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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e Mar 25. 2022

나의 이혼이야기.22

22.이직의 제왕

 나는 소심하기로 치면 2등도 아쉬운 사람이다. 거기다 관계에는 왜 그리도 예민한지. 그러나 그 사람은 정 반대의 성향. 타인의 반응이나 생각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중요한 건 이 세상에서 바로 나. 수많은 책에서 본 요소를 갖추고 있는 사람이다.


 미움받을 용기? 그게 왜 필요한가요. 상대가 날 미워하든 말든 무슨 상관? 난 내 일만 하면 되는데. 이런 사람이었다. 내가 싫은 일? 그걸 왜 해야 하나요? 내가 싫으면 안 하면 되는데요. 이런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도 위기가 찾아왔으니 바로 대학원을 졸업하고 들어간 회사에서였다. 대학원까지는 자신의 꿈과 미래를 위해 어려움과 과중한 연구를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그다음 취직한 회사의 업무 강도는 차원이 달랐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 회사에서 그 사람의 직위에서 한 달 이상 일한 사람은 그 사람이 유일하다고 했다. 그만큼 업무가 과중했다. 지난 글에 한 번 말했던 번 아웃 증상이 몇 번 정도 반복되었다.


 그럴 때마다 지사장은 그 사람을 어우르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고 해서 다시 그 자리에 앉혀놨지만 1년이 지나고 우연히 찍은 그 사람 사진을 보고는 난 깜짝 놀랐다. 동네를 둘이 산책하다가 찍은 사진이었는데 그 사람 얼굴에 정말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무감정. 그동안 힘들고 지친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실 그때 우리는 시댁의 빚을 갚아주고 있었다. 시댁을 이사시키기 위해 임대주택을 알아보고 있던 중에 시아버님이 시할머님 병원비 등등 때문에 사채빚을 졌고 이자가 원금만큼 늘어서 1600만 원가량의 부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채가 있으면 임대주택에 들어갈 수 없으므로 그 돈을 한 달에 100만 원씩 갚아드리고 있었다. 거기에 연금 200만 원에... 금전적으로는 부담이 되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당장 회사를 그만두라고 말했다. 거기보다 돈을 덜 받아도 되니 그 회사는 빨리 그만두라고. 나는 우리 어머니를 신경 쓰느라 그동안 그 사람을 많이 방치한 느낌이 들었다. 그 사진을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나도 그동안 가난에 찌들어 그 사람이 벌어오는 돈만 봤지 너무 그 사람을 다그쳤구나. 힘듦을 모르는 체하며 남들도 그만큼 힘들다고 몰아붙였구나. 이렇게 사람이 망가지는 줄은 모르고..





 결국 그 사람은 그 회사를 그만뒀다. 물론 오라는 회사가 많았기에 그동안 오라고 손짓하던 S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이직하면서 20여 일의 기간을 가져서 자전거도 타러다니고 다시 자신을 회복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그때 다녔던 디자인 회사의 파트타임으로 출퇴근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가서 예쁜 벚꽃나무 아래서 사진을 찍어 나에게 보내 자랑하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 


 약이 오르기로 하고 그래도 다시 표정을 찾은 그 사람을 보니 다행이란 생각도 들고 장난기가 많은 그 사람의 그런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S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엔 일이 너무 없는 게 문제였다. 그 사람은 배우는 게 없다고 시간만 보내는 것 같다고 이내 지루해 하기 시작했다.


 2년여 년이 지나고 그 사람은 다시 설계 쪽을 일해보고 싶다고 이직을 했다. 물론 먼저 이직을 구해 놓고 잠시 쉬고 출근하는 형태였다. 내가 설계는 당신과 맞지 않을 것 같다고, 당신은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하니 다른 파트를 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지만 그 사람은 자신에게 필요한 과정인 것 같다고 하며 굳이 이직을 선택했다.


 아니나 다를까. 2년여 년이 지나자 그 사람은 역시 자신은 설계 쪽은 아니라며 다시 이직을 했다. 하지만 그 설계경력이 도움이 되었는지 그의 몸값은 점점 더 올라갔다. 오라는 곳은 많았고 설계경력을 가진 그쪽 계열의 인재는 적었다. 그는 2년 이상 회사를 못 다니는 사람처럼 또 이직을 했다.


 그 사람의 이직이 잦을수록 그의 몸값은 올라갔지만 나는 항상 불안했다. 나의 예민한 레이다가 항상 그가 이직할 즈음의 신호를 탐지했기 때문이다. 일단 회사에 불만이 많아지고 돌발행동이 늘어난다. 첫 회사를 다닐 때는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일부러 앞차를 박아서 사고를 내기도 했다. 물론 그 차가 무례한 운행을 하긴 했지만 그런 일이 두 번이나 있었다.


 그런 돌발행동이 늘어나면서 그는 다른 직장을 찾는다. 그 사람은 내가 불안해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거의 외벌이인 상황에서-나의 수입은 아주 적었으므로- 그 사람의 그런 불안정한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나는 항상 불안했다.


 오라는 곳이 너무 많아서 탈인가. 미국에서도 스카우트 제의가 오고 가만있어도 헤드헌터나 거래처들에서 가만 두질 않아 맘만 먹으면 옮길 수 있는 상황이니 정말 그는 이직의 제왕이었다.


 그런 그 사람이 불안하면서도 자랑스럽기도 했다. 그리고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든 것에는 나의 공이 크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든 그 사람을 믿을 수밖에 없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래도 걸림돌은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전폭적인 지지를 해준 나의 덕이 크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은 아니었나 보다. 아니, 아니었다. 그냥 자기가 잘나서 자기가 잘해서 지금의 본인이 된 것일 뿐. 난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오히려 나를 걸림돌로 생각하고 있을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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