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한 시간쯤 달리며 나 자신만의 침묵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나의 정신 위생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업이었다. 적어도 달리고 있는 동안은 누구와도 얘기하지 않아도 괜찮고, 누구의 얘기도 듣지 않아도 된다. 그저 주위의 풍경을 바라보고 자기 자신을 응시하면 되는 것이다.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중에서, 무라카미 하루키
현대인의 일상은 말 그대로 정보와 자극으로 가득하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통해 도착하는 수많은 메시지, 이메일, 뉴스 속보, 그리고 업무 중에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회의와 과제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선택을 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받는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다 보면 마음은 쉽게 지치고, 집중력은 흩어진다. 이럴 때 나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 시간이 바로 ‘달리기’다.
하루 혹은 일주일간 쌓였던 스트레스를 줄이고, 머릿속의 잡념을 날려버리기 위해 나는 달리기를 한다. 처음에는 건강이라는 명분으로 소규모 모임에서 시작했던 운동이었지만, 지금은 삶의 중심을 잡아주는 중요한 의식처럼 느껴진다. 달리기를 하는 동안에는 오로지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고,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는 그 고요한 시간 속에서, 나는 진짜 내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다. 주말 아침 1시간의 달리기는 내게 명상과도 같은 시간이 되었다(물론 침대에서 퍼져있고 싶은 욕망과의 사투가 매번 일어나기는 한다).
“달리기는 목적이 아니라 상태(state)이다. 그것은 현실에서 탈출하는 방식이 아니라, 현실 그 자체를 더 깊이 체험하는 방식이다.”
— 『철학자와 달리기』 중에서, 마크 롤랜즈
이 문장은 내가 달리기에서 느끼는 감정과 매우 닮아 있다. 달리기를 통해 나는 현실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게 된다. 생각이 복잡할수록, 마음이 무거울수록 달리기를 한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달리고 나면 그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져 있다. 무언가 답답한 마음이 정리되고, 나를 짓누르던 고민들이 한 발짝 멀어지는 느낌이 든다. 혹은 깊이 고민하던 것에 대한 해답을 얻을 때마저 있다.
이러한 달리기의 효과는 업무 성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실제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복잡한 프로젝트를 계획할 때, 또는 슬럼프에 빠졌을 때 나는 달리기를 통해 내면의 균형을 회복하고 집중력을 되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몸을 움직이면서 머릿속을 비우는 이 단순한 행위는, 나에게 새로운 아이디어와 관점을 제공해 주기도 한다. 종종 좋은 아이디어는 책상 앞이 아닌, 달리는 중에 떠오른다(가끔 자다가도 떠오른다).
특히, 육체적인 움직임이 정신적인 정돈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달리기를 하며 반복적인 리듬 속에 몸을 맡기다 보면 어느새 마음도 그 리듬에 따라 정돈된다. 쓸모없는 생각은 자연스레 사라지고, 중요한 것만 남게 된다. 그래서 달리기는 단지 운동이 아니라, ‘정신적 정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마치 불필요한 데이터를 정리하고, 시스템을 재부팅하는 작업처럼 말이다.
결국, 어떤 일에 몰입하고 성과를 내려면 단지 머리를 굴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오히려 몸을 움직이며 머릿속을 비우는 단순한 행위가 더 깊은 집중력과 창의성을 불러온다. 우리는 복잡한 세상 속에서 살고 있지만, 생각의 깊이는 단순함 속에서 비로소 꽃핀다. 나에게 그 단순함을 선물해 주는 도구가 바로 ‘달리기’다. 스스로를 마주하고, 생각을 정리하며,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는 통로. 그것이 내가 달리기를 좋아하는 이유다.
매일이 아니라도 시간이 날 때마다, 아니면 마음이 복잡할 때마다(라고 쓰고, 보스가 괴롭힐 때마다라고 읽는다) 한 시간쯤 달리며 나 자신만의 침묵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나를 리셋하고 평온한 상태로 되돌려 놓는 소중한 활동이 되었다.
달리기 중에는 세상의 소음을 잠시 내려놓고, 오직 내 호흡과 발걸음만으로 나를 채운다. 그저 나 자신의 숨소리에만 집중하면 그 뿐인 것이다. 이렇게 되찾은 정신적 평화를 가지고 일터로 돌아오는 것, 그리고 복잡하고 실체가 보이지 않는 문제들 속으로 다시 나를 던진다. 그것이야말로, 나에게 있어 일터로의 신성한 회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