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회사 생활이 몹시 지루한 사람이다.
2008년부터 사회생활을 했으니, 어디 보자 벌써 17년차가 되었네.
돌이켜 보면 회사 생활이 그다지 순탄하지는 않았다. 회사생활을 울퉁불퉁 오프로드로 만든 장본인, KTX로 오면 2시간 걸리는 길을 통일호로 10시간 걸리게 완행열차 티켓을 끊어준 장본인, 딱 떠오르는 못된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을 만난 탓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잔혹한 시기였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화딱지가 나서, 그 양반들 명치라도 쎄게 후드려 패지 않은게, 남들 보는 앞에서 욕이라도 시원하게 내뱉지 않은게 한탄스럽다. 아주 우연히 그 양반들이 야장에서 술 마시는 걸 봤는데, 그 반질반질한 살찐 뒤통수를 후두려 패고 싶은 욕망을 간신히 참았다. 아니, 지금까지 아쉬움이 가득한 걸 보면 한 대 치고 경찰서라도 가서, '동네 사람들 보소 이 양반이 나한테 했던 행태를 보소. 내가 폭력이라도 행사하지 않으면 그 누가 이 안타까운 이내 심정을 안단 말이오.' 하고 경찰서에서 드러 누웠으면 좀 마음이 누그려졌으려나. 그 사람들 때문에 사회에서 만나는 모든 관계가 노동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세상에는 진짜 비열하고 속이 시꺼먼 사람들이 있는 법이다.
오랜 회사생활에 후회가 많이 남는다. 관계 개선을 위해 나의 노력이 부족했던 건 아쉽긴 하지만 후회까지는 아니다. 바쁜 탓에 자기계발에 소홀했던 것과 야근한답시고 집에 늦게 들어와 건강을 해친 건 후회가 조금 남는다. 남탓하기 전에 내가 잘못한 건 없는지 팀장이 없는 말을 했을까, '니 요즘 사람들 사이에 무슨 소리 들리는지 알아?' 라는 가스라이팅의 전형을 나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았던, 당시 모자랐던 내 모습에, 후회가 남는다. 그리고 또 남는 후회는, 잘못된 지시에 아니오, 라고 대범하게 말하지 못한 것과, 나쁜 관계를 계속 감내하고 참아온 것, 내가 나를 존중하는 법을 몰랐기에 마땅히 챙겨야 할 내 밥그릇을 덩그러니 비워놨던 과거가 후회스럽다. 그런 후회가 점철되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다. 학습된 무력감에, 회사에서 혹은 사회에서 크게 뭐가 되고 싶거나, 무엇을 하고 싶다 떠오르는게 마땅히 없다는 것. 이 또한 나를 지키는 방어기제였다고 생각하지만 그 덕에 회사생활이 무료해지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잘나가는 친구들이나 후배들을 보면 괜히 아랫배가 슬슬 조여오는 느낌이 든다. 가끔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서 어떤 모임에서 누군가 ‘나 잘나가’ 하고 잘난 척 하는 사람이 있으면, 아무도 들리지 않게 '잘나가봤자지 뭐, 꼴랑 팀장 주제에.' 하고 조용히 비아냥대는 말을 조아리거나, 관련 단톡방에서 쥐도새도 모르게 빠져나온다. 이건 내 자격지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격지심이라고만 표현하기엔 내 무너진 자존심이 불쌍하다. 그냥 누구와 비교하지 않을 때는 내 스스로 나약한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꽤 기특하게 여기까지 왔구나 싶은데, 내가 원하지 않는 장소와 시간에 내가 원치 않게 들리는 말들과 자격지심에, 자존감이 깎이는 순간이 오면 그냥 그 자리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내 자존감이 단 1초라도 짓밟히는 걸 피하겠다는 일념이다. 피하는 건 가장 쉬운 일이지만, 이건 나를 지키는 나만의 방식이다. 그렇게 십수년 나를 보호해 왔더니, 내 주위에 사람들이 몇 남지 않았다. 그 작게 유지되는 나의 인맥풀이 내 진짜 친구들이고, 그 안에서 나름 작은 행복들을 겨울을 앞둔 다람쥐 마냥, 입안에 잔뜩넣고 오물거릴 수 있다는 걸 깨닫는 요즘이다.
일반적으로 정년을 60세로 예상해 보면, 지금부터 어림잡아 16년만 더 버티면 이 지루한 회사생활이 종료된다. 팀장은 인구절벽으로 우리가 80세까지는 현업에 있을 거라는 끔찍한 말을 하지만, 일단 나는 60세를 목표로 인생 2장을 준비할 셈이다. 마라톤이나 축구 같은 운동 경기를 굳이 빗대지 않더라도, 60을 정년으로 보면 명확하게 이제 반환점을 돈 셈이다. (알다시피 반환점 이후에 중요한 건 지구력이다.)
이 글은 지루하고 불안한 일상을 잘 감내한 17년차 직장인이, 남은 회사생활도 잘 견뎌보자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다짐이다. 그리고, 산업 현장 이곳저곳에서 (무료한 표정을 애써 숨기며) 고군분투하는 후배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애정이 깃든 노하우 전수(로 읽혔으면 좋겠)다. 지금껏 회사생활에서 크게 이룬 것도 없고 앞으로 회사 생활에서 어떻게 되야겠다는 그럴 듯한 목표도 없지만, 하루하루 무탈하고 즐거우면 그걸로 됐다. 즐거웠으니 한잔해! 뭐 이런 마음이랄까. 회사생활의 목표를 굳이 정하자면 ‘중간만 가자’ 정도가 좋겠다.
암흑기와 같은 30대 회사생활의 시기엔, 누군가 한 번씩 현재 회사 생활에 대한 원 포인트 레슨 같은 걸 해줬으면 하고 바랬던 적도 있다.
악마같은 팀장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지,
지금 전배를 포기하고 다른 회사로의 이직이 맞는지,
지금껏 해왔던 일과 다른 분야의 일을 시작하기에 늦지는 않았는지.
본격적인 회사생활에 대한 심도 높은 조언을 줄 수는 없지만,
지루한 회사생활에서 잠깐 웃으면서 나를 지킬 수 있는 사소하지만 확실한 시간 때우기 비법을 전수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