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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e Mar 24. 2022

나의 이혼 이야기. 21

21. 난임의 길

 다시 내가 자처해서 돌아온 어머니의 돌봄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내가 뭘 하고 있는 건가 내 인생은 멈춰진 느낌이었고 임신에 대한 부담감은 점점 더 커졌다.


 처음 결혼했을 때는 둘 다 막 취직했을 시기라 돈이 없었고 2년 동안은 돈을 벌자 해서 임신을 미뤘었다. 그런데 2년이 지나고 그 사람이 갑자기 대학원을 간다고 해서 난 엄청난 벌이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심적으로 가장이 되었다.


 그 사람은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겨우 그거 벌어온 주제에 가장이냐고 생각했냐고. 하지만 난 심적으로 충분히 힘들었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인 김광민의 콘서트 표를 예약했다가 취소하면서 울기도 했다. 그 상황의 내 주제에 십만 원이 넘는 표는 너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외벌이를 하면서 강단 있게 임신까지 동시에 하기는 자신이 없었다. 그 사람이 보조금으로 대학원에서 조금 받아오는 돈이 있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아기까지 양육할 자신이 도무지 나질 않았다. 시댁에 기대할 수도 없고 친정에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학원 다니는 시기가 끝나고 그 사람이 취직하자마자 아버지의 죽음, 언니의 죽음으로 인해 난 정신과 약을 먹게 되었고 임신은 더욱더 멀어져 갔다. 정신과에서는 임신을 하려면 약을 끊고 한 달 뒤부터 가능하다고 했는데 아직 나에겐 심리적으로 안정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 불안감과 이런 상황 속에서 또다시 나 같은 아이를 낳아서 그 아이마저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결혼한 시기가 길어질수록 주변의 공격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장 큰 공격은 친정어머니였는데 어머니는 '시집갔으면 그 집에 애기는 하나 낳아줘야지.'라고 말하는 옛날 사람이었다. 아마 아기가 안 생기는 게 내가 원인이라 생각되셔서 걱정이 많이 되셨나 보다. 


한 번은 어버이날 때 시댁과 밥을 먹는데 시아버님이 불쑥 물어보셨다.


 "너네는 피임을 하고 있는 거냐? 왜 아이가 안 생기는 거니?"


 너무나 민망하고 당황스러웠다. 그 사람은 누나가 있지만 어쨌든 정말 귀한 장남인지라 손주를 엄청 기다리시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대놓고 여쭤보시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결국 나는 정신과 선생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약을 끊고 임신을 시도하기로 결정했다. 주위의 시선이 점점 따가워지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그 나이 때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으면 이상하게 보는 나라니까. 





 그리고 난임 병원을 찾았다. 난임 병원에 예약을 하고 처음 갔는데... 정말 사람이 많았다. 앉을 곳도 없었고 갈 때마다 1시간 기다리기는 기본이었다. 솔직히 그때 질렸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결과는 둘 다 이상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아기가 생기지 않는 걸까. 


 난임 병원 선생님은 일단 두 분 다 정상이니까 날짜를 맞춰서 시도해보자고 하셨다. 일명 '숙제'라고 불리는 그것. 나는 약을 먹어서 생리 주기를 맞췄고 선생님이 찍어주시는 날짜에 도전하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아기를 막상 가지려고 생각하자 굉장히 기대 반, 설렘 반이 되었다. 정해진 날짜에 숙제를 하고 임신 테스트를 해보고 한 줄을 보면 왈칵 눈물이 터졌다. 거기다 생리까지 시작되면 정말 우울함은 극에 달 했다. 거기다 생리 주기를 맞추는 약이 나와 잘 맞지 않는지 없던 배란통까지 생겨서 고통에 시달렸다. 


 배란기 때 배란통이 너무 심해 피까지 나는 일이 자주 생겼다. 나의 정신은 피폐해졌고 그렇게 1년이 지났다. 병원에 가서 제일 부러운 것은 남편과 같이 와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차례를 기다리는 부부였다. 처음 검사 이후로 난 항상 병원에 혼자 가서 혼자 기다렸다. 물론 평일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은 아는 일이지만 가끔씩은 이 사람도 함께 와 줬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결국 추가적인 검사로 나팔관 검사를 하기로 했고 그날도 난 혼자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는데 내 나팔관이 막혀있는 건지 검사액이 들어가질 않았다. 그런데 나는 너무 아파서 못 참겠다고 소리를 질렀다. 선생님은 갸우뚱해하시면서 지금 너무 조금 들어갔는데 그렇게 아프시냐고 하셔서 난 그렇다고 하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결국 검사는 멈췄고 난 차가운 병원 침대에 누워 진통제를 맞고 한참을 훌쩍이다 진통이 좀 가라앉아 진료실로 절뚝절뚝 걸어갔다. 선생님은 나팔관이 양쪽 다 막힌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충격이었다. 그래서 그동안 임신이 안 되었던 걸까.


 내가 여자로서 큰 하자가 있는 걸로 느껴졌다. 선생님은 2차 검사를 다른 전문 기관에서 해보도록 소견서를 써 주셨다. 여러 감회가 몰려왔다. 아기를 갖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구나. 그 조그맣고 여린 생명을 어떤 사람은 쉬이 낳아 함부로 하기도 하던데 나에겐 임신이 왠지 먼 일같이 느껴져 슬프고 우울하고 초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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