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경매의 시작
그 사람은 항상 무언가에 쫓기는 했다. 아마 경제적인 압박이 가장 심했겠지. 돈은 그 사람이 관리했기 때문에 집안의 경제적인 상황은 난 무지했다. 그저 난 매달 용돈 25만 원으로 평생을 살았다. 물론 그 사람의 카드가 있긴 했지만 카드를 쓸 때마다 "뭐 샀어?" 이런 전화가 왔기 때문에 눈치가 보여서 잘 쓸 수 없었다.
결혼 초기에 2000만 원을 주식으로 날린 후 잠시 그 사람은 자신의 몸값을 올리는 것으로 경제적 상황을 헤쳐나가는 일에 주력하는 듯했다. 그러나 외벌이로는 그게 어렵다는 걸 알게 되자 한 때 나에게 누누이 말했던 "한 명은 원하는 삶을 살아야지. 300만 원 이상 벌거 아니면 일하지 마."라는 말을 아마도 굉장히 후회하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듣기론 시댁은 원래 굉장히 잘 살았다고 한다. 그는 일명 도련님이자 귀한 장남이었다. 전쟁 후 시할아버님의 노력으로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시아버님이 사업을 하면서 많은 재산을 탕진했고 그 사람은 귀한 부잣집 도련님에서 가난한 동네의 지하방 인생이 되었다. 그 사람이 고등학생 즈음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어찌어찌 대학은 갔지만 매일 수업도 빼먹고 당구만 치고 그래서 인생에 아무런 의욕도 없이 힘들어 군대를 가기로 했던 그때 나를 만난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그 사람은 경제적인 압박에 늘 시달리는 듯했다. 한 해 한 해가 갈수록 더욱더 그것이 눈에 보였다. 장남으로서 집안을 일으키고 싶었던 것인지 자신을 괴롭히던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인지, 아무튼 일반 월급쟁이의 수입으로는 그 굴레를 탈출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그 사람은 월급 이상의 부수입을 원했다. 그러던 그 사람이 어느 날 나에게 '부동산 경매'에 대해 말을 꺼냈다.
나는 부동산 경매에 대해 무지했으므로 같이 경매학원에 다니자는 그 사람의 말에 엄청나게 화를 냈다. 항상 그랬다. 내가 하기 싫은 걸 그 사람은 은근한 강요로 하게 만드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게 하는 방식으로 결국 내가 선택하게끔.
그 사람은 딱 한 번만 수업에 가보고 싫으면 안 가도 된다고 나를 구슬리면서 반복되게 이야기하고 또 했다. 결국 난 또 그 사람의 말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고 그가 이야기 한 경매 학원을 둘이 가게 되었다. 가면서도 난 몇 번을 이야기했다. 오늘만 가고 이제 안 갈 거라고. 하기 싫은 데 이런 식으로 결국 그 사람이 하라는 걸 하게 되면 너무 화가 났다.
그럴 때면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지금 생각하니 그 분노의 근원은 내가 그 사람에게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던 것 같다. 난 존중받지 못해. 내 의견은, 내 마음은 이 사람에게 중요하지 않아.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해야 할 뿐.
그렇게 경매학원에 도착한 나는 깜짝 놀랐다. 생각보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그것도 남녀노소 다 다른 연령의 사람들이 북적북적했다. 100명은 넘어 보였다. 그리고 뜨거운 열기. 재수학원 다닐 때 새벽반보다 더 뜨거운 열기였다.
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는데도 강의실에 빈자리는 거의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굉장히 인기 있는 수업이라 신청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같았는데 그 사람은 미리 내 수업까지 두 사람 몫의 수업까지 힘들게 신청을 해놓고는 수업을 듣자고 나를 꼬드긴 거였다. 다시 한번 그 사람의 치밀함에 놀랐고 사람들이 많아서 또 놀랐다.
입구에서 이름표에 닉네임을 쓰고는 이름표를 목에 걸고 자리에 앉았다. 서로의 이름은 알리지 않았고 우리는 서로를 닉네임으로만 불렀다. 자리는 이미 꽉 차서 남은 자리는 뒷자리 쪽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수업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