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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e Mar 31. 2022

나의 이혼이야기.23

23. 상처는 깊어진다

 어쩌면 그에게 나는 떼어내 버리고 싶은 그의 구질구질한 과거였을지도 모른다. 나로 인해 잊고 싶은 아픈 기억들만 떠오르고 상처는 깊어만 가고 끈덕지게 손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질어빠진 밀가루 반죽처럼 난 그런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히려 그런 그림자 같은 지겨운 과거가 떨어져 나가서 더 홀가분했겠지. 아무리 도망가도 따라오던 그림자. 마치 자신의 발목을 잡는 것 같은. 이혼 후 그가 두어 번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인 것도 날 보면 좋은 기억보다 그의 아팠던 상처들의 과거가 떠올라 그를 다시 유리 파편처럼 날카롭게 찔러대서였을 것이다. 난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그의 목소리는 한결 밝고 톤업 되어 있었다. 거기에 난 바보같이 "좋았었나 보네. 목소리가 좋아 보인다."라는 실없는 소릴 했고 그 사람은 "출근하고 일하고 뭐 정신없지."란 사무적인 대답으로 내 말을 피해 갔다. 


 나라는 그림자를 떨쳐낸 그 사람. 이제 밝은 새로운 미래를 시작할 수 있겠지. 구질구질한 힘든 과거를 생각나게 하는 존재가 눈앞에서 없어졌으니 얼마나 홀가분할까. 네가 폭언을 퍼부었던 그날 저녁. 울면서 그렇게 말했었지. 나에게 너무 서운했었다고. 


 넌 서운했다지만 난 그날 너로 인해 내 삶이 없어졌다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지독히도 너 밖에 모르고 니 입장만 생각하는 너에게 말해봤자 넌 이해할 수도 동의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내 친한 지인조차 "네가 원해서 그렇게 살았잖아. 네가 선택한 삶이었잖아."라고 하는데 이제 와서 난 너에게 맞춰 살아온 삶을, 그림자 같은 삶을 후회한다고. 아니, 그렇게밖에 선택할 수 없는 삶이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한다. 결국 본인의 선택이면서 약한 소릴 한다고. 그건 선택이 아니라 사실 OX 문제 같은 것이다. 한다, 하지 않는다. 그럼 하지 않는다를 선택하면 되지 않냐고. 그 삶을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말할 수 없는 부분이다. 사실 누구에게도 거스르지 않으려고 흐르는 대로 살아 이렇게 흘러왔는데 바다인 줄 알았던 도착지가 썩은 도랑이라는 걸 인정할 수 있나.


 그러나 지금은 다시 인정해야 한다. 이혼을 결심했던 그날처럼 내가 도착한 곳은 썩은 도랑이었고 이제 그곳에서 나오기 위해 그동안 살아온 것보다 더 몇 배로 애써야 한다는 걸. 그곳엔 손 잡아 줄 그 누구도 없고 한 때는 이십여 년을 의지했던 그 사람도 없다는 걸. 오롯이 내가 나의 힘으로 일어나야 한다. 아등바등 그 썩은 것들에서 기어 나와 자유를 맞이했던 쇼생크 탈출의 앤디처럼 아등바등할 때다. 






  내가 그 사람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생각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문득문득 내가 그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상처로 밖에 남지 않는 사람이라면 어떡하나 생각하면 소름이 돋을 때가 있다. 내가 이렇게 말로는 '이제 다 잊어버려야지, 미워하면 나만 손해야.'라고 하면서 순간순간 분노로 이가 꽉 깨물어져 있는 것처럼 그 사람에게 내가 추적추적한 지겨운 과거의 그림자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이런 나 자신이 역겹고 슬프다. 헤어진 지금 그 사람이 날 어떻게 생각하든 무슨 상관이겠냐만은 아직도 난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좋은 사람 콤플렉스를 벗어나지 못했나 보다. 그래, 괜찮아. 지금은 나에게 그 사람 역시 생각하면 힘든 날들이 먼저 떠오르는 매개체일 뿐. 김광석 님의 노래처럼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였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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