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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까지 가벼우면 좋겠지만

틈만 나면 뛰어다닐 예정 : 트레일 러닝 백

by 꼬르따도

회사 가는 길은 무엇보다 가벼워야 한다.


마음까지 가벼우면 좋겠지만, 마음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기 때문에 우선은 몸을 가볍게 하는 것으로 범위를 좁혀 보자. (몸이 가벼우면 마음도 가벼워질 수 있다.) 그 중 비교적 쉽게 바꿀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가방이다. (외투나 신발도 있다.)


무게 하중이 균등하게 분배될 수 있는 것으로 고르면 좋다. 무게는 500g 미만으로 가격대는 10만원 미만으로. 나는 걔중에서 아웃도어 브랜드의 트레일 러닝백을 골랐다. 무엇보다, 광고모델인 아이유가 메고 있는 착샷이 예뻐서 첫 호감도가 높은 이유가 컸지만, 대외적인 선택의 이유는 바로 기능이다.


수납 공간도 다양하고, 가볍고, 용량도 20L나 된다. 이 정도 급이면 급할 때 회사까지 뛰어도 어깨에 부담이 안되는 무게고, 또 노트북 하나 정도는 가볍게 수납이 가능한 정도의 용량이다. 모양도 뭐, 일하러 가는데 크게 튀는 수준은 아니다.


실제로 트레일 러닝 백에 운동복을 넣고서, 출퇴근길 왕복 7km를 뛴 적이 있다. 출근할 때는 판교에서 탄천가를, 퇴근할 때는 서울에서 한강변을 뛰었다. 러닝복을 입고 퇴근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아내는


”그러고 회사에 갔어?” 라고 물었고, 그 물음을 미처 이해하지 못한 나는 “응 뛰어 왔어!” 하고 상기된 얼굴로 미소를 띄며 대답을 했다. 그렇다. 적당한 거리의 러닝은 즐겁다.


러닝의 효과는 실로 엄청났다. 나처럼 생각이 많은 재질의 사람이라면, 운동을 통해 전두엽을 자극하여 인식과 사고의 영역을 활성화하는게 좋다고 한다. (출처 : 운동화 신은 뇌) 이는 지루한 사람이 오랜동안 회사 생활을 견디게 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사실 고관절이 아파서, 가벼운 속도로 뛰는 날들이 많았는데, 어머니가 ‘고관절엔 우슬닯발즙이 좋다’면서 보내주신 우슬닭발즙을 먹고서 과연 고관절이 많이 좋아졌다. 신경외과에서 엑스레이를 찍었을땐, 고관절 부위가 까맣게 관절 부위가 서로 달라 붙은게 보여, 의사 선생님께서 러닝을 만류하였는데, 우슬닭발즙을 먹었더니 못했던 양반다리도 하고 러닝도 지속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의료계에 종사하는 친구들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그 어떤 음식이나 약재로도 신경외과적인 치료를 기대할 수 없다면서 우슬닭발즙의 효과를 폄하했다. 내가 효과를 봤다는데도, 마치 이더리움 떡상한다는 코인 광신도의 말을 듣는 것처럼 관련 이야기를 계속하는 걸 꺼리는 느낌이었다. (모임에 있는 의사인 친구 한명은 실제로 이더리움 떡상해서 몇십억을 벌어, 반포에 현금으로 집을 샀다.)


우슬닭발즙 효과에 대해 침을 튀기며 좋은 소식을 전도하는 나를 보면서, 민간요법을 맹신하고 있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이 갑자기 떠올랐다. 아, 부모님 불효자는 웁니다, 그간 부모님이 맹신하는 민간요법을 힐난하고 무시하던 무지한 아들을 용서하세요. 부모님 나이가 되니, 저도 어쩔 수 없네요.


40대가 넘어가니, 깨닫는 게 회사 생활은 탄천의 흐르는 물처럼 잔잔하게 가는게 좋다는 점이다. 빨리 갈 필요도 없고, 내 체력에 맞게, 내 관절에 맞게 적절한 속도로 가는게 좋다. 러닝과 닮은 점이다. 그리고 너무 앞서거나 뒤서는 것보다는 남들이 하는대로, 판교역 개찰구에 사람들에 떠밀려 차례차례 나오는 것처럼 흐름에 몸을 맡기는게, 무리하지 않고 더 오래 갈 수 있는 비법이다. 새치기 같은 거 하지말자.


그러니까 이 말은 남들 진급할때 함께 진급하고, 남들 교육 받을 때 함께 교육 받고, 남들 해외 출장 갈 때 나도 따라 가는 정도의 튀지 않는 정도의 중간을 의미한다.


농담처럼 뭐든 중간만 하자 얘기들 하지만, 중간만 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사실 이 중간에서 많이 비껴났었다. 진급도 세번이나 떨어져, 후배들에게 밀리고, 결국 불면과 우울의 나날을 보내다 직급이 없는 IT회사로 이직을 택했다. 진급누락은 해본 사람만이 안다. 그까짓것 회사 생활 길게 보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이나, 급여소득이 뭐 중요하냐 투자소득이 낫지 같은 말들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이직은 떠밀리듯 한 선택이었다.


남들 교육 받을 때, 남들 해외로 연수 갈 때 죽어라 일하고 야근만 했는데(피해의식이지), 진급도 못한 채 퇴사를 하려니 그 부분이 너무너무 서러웠다. 물론 진급 못해 이직하니 연봉에서 손해보는 것도 컸다. 다른 건 몰라도 진급의 기쁨을 한번 쯤은 누리고 싶었는데, 부모님과 가족, 동료들에게 한껏 축하받고 싶었는데, 내 회사생활에서 그 부분이 누락된게 너무 서럽고 슬펐다.


어떻게 회사가 이래, 내가 신뢰하고 애정했던(사실 신뢰도 애정도 없었다. 비극은 스스로가 만들어낸 과장과 비약을 먹고 덩치를 키운다.) 내 청춘을 바친 회사가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어 라고 한탄도 했지만, 이게 사회생활의 생리이다. 경쟁에 약한 사람은 도태되는 시장의 원리다.


오래 뛰고 싶으면, 중간에 서야 한다.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는 나만의 속도를 존중해야 길고 오래 갈 수 있다. 직장이라는 기초, 다시 말해 돈벌이에 대한 기초가 탄탄하고 흔들림이 없어야, 그 바탕 위에서 내가 업무 이외 할 수 있는 다양한 시도도 해볼 수 있는 것이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고, 신뢰를 바탕으로 적정 수준의 요구도 주고 받으면서. 사회생활에서는 들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요구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야 마냥 쉬운 사람이 아니란 걸 사람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다. 워크 앤 라이프의 발란스가 중요한 것처럼 기브 앤 테이크도 적절해야, 그 안정감 위에서 오래 회사생활을 지속할 수 있다.


그러니, 가방은 가벼운 걸 고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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