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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e Mar 31. 2022

나의 이혼이야기.24

24.경매의 시작

 그 사람은 항상 무언가에 쫓기는 했다. 아마 경제적인 압박이 가장 심했겠지. 돈은 그 사람이 관리했기 때문에 집안의 경제적인 상황은 난 무지했다. 그저 난 매달 용돈 25만 원으로 평생을 살았다. 물론 그 사람의 카드가 있긴 했지만 카드를 쓸 때마다 "뭐 샀어?" 이런 전화가 왔기 때문에 눈치가 보여서 잘 쓸 수 없었다.


 결혼 초기에 2000만 원을 주식으로 날린 후 잠시 그 사람은 자신의 몸값을 올리는 것으로 경제적 상황을 헤쳐나가는 일에 주력하는 듯했다. 그러나 외벌이로는 그게 어렵다는 걸 알게 되자 한 때 나에게 누누이 말했던 "한 명은 원하는 삶을 살아야지. 300만 원 이상 벌거 아니면 일하지 마."라는 말을 아마도 굉장히 후회하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듣기론 시댁은 원래 굉장히 잘 살았다고 한다. 그는 일명 도련님이자 귀한 장남이었다. 전쟁 후 시할아버님의 노력으로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시아버님이 사업을 하면서 많은 재산을 탕진했고 그 사람은 귀한 부잣집 도련님에서 가난한 동네의 지하방 인생이 되었다. 그 사람이 고등학생 즈음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어찌어찌 대학은 갔지만 매일 수업도 빼먹고 당구만 치고 그래서 인생에 아무런 의욕도 없이 힘들어 군대를 가기로 했던 그때 나를 만난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그 사람은 경제적인 압박에 늘 시달리는 듯했다. 한 해 한 해가 갈수록 더욱더 그것이 눈에 보였다. 장남으로서 집안을 일으키고 싶었던 것인지 자신을 괴롭히던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인지, 아무튼 일반 월급쟁이의 수입으로는 그 굴레를 탈출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그 사람은 월급 이상의 부수입을 원했다. 그러던 그 사람이 어느 날 나에게 '부동산 경매'에 대해 말을 꺼냈다.


 나는 부동산 경매에 대해 무지했으므로 같이 경매학원에 다니자는 그 사람의 말에 엄청나게 화를 냈다. 항상 그랬다. 내가 하기 싫은 걸 그 사람은 은근한 강요로 하게 만드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게 하는 방식으로 결국 내가 선택하게끔.


 그 사람은 딱 한 번만 수업에 가보고 싫으면 안 가도 된다고 나를 구슬리면서 반복되게 이야기하고 또 했다. 결국 난 또 그 사람의 말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고 그가 이야기 한 경매 학원을 둘이 가게 되었다. 가면서도 난 몇 번을 이야기했다. 오늘만 가고 이제 안 갈 거라고. 하기 싫은 데 이런 식으로 결국 그 사람이 하라는 걸 하게 되면 너무 화가 났다.


 그럴 때면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지금 생각하니 그 분노의 근원은 내가 그 사람에게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던 것 같다. 난 존중받지 못해. 내 의견은, 내 마음은 이 사람에게 중요하지 않아.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해야 할 뿐.


 그렇게 경매학원에 도착한 나는 깜짝 놀랐다. 생각보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그것도 남녀노소 다 다른 연령의 사람들이 북적북적했다. 100명은 넘어 보였다. 그리고 뜨거운 열기. 재수학원 다닐 때 새벽반보다 더 뜨거운 열기였다.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는데도 강의실에 빈자리는 거의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굉장히 인기 있는 수업이라 신청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같았는데  사람은 미리  수업까지  사람 몫의 수업까지 힘들게 신청을 해놓고는 수업을 듣자고 나를 꼬드긴 거였다. 다시 한번  사람의 치밀함에 놀랐고 사람들이 많아서  놀랐다.


 입구에서 이름표에 닉네임을 쓰고는 이름표를 목에 걸고 자리에 앉았다. 서로의 이름은 알리지 않았고 우리는 서로를 닉네임으로만 불렀다. 자리는 이미 꽉 차서 남은 자리는 뒷자리 쪽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수업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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