금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뭐가 중요한 거지.


 결국 원장실에 가서 면담을 신청했다. 어렵게 입을 뗐다.

 "지난달에 우리 언니가 죽었는데요..."

 그리곤 울음이 왈칵 터져 나왔다. 울며 울며 학원을 못 다닐 거 같다 겨우 말을 했고 원장 선생님은 매우 당황하셔서 알겠다고, 학원비는 반을 돌려주겠다 등등 위로의 말씀을 해주셨던 것 같다. 난 울면서 짐을 챙겨서 집에 왔다.


 그리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다시 어머니 보호자를 자처해서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왔다.




이전 20화 나의 이혼이야기.1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