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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르따도 Aug 16. 2017

희한한 시대

울지마 그냥 그림자처럼 살아가

1997, 고등학교 일학.


97년은 내가 고향과 가족을 떠나 순천에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해이다.   가을 해태 하위권을 맴돌 거란 전문가들의 예측을 비웃기라도 하듯 한국시리즈에서  했고, 겨울엔 오랜 호남인의 염원을 담아 드디어 민주적인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당시, 대통령 선거 개표 결과를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는데, 하숙집  리모콘을 빼앗아 채널을 돌리자 가만히  라고 소리 질렀다가 얻어  뻔한 기억도 난다.


담임 선생님은 해태가 우승할 때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돌렸고, DJ가 당선되자 호빵을 돌렸다. 선생님 공직자에겐 정치적 중립의무가 있는 거 아닌가요 물으면서ㅡ 난 야채 호빵을 태연하게 골랐다. 



이른바, 이명박근혜의 희한한 시대가 끝나고 갑자기 세상이 바뀌었다. 사실, 희한한 시대에 좀체 적응을 못하던 나로선 지금이, 천지개벽의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희한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고백하건대 박근혜 뽑았어 그 사람이 그 사람이더라, 라고 술 기운에  말하던 사람이 정권이 바뀌자 갑자기 잠잠해졌다. 민주사회에서 개인에게 누구를 선택할 자유가 있는데 그런 걸 무슨 고백씩이나 하나요 했던 내가


최순실 사건을 지날 땐,

봐라 너네들땜에 나라꼴이 이 모양이다. 박근혜 찍은 사람 X잡고 반성하고, 결자해지의 정신으로 광화문에서 촛불 잡아라. 난 박근혜 뽑지도 않았는데 이 추운 겨울에 이게 무슨 고생이냐,고 꽥 소리를 질렀다. 물론 술기운을 빌렸다.


그 저변엔 내 선택은 옳았고 너네는 틀렸다는 무의식의 우월감이 깔려 있었다.


다시 97년으로 돌아오자면,

난 완도를 떠나 낯선 도시에서 적응을 해야만 했다. 고향에서 배타고 버스타고 4시간이 걸리는 곳이었다. 거리는 멀지 않은데 교통이 불편했다. 

17살 때 처음으로 맛 본 음식도 있다. 이를테면 순대라든지, 삼겹살(구이)라든가. 돼지고기는 삶아 먹는 거 아닌가요. 처음엔 어색했으나 차츰 적응이 되다가 결국엔 없어서 못 먹을 지경에 다다랐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도시에서 친구를 사귀고, 순대를 먹고, 옆 학교 여자들과 떡볶이를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은,
그 무섭던 지구과학 선생님께서 오일팔을 얘기하다가 눈물을 흘리셨다. 당시 전남대생이었고 친한 친구 몇을 잃으셨다 했다.


그 눈물에서

개인이 경험한 특정한 역사가 나의 역사가 되었고

순대에 맛을 트듯,

나의 민주주의도 작게 싹을 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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