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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e Mar 16. 2022

나의 이혼이야기.19

19. 시댁 공사

 그 사람의 첫 번째 탈선? 후에 나는 겁이 나기 시작했다. 회사일이 힘든 건 알았지만 정말 저러다 그 사람이 망가져 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회사일이 어느정도였냐하면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도 그 사람은 계속 노트북을 끼고 살았다. 낮이고 밤이고 노트북으로 일을 했고 그 사람 회사 동료들은 조문을 와서는 다들 핸드폰으로 끊임없이 메일을 쓰느라 고개를 숙이고 자기 할 일들을 하고 있었다. 난 저럴 거면 오질 말지... 상을 엎어버리고 싶은 마음을 꾹꾹 억누르며 꾹 참았다.


 하지만 나도 이기적인 사람인지라 거길 그만두면 어쩌나 하는 마음도 있었다. 덜컥 200만 원이란 돈을 변액연금에 넣어놓고 만약 더 월급이 줄어들면 어떻게 하나 하는 마음이 컸다. 


 그러던 차에 그 사람이 보너스가 나왔다. 천만 원 정도였던 것 같은데 나는 시댁이 항상 너무 낡은 집에 사는 게 신경이 쓰였다. 그렇다고 이사를 시켜드릴 돈은 없고 집을 수리라도 해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 사람에게 이야기를 했다. 


 시댁은 빨간 벽돌의 이끼가 가득한 반지하였고 열 평 남짓한 집이었는데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습하고 어두운 기운이 가득했다. 바퀴벌레가 정말 좋아할 만한 환경. 거기에 시할머님의 알 수 없는 짐과 까만 봉다리가 여기저기 쌓여 있었다. 


 집 안엔 비가 와서 군데군데 물이 스며 곰팡이가 진 곳도 있었고 솔직히 사람이 살기에는 정말 열악한 환경이었다. 내가 그 돈으로 시댁을 고쳐주자고 하자 그 사람은 여러 고민을 하는 듯했다. 그 사람은 이사를 시켜 드리고 싶은 맘이 강했던지라 잠시 고민했지만 우리 외엔 돈을 낼 사람이 없는 걸 알자 결국 이사는 무리라는 판단에 집을 수리해 드리는 것에 찬성했다.


 처음엔 시할머님과 시아버님이 집을 뭐하러 고치냐고 어차피 낡아 쓰러져가는 집인데 이사를 가면 가지 반항이 상당하셨다. 하지만 우리가 하도 완강하게 나오자 결국 동의하셨다. 웬만한 짐은 다 버리기로 하고 오래된 가구들도 다 버렸다. 필요한 옷가지며 개인 물품만 챙겨 나오고 공사는 시작되었다.


 시할머님은 고모님 댁에 시아버님은 시누이 집에 시여동생은 친구네 집에 이산가족이 되었고 바닥 보일러부터 다시 다 깔고 싹 수리하는 열 평 대공사가 시작되었다. 나는 공사 담당으로 거의 매일 공사현장에 가보고 벽지나 타일을 고르러 방산시장에 다녀오곤 했다.


 공사를 맡게 되어 어머니의 보호자 역할에서도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다. 합당한 핑곗거리가 생긴 것이다. 


 대부분의 가구나 집기 등을 다시 사기로 했으므로 웬만한 건 다 인터넷으로 사고 친정에서 안 쓰던 새 그릇도 가져왔다. 시할머님의 다리를 주물러 드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던 중에 시할머님의 소원 중 하나가 예쁜 화장대를 갖는 거라고 하셨던 게 생각이 났다.


 그 말씀을 듣는데 마음이 너무 짠했다. 사람의 노년복이 중요한데 아들이 재산을 다 탕진해버리고 화장대 하나 없는 신세... 나이를 먹어도 여자는 여자라서 화장도 하고 가꾸고 싶을터인데... 그래서 시할머님을 위해 예쁜 화장대도 하나 샀다. 


 사람 못 살 곳 같던 반지하는 말끔하게 옷을 갈아입고 반짝반짝 해졌다. 새로 산 가구가 속속들이 들어오고 시 여동생 방에도 화장대를 하나 넣어주고 옷장이나 가구도 싹 사다 보니 지출이 꽤 많이 들었다. 금전적인 도움은 나올 곳이 없었으므로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공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아침 8시가 조금 넘은 시간 시할머님께 전화가 왔다. 나는 무슨 일이 있으신가 아침부터 무슨 일이신가 염려되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요는 비데를 사달라는 것이었다. 옆에서 시고모님의 말소리가 들렸다.


 "그거 비데 얼마 하지도 않어, 그거 설치해 달라고 해."


 그동안 보람찼던 마음의 유리병이 와작 깨지는 듯했다. 사람이 저렇게 뻔뻔할 수가. 공사하는데 일원 한 푼 보태지 않은 사람이 얼마 하지도 않는 비데를 그럼 자기가 설치해주면 되지 아침부터 나에게 전화해서 비데를 설치해주라고 하다니. 생각할수록 얄미웠다.


  집들이 때도 와서는 새로 사놓은 가구의 바스켓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오빠 저거 안 쓰지?' 하면서 가져갈 것만 챙기는 시고모님이 정말 미웠다. 예의상이라도 집들이를 오면 오만 원이나 십만 원이라도 챙겨줄 텐데 하다못해 자기네 엄마가 사는 집인데 말이다. 빈 손으로 달랑달랑 오셔서 결국엔 그 바스켓들을 챙겨가는 걸 보니 기가 찼다.


 이렇든 저렇든 공사도 무사히 끝났고 시댁의 입주도 무사히 마치고 마음의 큰 짐을 덜은 듯했다. 바퀴벌레의 출현은 현저히 줄었고 시할머님의 알 수 없는 짐도 다 버렸다. 나는 시댁에 갈 때마다 뿌듯함으로 집을 둘러보곤 했다. 깔끔해진 집. 내가 결혼한 후에 정말 잘한 일 중에 하나였다.


 문제는 그 사람의 상태가 점점점 더 안 좋아지고 있는 것이었다. 난 보다 못해 내가 다니는 정신과를 같이 가자고 했고 그 사람도 한계를 느꼈는지 같이 가서 검사를 받고 약을 타 먹었다. 그러나 워낙 아파도 병원이나 약 먹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라 길게 가진 못했다. 


 결국 한계의 위기는 점점 더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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