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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집 아기

by 생각만 하다가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

팔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여

다 못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 작곡 이흥렬, 작사 한인현


“엄마, 스르르르 해줘.”

“다른 노래 불러줄께”

“아냐, 스르르르 해줘어어.”


침대머리맡에서 자장가를 불러줄 때 마다 나의 다섯 살 아들아이는 “스르르르”(원 제목 : 섬집 아기)를 불러달라고 조르곤 했는데, 엄마는 돈 벌러 나가고 아기가 홀로 집을 지키다 지쳐서 잠이 든다는 내용의 가삿말이 맞벌이 엄마인 나로서는 사무치게 가슴이 아팠기에 되도록이면 다른 노래를 몇 번이고 불러주곤 했다. 왠일인지 아들애는 섬집아기를 꼭 불러달라 떼를 쓰곤 했고, 하루종일 어린이집에서 엄마가 보고팠던지 자장가를 한 시간을 불러줘도 눈만 말똥 말똥 뜨고 나를 쳐다보고 있다가는 섬집 아기를 듣고서야 그야말로 스르르르 잠이 들었다.

섬집아기의 가슴 먹먹한 가삿말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불러달라 떼썼던 아이는 이제 어엿한 청년으로 자랐지만, 나는 아직도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밤늦도록 아이를 가슴에 안고 자장가로 이 노래를 부르며 미안함에 목이 메었던 그 때의 나를 떠올리곤 한다.


여자도 반드시 사회 생활을 해야 한다고, 네 직장생활 뒷바라지는 내가 해주마 해주셨던 나의 어머니는 하지만 외손자가 만 세 살이 되기 전에 세상을 뜨셨고 시부모님도 먼 지방에 사시느라, 아이를 돌봐 주시는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간신히 직장생활을 꾸려 나가고 있었다. 아침 5시에 일어나 아이가 하루종일 먹을 것과 어린이 집에 가져갈 준비물, 입을 옷 등을 챙기고 아주머니가 낮 동안 해 주셔야 할 일들을 메모해 냉장고에 붙여두고 정신없이 출근하면 그제서야 하루일과가 시작됐다. 직장에서 전투 같은 하루를 보내고 집에 들어오면 하루종일 엄마가 보고팠던 아이는 껌딱지처럼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몰랐고, 엄마가 반가워 잠도 자지 않으려는 아이를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노래를 불러줘 가며(브람스의 자장가로 시작해서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에 이르기까지) 재워놓고 나면 그제야 눈에 들어오는 산더미같은 집안 일들…… 맞벌이였지만 늘 육아와 가사의 책임은 여자인 나에게 갑절 무겁게 주어졌고, 아이가 아프거나 집안에서 문제가 생기게 되면 죄책감과 미안함은 항상 엄마인 나의 몫이었다. 남편과 나눠서 해야 할 가사 목록을 만들어 자석판을 벽에 붙여놓고 요일제로 순번을 정해보기도 하고, 전세값이 전부인 알량한 재산까지 들먹이며 포기각서도 써 봤지만, 어쨋거나 저쨋거나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누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엄마인 내 스스로 죄인의 자세가 되곤 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남편에게도 육아와 가사는 여자인 나 못지않게 처음 해보는 고된 일이었을텐데, 더 많이 하지 않는다고, 여자인 내가 더 힘들다고 싸우거나 불평할 문제는 아니었단 생각이 든다.


누군가 나에게 타임머신이 있어 어느 때로 돌아가고 싶니 묻는다면, 나는 아마도 아이가 어렸던 때로 돌아가겠다고 할 것 같다. 그 때로 돌아가서는 육아 도우미 뿐 아니라 가사 도우미, 등교 도우미 등 도우미란 도우미는 모두 써서라도 내 가사 부담을 줄여 지치고 지쳐버린 나의 심신을 쉬게 해주고 싶다. 일들은 저마다 전문가의 영역이 있으므로 굳이 육아, 가사, 직장 생활 모든 것을 잘하겠다는 과욕은 버리고, 전문가와 분업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그들의 도움(사실은 돈의 도움)을 받아 나의 시간과 체력을 확보하겠다.


아직 여성 직장인들에 대한 공감대가 부족했던 그 시대, 회사에 양해와 배려를 요구하기에는 아무리 내가 타임머시을 타고 미래에서 왔다 하더라도 혼자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겠지만(물론 그 당시에도 마치 미래에서 온 듯한 투사들은 종종 있었다), 조직의 제도적인 변화도 요구하겠다. 워킹맘의 고충을 남성 중심의 조직에 충분히 설파하고 미래의 자원이자 사회의 중요한 일원이 될 우리 아이들을 키우는 문제에 모두가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혹시 조직의 분위기에 반하는 직원으로 찍혀 한직으로 내몰린다해도 나는 이 또한 기꺼이 감수하되 직장에서의 명맥은 유지해 나갈 것이다. 나이가 한참 든 지금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니, 고작 몇 년, 세상의 중심에서 배제되어 있다한들 인생은 길고 긴 것이요, 나의 뛰어난(전기로 차를 굴리는 미래에서 왔으니 얼마나 뛰어나겠는가!) 업무 실력이 어디 가는 것이 아니니, 언제고 다시 회사가 나를 소중하게 쓸 것이란 자신감을 가지고 말이다. 아니면 적절한 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과단성있게 육아 휴직을 선택해도 좋으리라.


그렇게 확보한 내 소중한 시간을 가족과 보내는데 쏟을 것이다. 가사 노동 체크리스트 따윈 만들지 말고, 아내이자 엄마인 내가 모든 것을 해내야 한다는 강박은 내려놓고, 남편에게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과 공간의 중요성을 대화로 깨닫게 해주겠다(타임머신을 타지 못한 남편은 여전히 성찰이 부족한 미개한 상태일 것이므로, 넘칠만큼의 충실하고 반복적인 대화가 필요할 것 같다). 또, 하루종일 어린이집에서 시간을 보내며 할머니(아이를 돌봐주시던 아주머니의 호칭)를 기다리는 나의 아들을 직접 데리러 가서는 함박 웃음으로 덥썩 안고 집으로 돌아오겠다. 정성껏 아이를 목욕시키고 조잘조잘 하루종일 있었던 이야기며, 엄마가 직장에서 보낸 이야기와 같은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고는 침대에 눕힌 후 자장가를 목청껏 불러 주리라. 물론 그 때 불러주는 섬집아기는 하나도 목이 메이지 않을 것 같다. 비록 여전히 이 엄마는 어린 너를 두고 내일 아침이면 전쟁터같은 일터로 나가야 하지만, 아이가 혼자 팔을 베고 스르르르 잠들게 하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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