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너 자신을 알라

by 생각만 하다가

[승진] : 공무원이나 민간기업 종사자의 직급 또는 계급이 올라가는 것



4월의 날이 화창했던 어느 봄날, 나는 과장 승진에서 두번째 고배를 마셨다. 화장실에서 눈물 콧물을 짜고 온 후 PC앞에서 내용이 뭔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문서를 되는 대로 타이핑하며 평상심을 가장하고 있던 나를 팀장이 조용히 불러서 말했다.

“군대다녀온 남직원에 비해 나이도 어리고, 맞벌이를 하니 경제적 부담도 없을 테니 승진은 급한 사람 먼저 보내주고, 내년에 다시 도전해 봅시다.”


맞벌이가 승진에서 누락의 사유가 된다면, 멀쩡히 직장다니고 있는 남편을 사직이라도 시킬 수 있겠지만, 그때만 해도 사관학교를 가지 않고는 여자는 갈 수도 없었던 군대 문제는 또 어떻게 해결한단 말인가? 아니 그리고, 회사에서 모두들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나한테만 급하지 않다는 그 속도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이후로도 회사를 다니면서 승진에서 떨어지거나, 중요한 경쟁에서 밀려날 때마다 위로랍시고 수없이 들은 말들은 군대를 다녀오지 않아서, 나이가 남자 동기들에 비해 어려서, 맞벌이를 하고 있어서 즉, 바꿔말하면 "나는 여자이기 때문에" 였다. 거꾸로 말하면 군대다녀오지 않아 편하지 않았니, 일찍 회사 들어와 시간 많이 벌었잖니, 남편이라는 부양자가 있으니 회사는 굳이 안다녀도 되니까 직장은 플러스 알파였던 셈 아니니... 였던 것이다(참 구시대적인 밀레니얼이었던 것 같다).

상명하복의 문화에 길들여지지 않았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벌떡 벌떡 일어나 커피를 타 나르거나, 어린 나이에 버릇없다는 소리 듣지 않으려고 회식을 가서도 누가 시키기 전에 수저를 세팅하거나, 유부녀는 일 시키기 힘들다고 할 까봐 야근도 마다하지 않던 나는 승진에서 떨어질 때마다 뭔가 잉여스럽고, 조직 적합성에 결격이 있는 뒤처진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승진은 과거 3~4년의 업무 성과와 더불어 향후 우리 조직에서 직원이 보여줄 수 있는 잠재력을 참고하여 외적 동기가 필요한 직원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아니던가 말이다. 내가 그동안 휴가를 반납해 가며 진행했던 프로젝트의 결과와 타 부서 사람들과 얼굴 붉혀가며 얻어 낸 우리 부서의 성과는 어디에 가고, 승진 사정 시기만 되면 나이 타령, 군대 타령, 맞벌이 타령으로 나보다 급한(? 정작 그 당사자는 본인이 왜 급한지도 모른 채) 경쟁자들에게 밀려나야 했는지 그 때는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수 년의 시간이 흘러 내가 한 조직의 리더가 되었을 때, 조직원들이 고된 조직 생활을 참고 이겨내며 고대해 마지않는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은 승진이란 것이 누구에게나 골고루 돌아갈 수 있는 “맑은 물 한 모금”이 아님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 참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오랜 고민 끝에 내가 채택한 전략은 “너 자신을 알라” 전략이었다. 본디 델포이 신전에 씌여진 격언이었던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너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라. 그래야만 너는 비로소 참된 앎을 찾아 나서는 출발점에 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라는 뜻이라고 한다. 대체로 사람은 본인의 능력에나 성과에 대해 과대평가하는 면이 있고, 특히 뭔가 바라는 것이 있을 때는 그것이 본인에게 주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확대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팀의 목표와 성과를 기준으로 본인의 자격과 성과가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를 명확히 가늠케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막연히 죽도록 열심히 달려갔는데, 도착해 보니 “이 산이 아닌가배~”하게 둘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나는 1년에 2회씩 개인 별 면담을 실시했고, 승진을 위해 본인이 필요한 자격은 무엇인지, 성과의 수준은 어디쯤 와 있는지, 개인적으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애로사항은 무엇인지 등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을 절차로 만들었다. 물론 조직 내에는 승진이 반드시 필요한 직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고 승진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다른 이유로 회사를 다니는 직원들도 있게 마련이다. (혹은 현재의 수준으로 회사를 다니는데 만족하도록 설득이 필요한 직원들까지도 포함해서)


팀원들을 면담을 하면서 거꾸로 내가 알게 되는 부분도 많았다. 팀의 목표를 천명했지만 그에 대한 이해도는 개개인의 처지나 능력에 따라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 따라서 이런 목표는 가능한 한 구체적이고,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쉽고 명쾌한 표현으로 전달되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목표는 기업의 환경과 전략에 따라 수시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너무나 거창하고 원대하게 세워진 계획은 조직이 그 달성 여부를 확인하고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팀원들과 면담하면서 조직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계량화해서 표현하고, 목표달성을 위해 조직이 진행해 온 과정과 결과를 모두에게 공유해 주는 것이 결국 승진 발표 후 팀장으로서 낯부끄러운 변명, 예를 들면, 당신은 군대를 다녀오지 않아서, 승진이 아쉽지 않은 맞벌이니까 등의 불난 집에 기름 붓는 언행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물론 승진 대상의 수에 비해 승진자의 수는 항상 부족하므로, 타 부서와의 경쟁에서 밀려 우리 팀원이 승진에서 누락되거나, 이번에 꼭 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명단에 없는 경우도 언제나 발생하는 일이었지만, 팀의 목표와 달성 과정을 투명하게 공유하고 주기적으로 면담을 통해 개인의 성과를 객관화하는 기회를 가짐으로써 결국 우리 팀의 진급율은 매년 상승하였고, 타 팀원들이 옮겨오고 싶어하는 팀이 될 수 있었다.


업무 평가하는 인사 시스템도 혁혁하게 발전하여 이제는 개인의 역량, 업무 성과, 조직 공헌도 및 기타 잠재적인 능력 등을 다면으로 평가하고 이를 수치화하여 평가자 뿐 아니라, 피평가자도 공유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 뿐 아니라 평가자도 피평가자로부터 평가를 받아 팀 혹은 부서의 리더로서의 성과를 객관적으로 피드백받을 수 있다(각종 게시판, SNS, 블라인드 등의 익명의 채널을 통해서도 언제나 가능해졌다).

나이가 어리고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으니 승진이 시급한 남자 동기에게 진급을 양보하라던 팀장을 내가 지금 팀원으로서 평가한다면 몇 점을 줄까? 업무의 성과나 팀 목표에 대한 공헌도가 아닌 비합리적인 남성 우선 및 온정주의로 평가했다고 해서 빵점을 줄 수는 없을 것 같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지금과 같지 않았고 여성의 성과가 남성의 그것에 뒤처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기에 그 시절은 아직 원시시대에 가까웠으니까 말이다. 개인의 무지를 미개했던 시대적 배경 탓으로 100퍼센트 양보해서 20점은 줄 수 있겠다. 그도 시대적 낙후에서 벗어나지 못한 조직의 하수인이었을 뿐이므로. 다만, 나와 함께 동거동락하며 팀의 성과를 일궈 왔을 '군대 다녀오고, 유부남이며, 홀벌이였던' 남직원에게 책임을 전가했다는 면에서 팀웍 기여도 0점을 주고싶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제 도끼는 쇠도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